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버거워 픽션의 세계로라도 도망치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가벼운 소설을 찾는다. 도무지 기승전결이란 걸 찾아보기 어려운, 답답한 현실 걱정을 자제시켜줄 도구가 간절해서다.
반대로 이열치열 독서법이 더 효과적인 처방이 될 때도 있다. 현실을 직시하게 하면서도,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안내하는 ‘좋은 책’을 만난다면 말이다. 처방의 관건이 얼마나 좋은 책을 만나느냐에 있다면, 이문영의 장편소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위즈덤하우스 펴냄)는 추천 순위 상위에 오를 만하다.
지은이는 <한겨레> 기자다. 소설의 주인공 조이섶도 기자다. 조이섶은 이명을 겪으며 세계가 둘로 나뉘는 경험을 한다. 두 세계는 “현실의 소리로 이루어진 세계와 이명이 목구멍을 열고 이야기를 게워 올리는 세계”다. 조이섶은 귀울음(이명)으로 시끄러운 잡음에 에워싸이지만, 이 소음이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자들의 비명과 닮았음을 깨닫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쌍용자동차·스타케미칼 정리해고 노동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이자 성소수자인 활동가, 무연고 사망자 등을 연상시키는 일화가 이어진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는 모두 이 시대에 ‘잘 안 팔리는’ 기사 소재다.
그래서 이명은 기자의 ‘직업병’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 흘리는 소리들이 귀에 대고 이야기를 슉슉 뱉었다. 내가 잘라버린 이야기들. 취재하고도 잊어버린 이야기들. 한 번 스치듯 쓴 것으로 할 일 다 했다며 만족한 이야기들. 쓸 만큼 썼으니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된다며 합리화한 이야기들. 너무 무거워 독자들이 싫어한다며 알아서 회피한 이야기들. 이제 지겨우니 그만하자는 이야기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이야기들.” 이명은 묻고, 듣고, 쓰는 일이 직업인 조 기자 스스로의 비명이기도 한 셈이다.
기승전결이 흐린 소설은 ‘야마’ 없는 기사와 닮았다. ‘야마’란 기사의 주제를 일컫는 한국 언론계 은어로, 사실보다 주장이나 이해관계를 앞세우게 해서 한국 언론의 발전을 가로막는 관행 중 하나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소설은 ‘얘기 안 되는’ 야마라고 누락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소설에서 이명은 “이 세계가 잃어버린 소리들이 소멸되지 않으려고 간절하게 붙든 최후의 마이크”로 재/의미화된다. 당신이 ‘픽션보다 현실이 더 기막히고 충격적이며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독자라면, 그럼에도 언론이 한가롭게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데 시간 낭비 중이라는 사실을 꿰뚫은 독자라면 분명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출산의 배신
오지의 지음, 에이도스 펴냄, 1만7천원
산부인과 의사인 지은이가 산모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선생님! 왜 애 낳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아무도 말을 안 해줬을까요?” 어째서 임신·출산 경험은 당사자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기 일쑤인가. 과학커뮤니케이터이기도 한 지은이가 자신과 환자의 경험을 포함해, 에세이와 교양서를 가로지르며 필수 의학 정보를 전한다.
코스미그래픽
마이클 벤슨 지음, 지웅배 옮김, 롤러코스터 펴냄, 4만3천원
‘우주 덕후’들의 심장(과 지갑)을 두드릴 대작이 왔다. 인류가 4천여 년 동안 우주를 시각화해온 역사를 그래픽 300점으로 체험한다. 우주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유물이자 최초의 휴대용 천문 도구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부터 슈퍼컴퓨터로 구현한 시뮬레이션 속 작은 픽셀까지, 천문학 발전의 의미를 예술적 즐거움과 함께 엿볼 수 있다.
처음 만나는 자폐
박재용 지음, 이상북스 펴냄, 1만7천원
‘그 아이가 새처럼 말하는 이유가 뭘까?’ 초등학생과 중학생 등 청소년이 같은 학교에서 만나는 자폐 청소년을 좀더 잘 알아가도록 돕는 안내서다. 자폐행동 양상과 원인, 대처 방안을 청소년 눈높이에서 설명하고 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려 한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청소년 시리즈’ 여덟 번째 책.
기후재난시대를 살아내는 법
이수경 지음, 궁리 펴냄, 2만원
언젠가부터 매일 기후변화 피해 뉴스를 접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1989년 환경과공해연구회를 창립하며 활동가의 삶을 시작한 지은이는, 기후변화를 감당하기 위한 방안으로 산업구조조정과 지역균형발전이 시급함을 주장한다. 경제·지역 양극화의 누적이 심각해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과 보고서 22권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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