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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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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새로운 구루 ‘스타 강사’

[수능 셀럽 놀이] 전 생애가 입시 경쟁이 된 시대
‘부의 과시’가 필수로 가미되어 ‘자기계발’ 유튜브로 소비
등록 2023-03-24 15:28 수정 2023-04-19 07:53
서울대 사범대 윤리교육과를 졸업한 이지영 강사가 모교인 서울대를 찾아 입학 축사를 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이지영> 영상 갈무리

서울대 사범대 윤리교육과를 졸업한 이지영 강사가 모교인 서울대를 찾아 입학 축사를 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이지영> 영상 갈무리

2023년 2월17일, 서울대 사범대학의 새내기 새로배움터 행사 현장. 사범대 학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이날 축사의 연사는 바로 사설 학원 이투스 소속의 스타 입시 강사, 이지영이었다. 해당 녹화 영상은 이지영 강사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 올라가 일반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화제를 몰며 100만 조회수를 앞두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교실 내 ‘교권 추락’이 불거지며 공교육 교사들 사이에서 이른바 ‘교권 침해 보험’ 상품 가입이 인기인 지금, 교육계에서 극심한 우상화와 경시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똑같이 교사의 고충을 호소해도

사설 인터넷강의(인강) 강사가 아이돌급 인기를 자랑하며 인강 강사의 캐리커처가 인쇄된 텀블러 같은 굿즈가 상시로 팔리고 강사를 ‘덕질’하는 팬 계정까지 있다는 건 이제 흔한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인강 강사의 인기에 특이점이 생겼다. 인강 강사는 <런닝맨>(SBS), <복면가왕>(MBC), <라디오스타>(MBC) 같은 지상파방송 예능까지 접수하며 ‘만능 엔터테이너’ 포지션을 차지한 것은 물론, 각각 지난해와 올해 방영된 로맨스 드라마 <크레이지 러브>(KBS)와 <일타 스캔들>(tvN)에서 남주인공 직업으로 강림하며 ‘판타지’ 자리도 꿰찼다.

반면 공교육 교사가 방송에 등장할 때의 장르는 사회뉴스나 시사다큐멘터리다. 똑같이 교사의 고충을 호소해도 인강 강사는 오은영 박사(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에게 ‘의학적 서사’를 제공받고 대중적인 위로를 받는다면, 공교육 교사는 스스로 목숨 끊을 정도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현실이다.

인강 강사는 이것도 모자라 우리 사회의 ‘구루’(Guru·정신적 스승이나 지도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조언자로서 멘토 역할을 넘어 “나만 믿고 따라오라”며 삶의 진리를 설파하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인강 강사들이 뿜어내는 후광은 단지 뛰어난 실력이나 외모, 입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핵심은 지금의 고행을 견디도록 해주는 ‘인생 교리’ 콘텐츠다.

“EBS는 진짜 공교육이라 그냥 범위 벗어난 걸 안 가르쳐줌. 유료는 인생 강의도 해줌. ㅋㅋㅋ” EBS 무료 강의와 사설 유료 강의를 비교하는 유튜브 영상에 달린 2500개의 ‘좋아요’를 받은 한 네티즌의 댓글이다. 사설 강사들이 직접 수업을 듣지 않는 대중에게 인기 있는 것도 바로 ‘인생 강의’ 시리즈다. 인강 강사들이 강의 중에 한 ‘인생 강의’는 그들의 개인 유튜브 채널과 사설 학원 업체의 홍보 영상은 물론이고 자기계발 유튜브에서 ‘#공부자극 #쓴소리 #명언’이라는 열쇳말로 소비된다. 이들의 쓴소리는 공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신 관리, 친구 사귀기, 재산 관리, 외모 관리까지 인생 전반을 아우른다.

