저는 술을 그리 즐기지 않습니다. 애초 술에 약해 많이 마시지도 못하지만, 처음부터 그 맛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맥주나 와인 정도는 시원한 목넘김이나 특유의 향이 있어 거부감이 덜했지만, 소주는 도무지 왜 마시는지 이해되지 않았지요. 그저 쓰기만 하고 냄새는 실험실에서 손소독을 하기 위해 매일 뿌려대는 알코올 소독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술자리에서 쓴 소주 대신 단 술만 찾는 내게 좀더 나이 든 누군가가 젠체하며 말했습니다. ‘인생의 쓴맛을 보면 소주가 달아지는 법’이라고 말입니다.
그 뒤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소주가 달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 쓴맛이 그리 거슬리지 않을 만큼 삶이 고된 날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그때마다 저는 습관적으로 샷을 잔뜩 추가한 커피를 찾습니다. 이 풍진 세상 누구는 쓴 소주를 벗 삼아 세상을 돈짝만 하게 보면서 삶의 의욕을 북돋는다면, 누군가는 쓰고 진한 커피콩 우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정신 바짝 차리면서 다시 시작할 힘을 얻으니까요. 방식은 다르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견딜 만한 쓴맛을 통해 쓰디쓴 인생의 맛을 상쇄하며 삶을 버틸 역치를 키우는 과정인가봅니다.
소주든 커피든 쓴맛을 기본으로 하는 기호식품은 어른들의 전유물입니다. 아이들은 쓴맛이라면 질색하니까요. 커피는 물론이거니와 아이들은 상추나 시금치조차 쓰다면서 잘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보편적으로 고기보다 채소를, 생선보다 나물을 싫어합니다. 고기와 생선이 맛이 좋은 건 알지만, 어른의 입에는 달고 향긋한 채소조차, 아이들은 쓰고 비린 맛이 난다며 싫어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요리에는 시간이 더 걸립니다. 골라낼 수 없게 잘게 썰어 섞거나, 채소의 맛이 드러나지 않는 방법을 추가로 구상해야 하니 말이죠. 제가 잘 쓰는 방법은 가지를 넣은 솥밥입니다. 큼직하게 썬 가지를 한 번 볶아 불려둔 쌀에 얹어 지은 솥밥은, 뜸 들여 잘 섞으면 가지가 밥에 녹아들어 구수한 향만 남고 형체는 사라지거든요. 여기에 달래간장과 참기름이면 한 끼 식사가 해결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쉽습니다. 매번 같은 음식만 먹을 수 없으니까요. 아이들은 왜 채소를 쓰다고 싫어할까요?
미각이란 주로 혀에 분포된 미각수용체가 음식에 포함된 특정 화학분자와 결합한 신호를 뇌로 보내 이를 해석해 특정한 맛으로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공인된 인간의 미각은 총 5가지입니다.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이죠. 어른은 미각수용체가 혀에만 분포하지만, 어린아이는 입천장과 인두 등 구강 내부 전체에 흩어져 있기에 더 예민하게 맛을 감지하지요. 어른에게는 별달리 쓰지 않은 물질도 아이에게는 더 쓰게 느껴질 생물학적 기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아이는 단맛이나 짠맛에 그리 예민하게 굴지 않는데 유독 쓴맛에 예민하게 군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말리지 않으면 사탕 한 봉지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치우거나, 양념병을 열어 소금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보았을 것입니다. 어른에게는 달다 못해 입맛이 떨어질 정도의 단 음식도 아이들은 잘 먹습니다. 그러면서도 상추는 쓰다고 먹지 않지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미각의 구조와 특징을 좀더 살펴볼까요? 먼저 단맛과 감칠맛의 수용체는 구조가 거의 비슷합니다. 이들은 각각 포도당과 글루타메이트가 일종의 열쇠가 되어 자물쇠 구실을 하는 미각수용체를 열어 신호를 전달합니다. 애초에 단맛과 감칠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유사한 분자구조를 가집니다. T1R3라는 단백질이 T1R2와 결합하면 포도당을 감지해 단맛 신호를 전달하고, 같은 단백질이 T1R1과 결합하면 글루타메이트와 결합해 감칠맛 신호를 전달하지요. 짠맛과 신맛 수용체는 좀 다릅니다. 이들은 일종의 터널 형태를 지닌 이온 채널로, 각각 소듐이온(Na⁺)과 수소이온(H⁺)이 이들 터널을 통과하면 그 신호가 각각 짠맛과 신맛으로 뇌에 전해지죠.
인간의 혀에는 이 네 가지 맛을 느끼는 감지기가 5종류입니다. 그런데 쓴맛만은 달라서 인간의 유전체 속에 쓴맛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가 모두 25종이나 있습니다. 25종의 유전자가 각각 감지해 결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는 달라도, 이들 모두를 뇌는 쓴맛으로 인지하죠. 다른 맛을 느끼는 수용체는 단일한데, 유독 쓴맛의 수용체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뭘까요?
맛을 느끼는 감각은 동물이 먹이의 적합성을 선택하게 하는 원초적인 감각입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에너지원인 포도당과 신체 구성물질인 아미노산이 필요합니다. 또한 신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을 몸 안에 잡아두기 위해 소듐도 필요하지요. 포도당과 아미노산과 소듐이온의 맛은 각각 단맛, 감칠맛, 짠맛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이 세 가지 맛을 좋아하고, 이에 어느 정도 탐닉하도록 하는 유전적 특질을 가진 채 태어납니다.
