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 타이틀. 네이버웹툰 제공
네이버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이현민 글·김현수 그림, 이하 ‘역영설’)가 외전을 포함해 총 222화로 완결됐다. 후기만을 남겨둔 현재, 모든 데이터가 ‘역영설’이 역대급 성공작임을 입증한다. 요일 순위 수위권을 5년 가까이 지키며 찍힌 관심 수가 70만에 육박하는데 전체 평점이 9.98이다. 독자와 회차 모두 이만큼 많은 작품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평점이 유지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댓글 평가도 극찬 일색이다. 9.99라는 평점이 찍힌 본편 최종화(210화)에 달린 댓글에는 숫자 이상의 벅찬 감상들이 담겼다. 특히 원작 웹소설(문백경, 네이버 시리즈, 총 408화)도 끝까지 읽은 독자들의 평이 인상적이다. ‘원작도 좋았는데 그걸 넘어서는 완벽한 각색’이라는 중평이다. (이하 웹소설과 웹툰 ‘역영설’에 대한 주요 내용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김수호가 중세풍 판타지 소설 ‘철혈의 기사’ 속 등장인물 로이드 프론테라에 빙의하며 시작된다. ‘반지의 제왕’의 J.R.R. 톨킨은 허구 속 가상 세계를 2차 세계라 불렀다. 반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1차 세계인데, ‘역영설’ 같은 빙의 장르는 2차 세계 인물로 빙의한 주인공을 우리와 같은 1차 세계 출신으로 상정하곤 한다. 김수호의 문제는 2차 세계인 ‘철혈의 기사’ 속 로이드가 빚더미를 안고 술독에 빠져 살다 죽어버리는 망나니 엑스트라라는 점이다. 김수호는 로이드의 몸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이를 위해 1차 세계의 경험을 끌어온다.
1차 세계에서 김수호는 토목설계공학을 전공했으며, 군 시절 공병으로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가난하게 살며 쌓은 일용직 ‘노가다’ 경험도 풍부하다. 그라면 이 중세풍 세계 속에서 1차 세계의 경험을 살려 토목건축업으로 집안 빚을 갚을 수 있다. 온돌이 깔린 주택에서 시작해 한국식 아파트와 찜질방까지 지어가며, 김수호는 로이드의 삶을 재건하고 더 많은 사람이 고루 만족스럽게 살아갈 환경을 만든다. 판타지 세계이니만큼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고 활약을 펼치지만, 기반은 1차 세계에서의 경험이다. 그리고 이는 ‘역영설’ 독자에게 약간의 ‘국뽕’과 함께 로이드 몸속 김수호에게 이입할 여지를 설계한다.
물론 이는 원작과 각색작 모두 공유하는 지점이고 전개도 큰 틀에서는 같다. 하지만 웹툰은 주인공의 1차 세계를 더 두텁게 다룬다. 대표적인 것이 1차 세계 속 김수호의 유일한 친구인 고기영이다. 웹툰만의 오리지널 인물인 고기영은 대부분 2차 세계 속에서 전개되는 서사에서 회상을 통해 간간이 등장하며 개연성을 부여하고 주인공을 이해하게 돕는다. 고기영은 이름답게 김수호에게 특유의 비릿한 표정으로 소고기를 사주면서 친구가 되었는데, 로이드 속 김수호는 이 경험을 되새기며 육식만 하는 엘프 종족에게 소고기를 잔뜩 제공하는 것으로 환심을 산다. 고기영과 함께 찜질방에서 육체노동의 고단함을 풀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인어족에게 찜질방을 지어주기도 한다.

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에서 김수호가 로이드의 세계로 돌아갈 기회 앞에서 망설인다.
이런 고기영을 웹툰 독자들은 ‘비릿좌’라고 부르며 무척 좋아한다. 특유의 거부감 느껴지는 표정도 이상한 매력이지만, 김수호를 전적으로 인정한 1차 세계 속 인물이어서다. 가난해서 자리 잡지 못하는 주인공이 정 둘 곳을 찾지 못할 때 ‘비릿좌’만이 “끝까지 처음처럼” “근성 미친” 주인공을 멋있다고 치켜세운다. “척박한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는 김수호를 모범 삼아 자신의 삶을 설계해나가기도 한다.
서사 막바지에서 김수호는 2차 세계를 떠나 로이드가 아닌 원래 현실 속 김수호로서 살아가게 되고 결국 고기영과 재회한다. 웹소설에서는 단 하루로 짧게 처리되는 귀환 뒤의 삶을 웹툰은 몇 년으로 늘리는데, 그중에서도 고기영과의 재회는 특별한 자리를 점한다. 고기영 앞에서 김수호는 2차 세계에서의 경험을 꿈속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고기영은 김수호가 이 세상 사람이라기보단 “다른 세상에서 온 영웅”이어서 여기에선 기운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며 1차 세계와 2차 세계를 뒤집어놓는다. 마침내 김수호가 로이드의 세계로 돌아갈 기회 앞에서 망설일 때 등을 떠미는 역할까지 고기영이 맡는다. 독자가 너나없이 꼽는 최고의 명대사도 그의 몫이다.
하지만 여기에선 직접 맛보도록 명대사 직전까지만 윤문해둔다. ‘너처럼 공부 잘하고 싶었는데 노력해도 안되고 자괴감만 생기더라. 그런데 도망쳐서 다른 걸 열심히 하니까 할 만한 거야. 나한테 맞는 세계를 드디어 찾은 것처럼.’ 진짜는 바로 이어지는 대사다. 바로 그 말과 함께 1차 세계와 2차 세계는 뒤집힐 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숫제 이세계(판타지·가상 세계)를 담은 이야기에 대한, 그런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 모두에 대한 메타 언설처럼 고기영의 말은 선언된다. 동시에 그것은 ‘이세계’를 렌즈 삼아 ‘이 세계’를 바라보게까지 한다.

웹툰 ‘역대급 영지 설계사’에서 고기영이 김수호의 등을 떠밀며 말하고 있다. 네이버웹툰 제공
결국 김수호는 2차 세계로 금의환향한다. 웹소설에서는 그런 귀환이 그저 자연스럽기만 한 것이어서 인물에게 주어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특별한 개인의 필연이기만 한 것이다. 반면 웹툰은 고기영을 통해 누군가에게 더 맞는 세계와 덜 맞는 세계라는 구도를 자아낸다. 덜 맞는 세계를 떠나 더 맞는 세계로 가는 것은 도망이 아니다. 약자와 괴짜를 보듬을 만큼 충분히 잘 설계되지 못한 세계,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안주하지 못해 떠나는 것이 어찌 도망일 수 있는가. 그래서 김수호는 자신의 설계 속에 약자와 괴짜가 함께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세계, 자신과 모두의 영지로 떠난다. 이것은 도망이 아니라 되레 섬뜩한 현실 비판이다.
웹툰 ‘역영설’이 성공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많다. 하지만 만족을 넘어 곱씹을 만한 작품이 된 것은 1차 세계를 이어내며 되돌아보게 한 요소 덕이다. 일본 연구자 미야케 요이치로는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와 ‘아예 가버리는 이야기’로 이세계 이야기를 구별한 바 있다. 웹툰 ‘역영설’은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차라리 ‘돌아갈 곳의 조건을 되묻는 이야기’라 할 만하다. 그야말로 ‘역대급 영지 설계사’다.
조익상 만화평론가·서원대 웹툰콘텐츠학과 교수
*만화의 칸과 칸 사이, 칸새에서 출발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6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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