물론 인강 강사의 ‘인생 조언’은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 등 1세대 인강 강사들 때부터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생 조언’은 강의에 딸린 곁가지 콘텐츠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그때와 다른 점은 부의 과시다. 스타 강사들이 앞다퉈 진출한 유튜브 세계에서 보여주는 초호화 일상 브이로그와 재산 현황 공개는 모두 ‘인생 교리’와 한 쌍이다. ‘견뎌라. 그 고난 끝에 람보르기니 몇 대와 요트, 연회비 200만원짜리 신용카드 멤버십, 시그니엘호텔 뷰를 곁들이는 식사가 있을 것이니!’

스타 강사는 지상파 드라마의 남주인공 직업으로 강림하며 ‘판타지’ 자리도 꿰찼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 tvN 제공

스타 강사는 지상파 드라마의 남주인공 직업으로 강림하며 ‘판타지’ 자리도 꿰찼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 tvN 제공

주식이나 부동산 유튜버와 다르지 않은

인강 강사를 통해 일부 중산층만 독점하던 최고의 수업을 전국 학생이 누리게 됐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뚫었더니 서울 중심주의가, ‘번역 인공지능 서비스가 발달하니 영어 중심주의가 강화된다’(응용언어학자 김성우)는 말처럼, 오히려 ‘입시 중심주의’가 판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입시 중심주의는 지금 시대의 능력주의와 공정의 가치관과 연동됐다. 인강 강사들의 인생 강의 영상의 얼굴을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셀럽 주언규(‘신사임당’), 정태익(‘부읽남’)의 얼굴과 바꿔치기해도 큰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인강 강사의 아우라는 “고3의 증상은 인강 강사가 잘생겨 보이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부터 희미해지기 마련 아닌가. 그럼에도 수험생이 아닌 일반 성인 사이에서까지 입시 강사가 인기를 끄는 건, 지금 사회가 전반적으로 입시 중심주의와 얽혀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대표적인 ‘학원 재벌 기업’ 메가스터디는 재수와 편입을 포함한 입시는 물론이고 대학 전공 과목, 공무원, 공기업, 사기업, 대학원, 전문기술, 부동산자격증 관련 시험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게임아카데미에서 웹소설 데뷔 반까지 론칭했다. 이정도면 한 사교육 업체가 우리나라 시민의 전 생애 교육에 개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사교육은 오래전부터 맞벌이 보호자를 대신한 돌봄서비스, 다른 또래와 관계 맺는 장소로서 구실까지 맡았다. 하지만 대체로 사교육과 공교육의 관계는 이분법 구도로만 이야기된다.

“저는 공교육 교사가 아니라 사교육 강사이고, 제 의무는 학생들 성적을 올리는 일이며, 가르치기 싫은 학생을 가르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서울 목동의 한 학원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내용이다. 그는 이 외에도 위문편지 논란이 있던 진명여고 출신의 학생을 받지 않고 재원 중인 학생도 퇴원 처리하겠다거나, 여성에게 ‘임신 영장’을 발부해야 한다는 게시물로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수학 1타 강사 현우진은 학생들 앞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일부 여론에 대한 반박으로 “‘하층민’스러운 마인드”라고 발언했다. 이렇게 사교육 업계에선 ‘사견’을 마구 내뱉는데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은 인강 강사들의 재산 수준과 수입차 구매 사실을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가르치지 않을 권리’ ‘하층민스러운’ ‘임신 영장’…

교사의 권위와 실력이 오로지 입시 성공에만 달린 지금, 공교육 교권의 침해와 학교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학생들 그리고 인강 강사에 대한 숭배는 한패다. 사교육 시장의 1세대로 뛰어든 586세대(50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가 외면한 교육공동체의 토양, 진보정치 인사 사이에서 터진 입시 비리로 횡행하는 교육정의에 대한 불신을 업고 스타 강사의 후광은 그 어느 때보다 ‘글로리’하다. 우리 교육의 앞날은 “하긴, 하는 만큼”(이미상, 단편 ‘하긴’) 달라지지 않겠는가.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청춘의 봄비: 같은 비라도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풍경과 수해로 나뉘는 것처럼, 흥미롭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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