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은 두드릴수록 단련된다.’ 이 말은 비장한 만큼이나 참혹하다. 어떤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는 투사의 결연한 의지로 들리지만, 그 뒤엔 혹독한 시련을 묵묵히 견뎌야 하는 활동가의 외로움이 묻어 있다.
바셀 카르타빌이 그랬다. 바셀 사파디라고도 불리는 그는 올해로 34살을 맞은 시리아 출신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그는 또한 인터넷 자유 문화 활동가이자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다. 시리아를 인터넷에 접속하게 해준 주역도 바셀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바셀의 인연은 얄궂었다. 몇 차례 쿠데타와 내전을 거치며 시리아 정부는 독재 체제가 굳어졌고, 인권과 표현의 자유도 땅에 떨어졌다. 아사드 정권은 시민들의 인터넷 접속을 엄격히 제한했다. 바셀은 시리아의 현실을 인터넷으로 퍼뜨렸다. 누구든 차별 없이 정보에 접속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만들었다. 시리아 정부에 바셀은 눈엣가시였다.
아사드 정권은 2012년 3월15일 바셀을 체포해 재판도 없이 군 감옥에 가뒀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고문 열도’라고 부른 감옥이었다. 며칠에 걸쳐 혹독한 고문이 이어졌다. 보안 요원들은 그의 집을 덮쳐 PC를 압수해갔다. 바셀은 9개월 동안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어딘지 모를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해 12월이 돼서야 변호사도 없이 군 검사와 접견한 자리에서 바셀은 자신이 ‘국가 안보 위협’ 혐의로 기소됐음을 통보받았다.
인권과 개방을 옹호하는 진영이 팔을 걷어붙였다. 전자프런티어재단, 모질라재단, 크리에이티브코먼스 등 36개 단체가 항의와 요청을 반복한 끝에 바셀은 비로소 일반 감옥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투옥된 지 1년여 만인 2013년 1월7일에는 인권운동가이자 변호사인 연인 노우라 가지와 옥중 결혼식도 올렸다.
바셀은 올곧은 인터넷 활동가이자 뛰어난 개발자였다. 그는 협업 기술·예술 연구 공간 ‘아이키랩’을 공동 설립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고, 크리에이티브코먼스 시리아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모질라 파이어폭스, 위키피디아와 오픈 클립아트 라이브러리 등 여러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는 2012년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바셀을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셀의 봄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리아 정부는 올해 11월3일, 바셀을 또다시 어딘지 모를 감옥으로 옮겼다. 그로부터 8일 뒤인 11월11일, 아내 노우라에게 남편 소식이 전달됐다. 시리아 군사법원이 바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는 소식이었다. 시리아 군사법정은 외부 참관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비공개 상태로 진행되며 법정 대변인도, 상소도 일절 허용되지 않는 일방적 재판으로 악명 높다.
바셀의 운명은 에런 슈워츠를 떠올리게 한다. 에런 역시 뛰어난 해커이자 인터넷 자유 옹호자였다. 그는 소셜 뉴스 서비스 ‘레딧’ 개발자였고, 크리에이티브코먼스라이선스 지지자이자 기술 공헌자였다. 에런은 저작물의 배타적 사용을 강화하는 현행 저작권 제도에 항의하는 표시로 세계 최대 논문 포털 ‘제이스토어’를 해킹했다. 이를 빌미로 미국 연방법원은 그에게 테러리스트 혐의를 적용해 최대 50년까지 구속될 수 있는 중범죄로 기소했다. 끊임없는 정부의 압박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에런은 2013년 1월11일, 26살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에런은 허망하게 놓쳤지만, 바셀은 아직 남아 있다. 그를 인권의 무덤에서 건져올릴 시간은 많지 않다. 이 허약한 인권의 지푸라기를 동아줄로 바꿔야 할 때다. 바셀은 단련되기엔 너무 지쳐 있고, 그에게 내리쳐진 망치질은 너무 가혹하다. 바셀의 사형 선고는 곧 인권의 두 번째 죽음이다.
바셀 카르타빌의 석방을 촉구하는 온라인 운동도 확산 중이다. 바셀의 자유를 기원하는 캠페인 웹사이트 ‘#FREEBASSEL’은 그의 사연을 14개 언어로 번역해 전파하고 소셜미디어 응원 메시지도 공유하고 있다. 트위터(@freebassel)와 인스타그램(@freebassel), 페이스북(@FreeBasselSafadi) 계정도 개설됐다. 바셀의 석방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 페이지엔 지금까지 3만8679명이 이름을 보탰다. 3만8680번째는 당신 차례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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