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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인간의 감각으로 물고기를 알 수 있을까

수백 종의 동물 관점에서 본 다른 세상 <이토록 굉장한 세계>
등록 2023-04-14 06:25 수정 2023-04-20 06:27

물고기는 통증을 느낄까? 20세기만 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당연한 상식처럼 통용됐다. 변화가 생긴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2003년 발표된 린 스네든 연구팀의 실험 결과는 처음으로 상식에 균열을 냈다. 연구팀은 송어의 입술에 봉독과 아세트산을 주입했는데, 이 물고기들은 바닥에 누워 몸을 좌우로 흔들거나 자갈이나 벽에 입술을 문질렀다. 이들에게 모르핀을 주사하자 이런 행동은 사라졌다. 이 실험 결과가 발표된 뒤에도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물고기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쪽 학자들은 물고기가 무의식적으로 행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인간에게 고통을 느끼게 하는 ‘신피질’이 물고기의 뇌에는 없어서다.

세계적인 과학저널리스트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에드 용은 그의 두 번째 책 <이토록 굉장한 세계>(양병찬 옮김, 어크로스 펴냄)에서 “물고기가 신피질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파리가 카메라눈이 없기 때문에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지극히 인간의 관점에서 본 논쟁이라는 취지다.

지은이는 논쟁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물도 통증을 느낄까?’라는 질문에 숨어 있는 진짜 궁금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를테면 ‘우리가 낚시해도 괜찮을까?’ 같은. 지은이는 실제 우리가 동물이 통증을 느끼는지 궁금해하기보다 인간이 동물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통증 여부를 묻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접근은 ‘동물이 실제 무엇을 감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해를 제한하게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감각으로 본 세상은 어떨까. 파리의 움직임은 인간의 감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다. 파리는 더듬이의 온도 센서를 이용해 25도 언저리 공간에 머문다. 높은 온도의 공간을 마주하면 피해야 한다는 결정을 놀라운 속도로 하고 공중에서 급커브를 도는데, 이는 인간의 눈에 아무 방향성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파리뿐만이 아니다. 검정넓적비단벌레는 산불을 찾아 100㎞ 넘는 거리를 이동하고, 바다표범은 멀리 있는 물고기를 탐지해 따라갈 수 있다. 모두 인간의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책을 따라가다보면 인간의 감각이 아닌 수백 개의 감각으로 느끼는 각기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다른 것을 보고 느끼는 것, 다양성이란 그런 것이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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