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에서 가장 친한 친구 희수가 남편으로부터 상습폭행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되는 조은수. 넷플릭스 제공
“신고하면 그깟 집안일로 잡아 가둘 것 같으냐?” 아내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는 경찰서 앞에서도 당당하다. 그러나 “그깟 집안일”로 누군가는 트라우마를 겪다가 “미친년”이 되거나, 도망치다가 실패해 또 맞거나, 자신을 죽이거나 가해자를 죽이고 만다. ‘당신이 죽였다’(넷플릭스)는 사소하고 사적인 일로 취급돼온 가정폭력이 어떻게 여성을 지배하는지, 그 폭력이 어떻게 가족과 사회 속에서 은폐되고 유지되는지, 그 폭력의 사슬을 어떻게 끊어낼지 질문하게 하는 드라마다.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에서 남편 노진표는 아내 조희수를 때릴 때마다 아내에게 꽃다발이나 고가의 액세서리를 선물한다. 넷플릭스 제공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일하는 조은수(전소니)는 아버지가 상습적으로 어머니를 폭행하는 걸 보고 자랐다. 폭력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지만, 남편에게 맞은 상처를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한 브이아이피(VIP) 고객을 외면한 방관자이기도 한 은수는, 자신이 외면한 그 여성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본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 조희수(이유미)가 남편에게 상습폭행을 당해왔다는 걸 알게 된다.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에서 친구를 상습폭행하는 친구의 남편을 죽이기로 공모하는 조은수. 넷플릭스 제공
희수는 동화작가였지만, 남편의 통제로 집에 묶여 고립돼 있다. 맞서도 봤고 도망쳐도 봤고 신고도 해봤지만, 그를 막아선 건 가족과 공권력이었다. 시누이이자 경찰인 노진영(이호정)은 고발을 막았고, 남편은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협박해 탈출하려던 희수를 집으로 되돌렸다.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자살을 시도한 희수를 본 은수는 말한다. “죽여버리자, 네 남편.”

희수의 시어머니이자 가정폭력을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하는 여성학자 고정숙은 아들이 며느리를 상습적으로 폭행한다는 걸 알면서도 묵인한다. 넷플릭스 제공
‘ 당신이 죽였다 ’ 는 가정폭력이 신체 폭력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 남편 노진표 ( 장승조 ) 는 아내 희수를 때릴 때마다 희수에게 꽃다발이나 고가의 액세서리를 선물한다 . 장식장에는 액세서리 케이스가 가득하다 . 그것도 모자라 폐회로텔레비전( CCTV)을 설치해 희수를 감시하고 , 행동을 통제한다 . 그의 폭력은 여성을 온전히 통제하고 지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 가정폭력이 특정 계급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 강릉 에 사는 은수 가족은 평범한 ‘4 인 정상가족 ’의 범주에 속한다 . 은수 어머니는 남편이 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칼을 숨기고 산다 . 남성의 여성 지배와 폭력은 가족을 통해 은폐되고 존속된다 . 은수 어머니가 폭력을 참고 사는 이유는 자식들 때문이고 , 희수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탈출을 포기한다 .
가정폭력은 개별 가족 문제를 넘어선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 희수의 시어머니이자 가정폭력을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하는 여성학자 고정숙 ( 김미숙 ) 은 아들이 며느리를 상습적으로 폭행한다는 걸 알면서 이를 묵인하는 것도 모자라 “ 맞을 짓 하지 말고 서로서로 잘하면 될걸, 참 가슴 아픈 일이야 ” 라고 말하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 청와대 행정관 발령을 앞둔 진영은 자신의 성공에 방해가 될까봐 폭행 증거를 모아 고발장을 들고 경찰서에 온 희수에게 “ 친구 일이죠 ?” 라며 이렇게 말한다 . “ 친구분한테 되도록 집안에서 해결하라고 하세요 . 가정폭력 신고해도 99% 는 처벌이 어려운 경우라 . 현실이 그래요 .” 경찰의 입에서 나온 침묵을 강요한 말이다 . 이 말들은 단지 두 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 우리 사회에서 흔히 만나는 ‘ 규범 ’ 과도 같다 . 그래서 희수는 이렇게 말한다 . “ 신은 불러도 오지 않는데 남편의 발길질은 코앞까지 와 있었습니다 .”
은수와 희수의 ‘남편 살해’는 눈앞의 폭력에서 살고자 한 정당방위이기도 하지만, 가정폭력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이 자신이 죽거나 남편을 살해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제목인 ‘당신이 죽였다’에서 ‘당신’은 누구이며 누굴 죽였다는 걸까? 남편이 죽었든 아내가 죽었든, 그들을 죽인 것은 폭력 행위자와 이를 묵인·방치·은폐한 사람들, 그리고 그 폭력을 유지·재생산하는 구조다.

