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노동은 만화가 되지 못할까

‘까대기’ 표지. 보리 제공
사람마다 만화 취향이 다양할 텐데, 나는 직업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변호사, 의사 등의 전문가물을 즐겨보며 음악가, 무용가, 만화가 등 예술가 이야기도 최대한 찾아 읽는다. ‘가비지타임’(2사장) 같은 현실적인 스포츠물, ‘미생’(윤태호) 같은 오피스 드라마는 물론이고, ‘나츠코의 술’(오제 아키라)처럼 술을 빚는 장인을 다룬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만화만큼 다양한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일하는 사람)를, 일의 맛과 멋을 담는 시각 매체가 드물다보니, 그것이 내가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일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만화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직업인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음에도 일용직 노동자나 시급제 알바가 주인공인 경우는 드물다. 간혹 등장하더라도 주인공의 임시 직업일 뿐이어서, 이야기 속에서 본격적인 사건이 펼쳐지면서는 직업으로서의 의미를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2019년 이종철 작가의 ‘까대기’가 출간됐을 때 무척 반가웠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가 반가워했다. 택배를 굴러가게 하는 여러 노동 중 특히 상하차 노동을 말하는 은어를 제목으로 삼은 책의 뒤표지에는 반갑다는 말이 가득하다. 택배 노동을 경험한 사람은 물론, 택배를 이용하는 이들의 단상까지 담겼다. “시골에서 택배로 받은 책을 보며 자란” 한 국어 교사는 “택배 상자 하나가 당신 곁으로 오기까지” 묻은 “지문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해주는 책”이라고 썼다.

‘까대기’ 본문. 보리 제공
그 지문 중 하나의 주인공이자 ‘까대기’의 주인공인 바다는 만화가 지망생이다. 상경해서 집세와 생활비를 벌고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집 가까운 A택배회사 지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가 맡은 일은 택배 상자를 물류센터 차에서 내리는 하차 업무였다. 이후 분류가 끝나 목적지로 배송하기 위해 택배차에 올리는 상차까지 포함해, 상하차 업무를 까대기라고 부르는 택배의 세계. 이곳에 들어선 바다는 만화가가 되기까지의 생활을 까대기 알바로 채운다. 정확한 기간은 제시되지 않지만, 후기에 따르면 이종철 작가는 6년간 까대기 일을 했다고 한다.
명절 물류 대란과 눈과 비, 더위와 추위 사이에서 보내는 시간 속에서, 그는 택배기사, 화물차 운전수, 택배회사 지점장, 경리 등 택배 일을 하는 여러 사람과 사귀고 형편을 알아나간다. 그중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같은 까대기 알바생인 종범이다. 종범이 합류하기 전까지 상차 이후 뒷정리와 화장실 청소 등은 까대기 알바생이 맡아 하고 있었다. 바다는 청소를 하면 그만큼의 시간이 시급에 더해지기 때문에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종범은 청소를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각자 작업한 공간뿐 아니라 화장실도 돌아가며 청소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게다가 종범은 바다가 그간 참고 있던 다른 노동환경 문제까지 제기했다. 인력 교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A 지점장은 종범에게 불만이 많으면 그만두라고 한다. 이제는 바다가 나섰다. “종범이 그만두면 저도 그만두겠습니다.”
‘까대기’에서는 불안정 노동의 여러 순간이 불거지지만 그 현실에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장면은 이것이 전부다. 종범과 함께 택배회사를 옮기고부터는 더 나은 노동환경과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도 했지만, 사실 한 권 가득 채운 택배 노동이 바다에게는 만화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일터에서 변화를 위해 에너지를 쏟기는 어렵다. 어쩌면 그것을 그리지 못했던 아쉬움이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종철 작가가 7년 뒤 펴낸 새 만화가 ‘다시 전태일’이 된 것은.

‘다시 전태일’ 표지. 보리 제공
전태일을 다룬 책은 다소 있지만, 만화는 최호철 작가의 ‘태일이’(2007~2009, 전 5권)뿐이었다. 그런데 거의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전태일 만화의 주인공은 1970년에 분신한 스물세 살 전태일만이 아니다. ‘까대기’의 주인공 바다와 같은 이유로 알바를 하는 스물일곱 살 청년 ‘김우주’와 그가 일하며 살아가는 2018년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현재의 우주를 50여 년 전 태일과 나란히 교대로 보여줌으로써, ‘다시 전태일’은 역사성과 현재성 모두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2018년의 노동 현실을 1970년과 대비하면서, 전태일의 노동운동에서 비롯된 긍정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어지지 못한 부정성을 모두 담아내기 때문이다.
280쪽가량 한 권의 책 속에서 전태일의 시간이 차지하는 분량은 약 3분의 2. 그런 만큼 전태일의 생애는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무렵부터 조명된다. 태일은 약한 ‘시다’ 직공들의 편에 서는 재단사가 되고자 하는 재단 보조다. 그 갸륵한 마음이 직공들을 힘겹게 하는 재봉공장의 현실을 더 엄혹하게 비춘다. 하지만 태일은 재단사가 되고서도 직공들의 편에 제대로 서지 못한다. 자기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직공들을 배려하지만, ‘공임 타협’이나 노동환경 개선은 가능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모두가 알고 있듯, 태일은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고부터 그가 바라던 일터를, 회사들이 법을 지키도록 만들고자 한다. 야간작업에는 수당을 더 줘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한다. 어린이에게 야간작업을 시켜서는 안 된다. 이런 기본적인 법을 지키게 하는 것조차 너무나 어려웠던 것이 전태일의 시대였다.
2018년의 우주는 물류센터에서 만난 동갑내기 동진이 낙상 사고를 당하고부터 일터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사람이 다쳤는데 일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간다. 우연히 만난 동진은 하청회사가 산재보험 처리를 막기 위해 119도 부르지 않고 병원비만 내고 보상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라이더유니온에 가입해 배달 노동자로서의 권익을 지키려 한다는 동진을 보내며, 전태일을 존경하는 우주도 끝내 생각한다. “전태일이 살던 시절과 지금”이 “다르게 나쁘다”고. 그 나쁜 시절의 겨울, 우주는 스물네 살 노동자 김용균의 사망 소식을 접한다. ‘다시 전태일’은 이렇게 불안정한 노동의 이어짐을 기록하며, 독자들이 지금 여기에서 태일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도록 돕는다.

‘다시 전태일’ 본문. 보리 제공
이제 불안정 노동자가 만화에 잘 담기지 않는 이유를 짚을 때다. 서두에 든 예처럼 일의 맛과 멋을 담은 만화도 있지만, 현실이 맛과 멋을 담기 어렵도록 비루할 때가 문제다. 그럴 때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일보다는 현실을 비춘다. 그때고 지금이고 불안정 노동자를 담은 이야기에서는 현실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불안정 노동 이야기는 판타지가 아닌 이상 통쾌하기 어렵다. 일용직·단기간·시간제 노동자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적었던 것은 그래서다. 그 일이 맛있지도 멋있지도 않아서가 아니다. 이종철의 두 만화를 읽으며 생각했다. 더 많은 일의 맛과 멋이 담긴 만화를 만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조익상 만화평론가·서원대학교 웹툰콘텐츠학과 교수
* 만화의 칸과 칸 사이, 칸새에서 출발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6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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