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에 연재하던 칼럼 취재를 위해 서울과학수사연구소를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부검 과정을 참관하고, 부검을 진행한 법의관과 인터뷰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질병이 무엇인지를요. “이곳에서 일하면서 폐렴의 무서움을 알게 됐지요. 암이나 다른 질병과 달리 폐렴은 순식간에 진행됩니다. 미처 손조차 쓸 수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죠.”
당시에는 이 말에 크게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10여 년 전에 폐렴에 걸린 적이 있지만, 예전에나 무서운 병이었지 이제는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 생각해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당시 법의관의 걱정이 조금 이해되려고 합니다. 한때 잦아들 것으로 여겨졌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환자가 다시금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안타깝게 사망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감염증 유행이 진행 중이어서 정확한 결론은 내릴 수 없지만, 사망자 상당수가 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코로나19’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채택되기 전, 이 증상이 ‘우한 폐렴’이라고 불렸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2월6일 경기도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폐렴 환자 대상 코로나19 감염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폐렴에 대한 관심도, 두려움도 상대적으로 높아졌습니다.
폐렴, 순식간에 삶을 앗아가는 무서운 병사실 폐렴은 오랫동안 ‘죽음의 사신’으로 불렸습니다.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 폐렴의 사망률은 30~90%에 이를 정도로 높았거든요. 오죽하면 ‘현대의학의 아버지’라는 윌리엄 오슬러 경(1849~1919)은 저서에서 폐렴을 ‘나이 든 이들의 친구’라고 칭했을까요. 그건 폐렴이 좀 귀찮은 친구처럼 한 번 앓고 지나가는 병이라서가 아니라, 노인이 폐렴에 걸리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죽음이 빨리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그만큼 폐렴은 걸리는 즉시 죽음을 떠올리게 할 만큼 무서운 병이었고, 실제로 오슬러 경도 1919년, 전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의 합병증으로 인한 폐렴으로 사망해 자신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준 셈이 되었지요.
기세등등했던 폐렴의 위세를 꺾은 결정적인 계기는, 20세기 중반 알렉산더 플레밍이 최초로 발견하고 언스트 체인과 하워드 월터 플로리에 의해 대량생산에 성공했던 항생제 페니실린의 등장이었습니다. 페니실린은 폐렴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인 폐렴구균을 공격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보였지요.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항생제가 개발된 이후 사망 원인에서 폐렴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낮아져, 1990년대 전반에는 전체 사망자의 0.9%에 그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폐렴은 서서히 독성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최근 폐렴 사망자가 늘기 시작해, 다시 주요 사망 원인으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2018년 국내 총사망자의 7.8%에 이르는 2만3280명이 폐렴으로 숨졌습니다. 이는 암(7만9153명, 26.5%)과 심장질환(3만2004명, 10.7%)에 이어 사망 원인 3위에 해당합니다. 도대체 항생물질의 발견과 함께 사라질 것 같았던 폐렴이 왜 다시 이렇게 맹위를 떨치는 걸까요?
폐렴이란 말 그대로 폐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폐포에 전반적인 염증반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외부 물질에 매우 까다롭게 굴어 외부에서 해로운 물질이 들어오면 즉시 대응하는데, 이를 통틀어 염증반응이라고 합니다. 염증반응은 해로운 물질을 인식한 면역계가 비만세포(mast cell)를 통해 히스타민을 분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히스타민은 해당 부위의 혈류량을 늘리고 혈관벽을 느슨하게 하여 각종 면역세포를 불러들이고,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사이토카인의 생성을 자극합니다. 혈관벽이 느슨해져 피와 체액이 쏠리고 면역세포가 한꺼번에 몰려드니, 염증반응이 생긴 곳은 당연히 빨갛게 부어오르고 열감이 느껴집니다. 또 신경이 자극돼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전시에는 가용자원이 모두 전투에 집중돼 정상적인 생산활동이 중단되는 것처럼, 염증반응이 일어난 주변 세포들 역시 생체 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발적(피부·점막이 빨간빛을 띠는 것), 부종, 열감, 통증, 세포 기능 상실은 염증반응의 대표 증상으로 꼽히지요.
염증, 정확히는 그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는 것에 현대의학은 두 가지로 대응합니다. 바로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과 염증반응 자체의 과정을 억제하는 것이죠. 무슨 일이든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결과를 수습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대책입니다.
그런데 폐렴을 일으키는 원인은 밝혀진 것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세균(폐렴균, 레지오넬라균, 포도상구균 등), 마이코플라스마, 바이러스(인플루엔자, 아데노바이러스, RS바이러스 등), 진균(칸디다, 아스페르길루스 등), 원충(톡소플라스마 등) 같은 생물학적 원인뿐 아니라, 꽃가루를 비롯한 각종 알레르기원, 독성화학물질, 방사선에 의한 손상 등 비생물학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일어납니다. 이들의 결과는 모두 폐렴이지만 원인이 다르므로 효과적인 치료법도 달라집니다.
그중 세균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세균성 폐렴은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20세기 후반 폐렴 사망률이 급격히 낮아졌던 것은 당시 폐렴을 일으키는 원인 중 대다수가 세균이었고, 이 시기 효과 좋은 항생제가 여럿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폐렴의 주요 원인으로 바이러스가 급부상했고 세균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항생제는 바이러스를 죽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서 문제가 커집니다.
모든 이에게 지붕이 될 수 있기를코로나19에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주된 이유는, ‘예방백신도 치료제도 없다’는 것입니다. 전통사회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요 요소들은 전쟁과 기아, 그리고 질병이었고 현대사회의 큰 업적 중 하나는 이들의 해악을 줄였다는 것입니다. 현대적 의료시스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공포에 떨지는 않습니다. 치료 방법이 있을 거라 기대하니까요. 우리가 질병으로 인해 진정으로 공포에 질리는 순간은 아직 대응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코로나19를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건 비단 코로나19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종류의 바이러스성 폐렴도 마찬가지입니다(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타미플루·릴렌자 등 치료제가 개발됐으나, 그것조차 독감이 폐렴으로 진행되는 것을 억제할 뿐 일단 폐렴이 발생하면 큰 효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나 연령대가 높거나 다른 기저질환이 있으면, 임신부(임신하면 모체의 면역계가 태아를 공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면역력이 저하됩니다)는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해 더욱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요?
문득 보건역학 전문가 김승섭 교수의 저서 (동아시아, 2017)에서 “비를 피할 수 없다면, 같이 맞아주는 사람이 되겠다”라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는 대규모 감염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역학(疫學, epidemiology)에서 가장 핵심을 찌른 말이라 여겨집니다.
바이러스는 숙주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숙주가 돼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바이러스가 아무리 위세를 떨치더라도 결국 그 감염 고리는 끊어지고 질병의 대유행은 종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고(환기가 안 되는 실내에서의 모임 자제, 대규모 행사 자제, 의심시 자가격리, 타인과 거리 두기), 바이러스의 유입 경로를 차단하고(손 씻기, 눈과 코 만지지 않기, 기침이 날 때는 마스크 쓰기), 방역과 치료에 필요한 한정된 자원이 더 취약한 이들에게 돌아가도록 사회적 순번 정하기는 매우 당연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바이러스의 개체 이동을 근본적으로 막아 확산을 멈추는 가장 근본적이고 훌륭한 대응책이 될 수 있죠.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를 지켜주는 지붕이 되어주겠다는 마음가짐이 더욱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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