드라마 ‘친애하는 엑스(X)’에서 어머니의 학대와 아버지의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며 성장한 백아진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인다. 티빙 제공
최근 몇몇 드라마는 반사회적 선택을 하는 여성 인물을 통해 가정폭력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친애하는 엑스(X)’(티빙)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인 인물인 백아진(김유정)은 어머니의 학대와 아버지의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며 성장한다. 그의 성향이 가정폭력 때문에 형성됐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진은 아버지에 의해 계단 아래로 추락한 어머니를 죽게 방치하고, 선량한 주변 인물을 조종해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살인을 통해 그 폭력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SBS)의 연쇄살인범 정이신(고현정)은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남편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던 끝에 남편을 살해한 뒤 연쇄살인을 이어간다. 이신이 살해한 대상은 모두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을 행사하던 남성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의 연쇄살인범 정이신은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남편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던 끝에 남편을 살해한 뒤 연쇄살인을 이어간다. SBS 제공

‘친애하는 엑스(X)’에서 백아진은 살인을 통해 어린 시절 폭력의 기억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티빙 제공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에서 피해자에서 연쇄살인범이 된 정이신. SBS 제공
은수와 희수, 아진, 이신. 이 여성들의 극단적 행위는 가정폭력을 방관하고, 이를 해결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지 않은 가족과 사회가 초래한 결과다. 기존 한국 드라마 속 여성들이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서 운명에 순응하거나 구출되는 수동적 인물로 주로 재현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최근 등장한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능동적으로 피해에 대처하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피해자가 왜 극단적 선택에 도달하는지 세밀하게 보여주며 가정폭력은 “그깟 집안일”도 아니고 개인적 일탈도 아닌, 가부장제라는 구조의 문제이며 그 구조가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직면하게 한다.
그러나 ‘당신이 죽였다’는 가정폭력의 원인과 현상을 포착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하지만, 그 이상의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는 못한다. 여성들이 더 이상 수동적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분노하고 탈출하고 가해자를 죽여서라도 자신의 삶을 되찾는다는 점은 분명 중요한 변화다. 대중 드라마로서 장르적 긴장감을 유지하며 사회문제에 관한 뾰족한 관점을 이어가려는 시도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4회까지 차곡차곡 쌓은 문제의식과 은수와 희수가 보여준 급진성은 4회 이후 추격·은폐·도피라는 범죄스릴러 장르의 문법 속에서 희석된다.
“끊어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드라마가 반복한 말도 모호하다. 방관자와 피해자에서 주체적 해결자로 나선 은수와 희수의 변화를 보여주는 말이지만, 이 말이 오직 피해자 개인의 결단으로만 수렴될 때 역설적으로 폭력을 끊어낼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작동될 위험이 있다. 피해자 비난과 주체성 강조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끊어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누가 해야 하는가? 일차적으로는 은수와 희수에게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그들에 의해서만 반복된다면 폭력에 개입해야 할 제도와 사회의 책임을 가리는 방식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가정폭력의 은폐와 유지를 담당하는 존재가 시어머니와 시누이, 즉 여성이라는 점 또한 짚고 넘어갈 만하다. 이런 배치는 가정폭력이 단순히 ‘나쁜 남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 구조 전체의 문제임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여성학자이면서도 아들의 폭력을 묵인하는 정숙, 경찰이면서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피해자를 외면하는 진영의 위치성은 가정폭력이 어떻게 여성을 통해서도 재생산되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이 여성을 억압한다’는 진부한 구도로 읽힐 위험도 있다. 이런 면이 감지된 이유는 두 여성을 도와주는 인물이 여성인 원작 소설과는 다르게 드라마에서는 남성으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에서 은수와 희수를 돕는 중화 식자재 도소매 업체 진강상회의 대표 진소백. 넷플릭스 제공
우연히 은수와 얽히게 된 중화 식자재 도소매 업체 진강상회의 대표 진소백(이무생)은 은수와 희수를 전적으로 돕는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한다. 소백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들을 돕는 이유는 과거에 아이를 잃었다는 점 외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소백의 도움은 은수와 희수에게는 필수적이었고, 남성도 연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성 간 연대의 가능성이나 사회구조적 개입의 필요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착한 남성’의 선의가 은수와 희수의 생존을 좌우하는 방식은 결국 가부장적 구원 서사의 틀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여성 공동정범이 구조의 문제를 보여주지만, 남성 조력자는 개인의 선의로 그 구조를 비켜간다. 이 아이러니가 이 드라마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은수가 폭력의 기억을 가진 옷장을 드디어 버리고, 은수 어머니가 마침내 집을 나오고, 진표의 폭력을 눈치채고 희수 주변을 맴돌던 아랫집 1401호 여성이 희수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은 폭력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은수와 희수가 결국 남성 조력자의 선의 가운데 베트남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간다는 마지막 장면은 구조적 폭력을 또다시 개인의 탈출로 봉합해버리는 선택이다. 가해자는 죽고 공범들은 몰락하지만, 그 결말이 곧 구조 변화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책 ‘아주 친밀한 폭력’에서 지적했듯, 가정폭력 문제는 “피해 경험에 근거하더라도 해석의 틀이 여성중심적”이지 않다면 가부장적 통념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채 상식적인 결론을 제시하는 것에 머물게 된다. 이 ‘여성중심적 해석의 틀’, 즉 여성을 왜 때리는가를 묻는 데서 나아가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통제하는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드라마가 끝내 나아가지지 못한 지점이다. 폭력을 목격하는 일과 폭력을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일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감을 메우는 것은 드라마 한 편의 몫은 아닐 것이다. ‘당신이 죽였다’의 마지막 회 소제목처럼 은수와 희수, 그리고 우리들의 몫이다. 이 드라마가 나아가다가 멈춰 선 지점이 바로 우리가 시작할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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