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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개근상을 받은 사나이, 박용택

‘2237경기 출장 1위’의 대기록 세운 박용택 은퇴식, 최선을 다한 이의 후련함 혹은 찬란함
등록 2022-07-11 15:13 수정 2022-07-12 11:38
2022년 7월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박용택의 은퇴식에서 ‘관리택’ ‘울보택’ 등 박용택의 별명을 새긴 유니폼을 입은 LG 선수들이 박용택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7월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박용택의 은퇴식에서 ‘관리택’ ‘울보택’ 등 박용택의 별명을 새긴 유니폼을 입은 LG 선수들이 박용택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달 전 회사 선배가 정년 퇴임을 했다. 회사 3층 퇴임식장에는 선배 가족을 비롯해 많은 동료가 모여 선배의 마지막 날을 축하해줬다. 한때 병마와 싸우기도 했던 그는 넉넉한 미소와 함께 기자로서, 가장으로서 소임을 다했다. 많은 이의 박수를 받으며 인생 1막을 끝내는 그를 바라보며 나 또한 잠시나마 끝을 생각했다. 그날이 오면 섭섭할까, 후련할까.

암흑기에도 꿋꿋이, 손해 보면서도 의리 지켜

2022년 7월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도 이별식이 있었다. 엘지(LG) 트윈스의 심장으로 불렸던 박용택의 공식 은퇴식과 영구결번식(33번)이 열린 것. 박용택은 2020년 말 은퇴했는데 코로나19로 관중 입장이 제한됐던 터라 인제야 그라운드 작별 시간이 마련됐다. 이날 경기의 입장표(2만3750석)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박용택은 엘지뿐만 아니라 한국 야구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2002년부터 2020년까지 엘지 유니폼을 입고 19시즌 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KBO리그 통산 2237경기 출장(1위, 은퇴식 선발 출장 포함), 9138타석(1위) 8139타수(1위) 2504안타(1위) 213홈런 313도루의 대기록을 세웠다.

2009년 홍성흔(당시 롯데 자이언츠)과 타격왕 경쟁을 하다가 막판 타율 관리에 나서 ‘졸렬택’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기도 했으나, 그는 ‘용암택’ ‘기록택’ ‘기부택’ ‘관리택’ ‘매너택’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렸다. 엘지의 암흑기 시대에 꿋꿋이 팀을 지켜냈고, 세 차례 얻은 FA(자유계약) 자격 때도 큰 금액을 손해 보면서까지 팀 그리고 팬과의 의리를 지켰다.

박용택은 팬들의 사인 요청에 언제나 기꺼이 응해 ‘팬 서비스 교과서’로 불렸다. 7월3일 은퇴식 때도 박용택은 그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팬 서비스를 했다. 행사 뒤 잠실야구장 주변에서 다음날 새벽 4시까지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해주고 같이 사진을 찍어줬다. 박용택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고, 팬보다 위대한 팀은 없고, 팬보다 위대한 야구도 없다”고 했다.

박용택이 현역 시절 더 인정받은 까닭은 철저한 자기관리도 있었다. 그는 선수 시절 내내 필사적으로 루틴 안에서 행동했다. 하루 휴대전화 알람을 5~6개 맞춰놓고 자기만의 규칙대로 생활했다. 홈경기가 오후 6시30분에 시작하는 날에는 오전 11시에 일어나고 오후 1시쯤 잠실야구장에 도착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1시간30분 전, 30분간은 꼭 쪽잠을 잤다. 오후 5시쯤 자기 전에는 준비한 것을 스스로 체크했다. 잠이 안 오면 눈만이라도 감고 있었다.

일어나 먼저 내딛는 발까지 계산한 루틴의 사나이

박용택은 말솜씨가 꽤 좋은 선수였으나 경기 전에는 절대 인터뷰하지 않았다. 기자들도 그의 루틴을 알았기에 굳이 그 흐름을 깨지 않으려 했다. 하루는 그가 화장실 세면대에서 푸시업을 하다가 세면대가 무너져 오른 손가락을 다쳤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현장 기자들은 대부분 “세면대가 무너져요?” 의아해하다가 그 당사자가 박용택이라는 말을 듣고 전부 수긍했다. 박용택은 그만큼 신뢰를 주는 선수였다.