다이어트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노릇한 치킨과 짭조름한 감자칩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건 이 때문이죠. 어른도 이럴진대, 아직 이성적 제어가 덜 발달한 아이는 이런 음식에 쉽게 탐닉하게 되지요. 하지만 쓴맛은 조금 다릅니다. 쓴맛은 대개 식물에서 옵니다. 고기나 생선이 상해도 쓴맛이 나긴 하지만 풀잎이나 나무뿌리, 식물의 줄기나 껍질은 아주 신선할 때조차 쓴맛을 간직한 경우가 많습니다.
식물이 가진 쓴맛의 원인은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 개발한 일종의 화학무기입니다. 이를 알칼로이드라고 하는데, 많은 알칼로이드가 동물에게는 어느 정도 유독합니다. 알칼로이드는 겉으로 봐서는 잘 드러나지 않기에, 동물은 알칼로이드를 쓴맛으로 인지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습니다. 맛이 쓰면 독이 있으니 즉시 먹는 걸 중단하고 뱉어버리는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알칼로이드 독성에 해를 덜 입도록 하죠.
식물은 다양하고 저마다 만들어내는 알칼로이드 종류도 다르기에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종류가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독을 감지해 알맞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는 쓴맛 수용체가 어른보다 더 많으니 쓴맛에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쓰면 독이니 뱉어야 한다는 본능에 따라 이를 거부하는 거죠.
어른이 됐다고 쓴맛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인간은 화식(火食)을 시작한 이후, 많은 알칼로이드를 불에 구워 독성을 없애버렸기에 특정한 쓴맛에는 감지 능력이 약화됐거나 아예 잃어버린 것도 많고, 이 잃어버린 정도에 개인차도 커서 쓴맛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됐습니다. 게다가 어른은 미각수용체 수가 줄어 이전보다 쓴맛을 덜 느끼는데다, 경험치의 차이로 맛 자체가 아니라 곁들여진 향과 풍미, 식감과 질감을 즐기는 법을 알며, 심지어 카페인 등 일부 중독성을 일으키는 알칼로이드에 뇌가 길들어져 이들을 피하기는커녕 일부러 찾기도 합니다.
노화는 다른 신체 부위와 마찬가지로 미각수용체 수를 줄어들게 하고 그 민감도도 무뎌지게 합니다. 그런데 유독 단맛과 짠맛을 느끼는 미각수용체가 받는 타격이 다른 수용체보다 심해서, 이 맛에 대한 감각이 무뎌집니다. 언젠가부터 요리할 때 음식이 더 싱겁게 느껴지거나, 부모님의 요리가 이전보다 짜거나 달게 느껴진다면 이는 미각수용체의 노화로 인한 현상입니다.
맛에 무뎌지면 먹는 것이 즐겁지 않습니다. 또한 나이 들면 여러 질환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질환과 그와 연관된 약물도 미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심장질환을 억제하는 데 사용하는 약물의 대표적 부작용이 미각 손상이며, 이들은 침샘 작용을 억제해 입안을 건조하게 해서 맛을 느끼는 능력을 더욱 약화합니다. 맛을 나타내는 물질은 작은 크기로 녹아야 미각수용체에 달라붙을 수 있는데 침이 부족하면 입이 까끌까끌해서 맛이 잘 느껴지지 않지요. 또한 당뇨병은 그 자체로 단맛을 느끼는 미각수용체를 파괴하고, 암과 그에 동반된 치료는 미각의 교란을 가져옵니다.
노인에게 미각의 둔감도는 식욕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이로 인한 불균형한 영양상태로 미각을 더욱 저하시킨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연과 철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짠맛에 더욱 둔감해지기에, 점점 더 짠 음식을 찾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당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에게 단맛의 둔화는 식이요법을 더 괴롭게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골고루 잘 먹어서 신체 항상성을 유지해줘야 병도 이겨낼 수 있는데, 맛이 없어 먹는 일이 고역이 되면 나을 병도 오래갈 수 있어 문제가 되곤 하지요.
단맛이 즐겁고 쓴맛에 위로받기를아직도 제 입맛에 소주는 쓰고, 아마 앞으로도 그걸 달게 느낄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건 제 쓴맛 수용체가 유독 그 맛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 제 인생이 그 쓴맛을 감지할 정도로 덜 썼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앞으로도 단맛에 즐거움을 얻고 쓴맛에 위로받을 수 있는 삶의 나날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늙음의 과학: 나이 들어가는 당신은 노후화되어가고 있나요. 노쇠되어가고 있나요.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의 나이 드는 것의 과학 이야기.
*한겨레21 뉴스레터 <썸싱21> 구독하기
https://url.kr/7bfp6n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현장] “국민이 바보로 보이나”…30만명 ‘김건희 특검’ 외쳤다
[현장] 거리 나온 이재명 “비상식·주술이 국정 흔들어…권력 심판하자”
에르메스 상속자 ‘18조 주식’ 사라졌다…누가 가져갔나?
교수 사회, ‘윤 대통령, 공천개입 의혹’으로 시국선언 잇따라
“보이저, 일어나!”…동면하던 ‘보이저 1호’ 43년 만에 깨웠다
노화 척도 ‘한 발 버티기’…60대, 30초는 버텨야
구급대원, 주검 옮기다 오열…“맙소사, 내 어머니가 분명해요”
[영상] 권태호 논설실장 특별 진단 “윤, 이미 정치적 탄핵 상태”
미 대선 3일 앞…7개 경합주 1~3%p 오차범위 내 ‘초박빙’
이란, 이스라엘 보복하나…최고지도자 “압도적 대응”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