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열쇠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의 증표다. ‘열 한 살의 한잘라’의 한 장면. ©2012 나지 알알리, 시대의창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반인권적 반국제법적 행동”을 비판한 일은 반가운 우연이었다. 너무 오래됐으며 갈수록 더 참혹해지는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더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만화를 소개하려던 참이었는데, 때맞춰 대통령의 지원을 등에 업은 기분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도 성명을 내어 대통령의 코멘트를 반겼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1라는 부제에 그간의 애탄 마음이 읽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같은 마음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을 대접하며 한 가지 부탁을 한다고 한다. “당신 나라에 가서 꼭 전해줘요. 당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요.” 언젠가 찾아가 떳떳이 대접받기 위해서라도, 만화를 통해 내가 보고 들은 팔레스타인을 소개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열쇠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의 증표다. ‘아! 팔레스타인’의 장면. ©2023 원혜진, 바이북스
소개할 첫 만화는 원혜진 작가의 ‘아! 팔레스타인’이다.2 2012년 오마이뉴스에서 연재를 시작해 이듬해 완결됐고, 책으로도 출간됐다. 만화에서 기대되는 이미지대로 쉽고 흥미롭게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담아냈다. 귀여운 그림체에 어린이에게도 추천할 수 있을 만큼 쉽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잘 반영하고 있기에 보기 힘든 장면도 꽤 있다. 첫 장면부터 아버지와 함께 있던 팔레스타인 소년 라미 자말이 이스라엘의 총격에 사망한 실제 사건을 그린다. ‘진’이라는 한국인 캐릭터가 팔레스타인에 직접 방문한다는 설정만 제외하면 그 외의 모든 것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다. 참고 자료 목록만 30여 건, 준비 및 제작 기간 5년, 게다가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감수까지 받아서 믿음이 간다. 또한 역사책답게 여러 줄기의 맥락을 펼쳐 보여주기에 이어질 모든 작품을 이해할 바탕이 돼준다. 국외에도 번역 출간된 ‘아! 팔레스타인’은, 출발점 삼기 가장 좋은 팔레스타인 안내서다.
다음 작품은 ‘팔레스타인’(1993)이다. 몰타 태생 미국인 만화가이자 언론인인 조 사코는 1991년 말부터 이듬해까지 팔레스타인에 머물렀다. ‘팔레스타인’은 그때의 경험을 엮은 르포르타주 만화다. 팔레스타인 지식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권두 추천사에서 사코가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기울인다”고 평한다. 그 말대로 승자가 아닌 패자, 희망을 거의 품지 못한 사람들의 삶에서 사코는 미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을 짚어낸다. 하나만 되짚자면 그것은 자신 속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편견이다. 방문 전까지 사코에게 팔레스타인은 테러리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고유명사였다. 바로 그 땅에 도착해서야 사코는 자신이 “텔레비전에서 본 피바다에 흠뻑 젖어 있었”음을 깨닫는다. 못내 위악적인 유머 속에 자신을 민망하게 담아가며, 그는 팔레스타인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여정을 걸어나간다.
자성의 목소리이기도 했던 ‘팔레스타인’이 엄청난 주목을 받고 15년여 지나, 사코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2009)을 펴내 다시금 팔레스타인에 대한 진실을 전했다. 재차 15년 후, 이번에는 ‘가자 전쟁’(2024)을 온라인에 연재해3 책으로도 출간했다. 2023년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시작돼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전쟁을 논한 아주 짧은 작품이다. 30쪽을 겨우 넘기는 분량이지만 30년간 견지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시선을 균형 있게 담아내며, 이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적 시선에 경종을 울린다. 조 바이든과 베냐민 네타냐후의 공모로 시작해 도널드 트럼프와의 공모로 이어진 이 전쟁에 대해, 이보다 더 짧고 굵게 필요한 말을 하는 만화는 드물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복잡한 사정으로 분할해 공유하는 도시 예루살렘을 다룬 만화까지 포함하면 리스트는 더 넓어진다. 두 작품을 소개한다. ‘굿모닝 예루살렘’(2011)은 위트 있는 캐나다 퀘벡 만화가 기 들릴의 눈으로 본 예루살렘을 담았다. 기 들릴은 조 사코처럼 반성하며 자학하기보다는 새로워하고 감탄하며 음미한다. 그 쿨한 거리두기가 약간은 괘씸하지만, 다른 작품과 함께 읽을 때 분명 색다른 맛을 낸다. ‘예루살렘의 역사’(2022)는 소개한 책 중 가장 두꺼운 역사만화다. 기원전 2천 년부터 시작해 4천 년을 200여 쪽에 담은 걸 고려하면, 시온주의 이스라엘의 대두로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 점령사 100여 년이 고작 50쪽으로 처리된 것도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두 민족이 모두 아끼는 상징 올리브나무의 수령(樹齡)만큼 긴 역사적 시계(視界)로 보면, 예루살렘은 쭉 고되고 팔레스타인은 물론 이스라엘마저도 함께 그렇다.