하지만 루틴이란 것은 또 하나의 감옥이다. 분 단위, 시간 단위로 또박또박 맞춰 20년 가까이 살아내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용택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내딛는 발까지 계산했다. 겉으론 늘 웃고 있었지만, 그는 사실 신경이 곤두선 채 그라운드에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2018년 한때 공황장애를 겪었다. 성적 스트레스와 다가오는 끝맺음의 시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한동안 타석에 들어갈 때 다리가 떨렸고, 잠실야구장으로 출근할 때는 심장이 엄청 뛰어 호흡곤란까지 겪었다. 그는 전문가 상담과 약 처방 등으로 버텼고, 그해 말 3번째 FA 계약을 하면서 “2년 뒤 은퇴”를 못박았다. 자신에게 ‘야구 정년’을 부여한 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

박용택은 스스로를 매일 채찍질하는 노력형 선수였다. 19년 선수 생활 동안 타격폼을 100번 이상 바꿨고, 타격 느낌 그대로를 위해 팬티만 입고 몇 시간씩 연습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정한 정년을 끝으로 은퇴한 뒤에는 “정말 후련한 느낌이다. 티끌만큼도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방송해설위원이 된 뒤에는 “유니폼을 벗은 지금은 타율, 안타 등 온갖 숫자에서 다 해방된 느낌”이라고도 했다.

돌아보면 이승엽(전 삼성 라이온즈)도, 김태균(전 한화 이글스)도 박용택처럼 은퇴 직후 “후련하다”는 말을 했다.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공식 은퇴 투어를 한 이승엽은 “이제는 나를 토닥여주면서 그동안 너무 고생했으니까 이제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충분히 하면서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선수 시절 불면증으로 고생하다가 은퇴 뒤에야 단잠을 잔다는 김태균은 “누구보다 더욱 열심히 했기에 단 한 톨의 후회도 안 남고 아쉬움도 안 남는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야구선수’라는 무게의 짐은 그만치 무거웠다.

최근 선배에게도 정년 퇴임 뒤 어떤 느낌인지 물었다. 선배의 답은 박용택의 그것과 비슷했다. “30년 넘게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서 아쉽다는 느낌은 없다. 감사한 마음과 후련한 마음이 교차하는데, 잘 버텨준 나 자신과 그동안 나와 함께한 주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대과 없이 무사 졸업하는 것이니까 꼭 개근상을 받은 느낌 같기도 하다.”

잘 버텨준 나, 함께해준 주변에 감사

박용택도 어쩌면 야구 개근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루하루 나태해지려는 자신과 싸우면서 끝까지 그라운드를 지켰다. 그 하루하루가 쌓여 통산 최다 경기 출장을 이뤄냈고, 집중해서 때려낸 안타 하나하나가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통산 안타 숫자를 만들어냈다. 박용택은 “어떤 결과를 내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다만 그저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선배도, 박용택도 나날의 최선 끝에 만족스러운 마지막을 품었다.

야구의 출발점은 홈이다. 그리고 종착점도 홈이다. 홈에서 홈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험난하다. 1루까지 가기도 버거울 때가 있다. 누상에서는 ‘아차’ 하다가 횡사를 당하기도 한다. 동료가 도와주지 않으면 1루에 있든, 2루에 있든 헛수고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홈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을 멈출 수는 없다.

박용택처럼, 이승엽처럼, 그리고 선배처럼 끝끝내 홈을 밟고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기 위해 오늘의 타석에 서서 오늘의 공을 힘차게 때려내야겠다. 찬란한, 아니 후련한 끝을 위해.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인생 뭐, 야구’ 시즌2를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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