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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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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에서는 머리는 차갑게 배는 뜨겁게

등록 2022-12-13 17:14 수정 2022-12-14 13:24
구들을 덥히다 만난 개구리 친구. 

구들을 덥히다 만난 개구리 친구. 

집에는 오래된 구들방과 시멘트로 짓고 기름보일러로 돌아가는 건물 두 채가 있다. 1980년대 지었다고 집문서에 기록됐으니 족히 30년 이상 된 건물들이다. 집을 보러 왔을 때 보니 구들방에 흔들의자를 비롯해 텔레비전과 전기장판이 놓여 있었다. 이전에 계셨던 할아버지는 주로 이곳에서 생활하신 것 같다. 이웃 어르신 댁도 기름보일러가 돌아가는 집과 구들방이 있는데, 어르신은 구들방에서 지내신다.

2021년 2월 이사 들어오기에 앞서 1월부터 집 청소를 했다. 집에서 낡은 물건이 태우고 버려도 끝없이 나왔다. 잠깐 틈날 때 구들방에 들어가서 쉬었다. 구들을 어떻게 때는지 몰라 냉골에서 이불만 뒤집어쓴 채 추위를 견뎠다.

입주 뒤 친구네 커플과 같이 살았다. 친구들에게 구들방을 내주고, 우리는 대나무숲에 가려 햇빛도 안 들어오는 북향집에서 잠을 청했다. 시골은 도시보다 추웠고, 집 안 온도가 11도까지 떨어졌다. 자급의 삶을 살겠노라, 생태적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고 온 터라 기름을 아끼기 위해 보일러를 틀지 않았다. 작은 히터 하나를 틀고 이불을 세 겹 덮었다. 그에 비해 구들방의 친구들은 매일 아침 따뜻하게 자고 일어났다. 내심 부러웠다.

2022년 올겨울은 다르다. 커플이 나가 비워진 구들방을 우리가 본격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어깨너머로 본 터라 불을 붙이는 일조차 어려워 처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불이 붙나 안 붙나를 지켜보며 1시간 넘게 아궁이 앞에 서 있기도 했다. 그래도 방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쳐 쉽게 불붙이는 방법을 알게 됐다. 먼저 집 뒤뜰에 무성히 자라는 대나무를 잘라 한동안 썩히고 썩은 것을 부숴놓는다. 이것을 쪼개서 아궁이 바닥에 우물 정(井) 모양으로 두세 겹 깔아준다. 신문지나 폐휴지 등 종이 종류를 1차 불쏘시개로 넣는다. 그 위에 목공소에서 버린 작은 나무 막대기를 넣는다. 불이 올라오면 두꺼운 참나무 장작을 넣는다. 종이는 확 타오르고 금방 꺼진다. 대나무는 바통을 이어받아 강렬히 더 오래 타오르고, 이것이 나무 장작에 옮겨붙는다. 불이 도미노처럼 강렬하게 옮겨간다.

30분 정도 이렇게 타다보면 불기가 고스란히 구들장에 전해져 바닥이 데워진다. 건물의 실내 온도가 12~13도까지 떨어진다면 구들방 바닥은 17~18도까지 올라간다. 인간의 머리는 쉽게 뜨거워지고 배는 차가워진다. 이는 다양한 질병으로 이어진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뜨거워져 탈모가 생기고, 배가 차가워져 각종 소화기 질환 등을 앓는다. 그래서 항상 머리는 차갑게 배는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은데, 구들방은 아래는 뜨겁고 위는 차갑기 때문에 자는 동안 몸의 순환을 일으켜 일어났을 때 개운하다.

11월 중순부터 구들방에서 잤는데, 짝꿍과 나는 서로 구들방의 따뜻함과 쾌적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불을 처음 발견한 원시인처럼 즐거워했다.

올겨울을 나려면 조금 더 충분한 땔감이 필요하다. 뒤꼍의 대나무를 모아 잘라 썩히고, 마을 곳곳에서 꾸준히 땔감을 주워야 한다. 모아온 나무를 망치와 정으로 쪼갠다. 이 수고를 기꺼이 치르고 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름을 쓰지 않고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전남 곡성으로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어떤 집이든 간에 구들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생태적이고 멋진 집을 짓고 싶은데 그때도 꼭 구들을 넣을 것이다. 물론 지금보다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 장작을 조금만 넣어도 방이 후끈해지도록 말이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박기완 경남 밀양의 농부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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