픽션도 소개하자. 김보현 작가의 ‘나블루스’(2007)는 1권만 나온 뒤 절판됐지만,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저 로맨스가 아닌 다양한 장르의 이름이던 순정만화 전통 속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청년들이 죽어나가는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주요 도시인 나블루스를 배경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을 리얼하게 담았다. 원혜진 작가의 2021년작 ‘필리스트’도 픽션이다. 하지만 ‘아! 팔레스타인’ 완간 뒤 팔레스타인 땅에 직접 다녀온 경험을 진하게 담아내어, 허구에 담긴 진실의 힘을 잔뜩 드러내는 역작이다. 슬프고 아픈 동화의 모습으로, 독자에게 팔레스타인 신화 속 새 필리스트의 잔상을 깊이 새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열쇠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의 증표다. ‘열 한 살의 한잘라’의 한 장면. ©2012 나지 알알리, 시대의창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더욱 직접적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소리다. ‘열한 살의 한잘라’(2012)는 1987년 피격당해 사망한 팔레스타인의 전설적인 만화가 나지 알알리의 유일한 작품집이다. 조 사코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신을 만화가로 소개할 때, 그들은 나지 알알리를 떠올리며 그를 반겼다고 한다. 나지 알알리만큼이나 그의 캐릭터 한잘라도 인기가 높다. 듬성듬성한 머리에 덧댄 옷을 입은 한잘라는 마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여겨진다. 나지 알알리의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해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현상한다. 어디든 그는 바라보고 서 있다. 앉거나 쓰러지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아마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독백극 ‘가자 모놀로그’(2008~2009)4도 한잘라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한국의 젊은 만화가들이 그중 일부를 만화로 옮겨 발표한 한겨레21 웹툰판 ‘가자 모놀로그’5를 하나하나 읽으며, 나는 그 칸새 너머로 꼿꼿이 선 한잘라의 뒷모습을 본 듯했다. 그 등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의 곁에서 팔레스타인을 함께 바라봐달라고.
조익상 만화평론가·서원대 웹툰콘텐츠학과 교수
*만화의 칸과 칸 사이, 칸새에서 출발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6주마다 연재.
1. “너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성명 전문(https://pal.or.kr/wp/%ec%9d%b4%ec%8a%a4%eb%9d%bc%ec%97%98%ec%97%90-%ec%a0%84%ec%9f%81%eb%b2%94%ec%a3%84-%ec%b1%85%ec%9e%84%ec%9d%84-%eb%ac%bb%ea%b2%a0%eb%8b%a4%eb%8a%94-%ec%9d%b4%ec%9e%ac%eb%aa%85-%eb%8c%80%ed%86%b5/)
2. ‘아! 팔레스타인’ 만화 보기(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general_list.aspx?SRS_CD=0000011040)
3. ‘가자 전쟁’(2024) 온라인 영문판 보기(“온라인 영문판은 여기서 읽을 수 있다.” https://www.tcj.com/topic/the-war-on-gaza/)
4. ‘가자 모놀로그(2008~2009)’ 보기(https://www.gazamonologues.com/)
5. ‘가자 모놀로그’ 보기(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84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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