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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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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믿음’을 주는 심판

베이징겨울올림픽 그리고 2022 시즌에서 문제가 될 ‘스트라이크존 확대 공식화’
등록 2022-02-20 19:28 수정 2022-02-21 02:00
2022년 1월11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스트라이크존 확대’ 적용을 위해 훈련 중인 심판진. 연합뉴스

2022년 1월11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스트라이크존 확대’ 적용을 위해 훈련 중인 심판진. 연합뉴스

그러니까 심판이 문제다. 야구 얘기? 아니다. ‘일단은’ 베이징겨울올림픽 얘기다.

쇼트트랙에서도,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스키점프에서조차 심판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과 일본의 여론을 들끓게 한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심판 논란의 얼개는 얼추 비슷하다. 심판이 자국 선수(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개최국인 중국 선수에게 메달을 안겼다는 것이다. 이른바 ‘국뽕’까지 곁들여지며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스키점프에선 어이없는 복장 규정 위반 실격이 나왔다. 일본과 독일 선수, 팬들이 부글부글 끓었다. 개인 종목 때 허가됐던 복장이 단체 종목 때는 불허되면서 실격돼, 선수들이 점프를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심판은 오락가락 판정을 내렸다. 어제는 맞던 게 오늘은 틀린다면 누가 수긍할 수 있을까. 공정의 추가 흔들린 스포츠는 존립 기반까지 위태롭게 된다. 진폭이 클수록 더욱 그렇다.

2014년부터 계속 뜨거운 감자

겨울올림픽 심판 판정 얘기를 꺼낸 것은 곧 프로야구에도 닥칠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2022 KBO리그 시즌 최대 화두는 심판 판정이 될 것이다. 콕 집어 말하면 ‘스트라이크존’이다. 720경기(정규리그 기준) 내내 야구 커뮤니티에서 팬들 입길에 오르내리는 스트라이크존이지만 올해는 더 심해질 듯하다. 스트라이크존 확대가 공식화됐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초 중도 사임한 정지택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신년사에서 “스트라이크존 개선을 통해 볼넷 감소, 공격적인 투구와 타격을 유도해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드리겠다”고도 못박은 바 있다.

사실 스트라이크존은 타고투저(투수의 기량이 타자보다 낮은 현상)가 심해진 2014년부터 계속 ‘뜨거운 감자’였다. 타고투저 원인을 꼽을 때마다 좁은 스트라이크존이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실제로 현장 투수코치들은 미국(MLB), 일본(NPB)에 비해 스트라이크존이 좁다고 항변했다. 리그 안에서 젊은 투수들의 성장이 더딘 이유도 좁은 스트라이크존 탓이라고 했다.

타고투저 완화를 위해 KBO는 가장 먼저 공인구 반발력을 낮췄다. ‘탱탱볼’ 논란이 일 정도로 빗맞은 공이 홈런으로 연결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타격폼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친 공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마운드 위 투수는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공인구 변화의 칼을 꺼내 들기는 했으나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경기당 평균 홈런 수는 2018년 2.44개에서 공인구 반발력을 줄인 2019년 1.41개, 2020년 1.89개, 2021년 1.61개로 점차 줄었으나 볼넷이 눈에 띄게 늘었다. 2018년 6.42개이던 리그 평균 볼넷은 2021년 8.18개로 대폭 증가했다. 심판들이 방송 중계 화면을 의식하면서,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영역(스트라이크존)이 점점 좁아졌기 때문이다. 타자들은 좋은 공을 마냥 기다렸고, 투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중앙으로 공을 찔러 넣었다. 실투를 부르는 스트라이크존이었다고나 할까.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응한 선수는 즉각 퇴장”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은 국내 투수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대회였다. 김광현, 류현진 등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세계야구클래식(WBC) 준우승을 이끈 선수들의 출전이 어려워지자 투수 엔트리(선수 명단) 짜기도 버거웠다. 국내 리그 투수 수준의 현주소를 자각했다. 그리고 한국은 4위의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KBO가 이후 부랴부랴 꺼내든 해결책 중 하나가 스트라이크존 확대다. KBO는 스트라이크존 확대에 대해 “지금껏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는 공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볼 판정이 나왔는데 앞으로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허운 심판위원장 또한 “그동안 허리 쪽 공에 대해 스트라이크 판정이 인색한 점이 있었는데 규정에 최대한 맞춰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심판진은 스트라이크존 확대 적용을 위해 휴가도 반납하고 1월 중순부터 훈련했다.

2월 초 시작된 스프링캠프에서 달라진 스트라이크존 적응으로 훈련 중인 구단들은 아직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 “심판들이 스트라이크존 변화에 관해 설명했는데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스트라이크 판정에 선수가 불응할 경우 즉각 퇴장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고 했다.

2년째 KBO리그에서 활약하게 될 추신수(SSG 랜더스)는 스트라이크존 변화에 의구심을 표한다. “일단 룰이 바뀌었으니 따라야 한다”면서도 “갑자기 바뀐 스트라이크존에 나뿐만 아니라 많은 선수와 심판이 힘들어할 것 같다”고 했다.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초반 쇼트트랙에서 판정 문제가 거듭 불거졌던 이유 중 하나는 국제빙상연맹(ISU)이 2021~2022시즌에 앞서 추월할 때 뒷주자의 책임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바뀐 규정 탓에 올림픽 이전 월드컵 시즌에서도 문제가 꽤 많았다. 쇼트트랙 심판위원들도 변화의 과정에서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한국을 비롯한 헝가리, 러시아, 미국 등의 항의가 빗발치자 심판진의 판정이 다소 느슨해진 감이 없지 않았다.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첫 판단

프로야구도 2022년에 쇼트트랙과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심판도, 선수도, 팬도 바뀐 스트라이크존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존이 좁든 넓든 한결같기만 하면 될 것이다. 오락가락하는 스트라이크존은 심판도, 선수도, 팬도 헷갈리게 할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의심과 불신만 쌓여갈 것이다.

야구는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포수 미트에 박힌 뒤 심판의 스트라이크/볼 콜이 나오면 시작된다. 첫 판단이 경기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이어진다면 잡음은 덜하지 않을까. 야구도, 쇼트트랙도 그리고 인생도 결국 중요한 것은 공정, 공평하다는 믿음이니까.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인생 뭐, 야구’ 시즌2를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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