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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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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 그 콩을 먹지 마오

몬산토의 ‘제5의 국제범죄’ 고발하는 <에코사이드>
등록 2020-01-15 02:14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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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으로 일그러진 새끼 돼지를 보았을 때 저는 거기서 제 아들 테오를 보았어요.” 프랑스 엄마 사빈 그라탈루는 덴마크에서 양돈장을 운영하는 돼지 사육사 이브 페데르센의 기형 새끼 돼지가 자기 아이 같다고 말했다. 사빈의 아이 테오는 2007년 5월 식도와 후두 기형으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의 의사 다미안 베르자냐시도 아픈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가 의대생들과 함께 아르헨티나의 26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공동체 역학조사'를 하는 동안, 마을 주민들은 신장 기형으로 태어난 손녀 이야기를 털어놨다.

사빈, 이브, 다미안은 인간과 동물을 가리지 않는 생태 참사의 원인으로 다국적 농업기업 ‘몬산토’를 지목한다. 우리에게는 고엽제와 유전자변형농산물(GMO)로 알려진 바로 그 몬산토다. 2016년 10월1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이 세 사람을 비롯해 24명이 증인으로 참석한 ‘몬산토 국제법정’이 열렸다. 법적 구속력 없는 시민법정이었지만, 몬산토는 생태계에 심각한 해악을 초래한 혐의로 재판받았고, 판사들은 ‘생태학살'이라고 판결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마리모니크 로뱅이 쓴 (시대의창)는 이윤 추구에 충실한 기업이 주범이 된 ‘제5의 국제범죄'에 대한 책이다. 국제형사재판소의 로마 규정은 인종 학살, 인본주의에 반한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네 가지를 재판 대상으로 정하는데, 그 다섯 번째로 ‘생태학살'이 추가돼야 한다는 요구가 몬산토 국제법정에서 분출했다. 생태학살이라는 말이 과격한가? 이 대기획에 참여한 양심적인 전문가와 스스로 증거가 된 피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진짜 과격한 것은 기업과 한통속으로 움직이는 과학, 정부, 언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몬산토는 어떻게 생태학살의 가해자가 되었을까. 바로 글리포세이트와 GMO의 교묘한 ‘조합’ 때문이다. 몬산토가 개발한 GMO 콩(라운드업 레디)을 심고 글리포세이트를 주요 성분으로 하는 몬산토의 제초제(라운드업)를 살포하면, 콩은 살고 잡초만 제거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람이 필요 없는 기계식 대농업이 가능했다. 아르헨티나 경작지의 60%는 이 조합에 잠식됐다. 글리포세이트가 살포되는 경작지 인근 아르헨티나 농촌마을 곳곳에서 기형으로 태어나는 아이들, 암에 걸리는 주민이 폭증했다.

‘몬산토 조합’으로 생산된 콩을 사료로 먹인 미국과 독일, 덴마크의 축산 농가들은 소와 돼지가 아프거나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덴마크 사육사 이브가 증거로 수집한 38마리의 돼지 사체를 해부한 독일 수의학자 모니카 크루거는 어미 돼지가 0.87~1.13ppm 수준의 글리포세이트가 함유된 콩을 임신 초반에 먹었을 경우, 기형 출산 비율이 260마리 중 1마리꼴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럽연합이 허용한 콩의 글리포세이트 잔류량은 20ppm이다.

도시에 살고, 동물도 아닌 나는 안전할까? 저자 마리모니크 로뱅을 비롯한 프랑스인 30명의 소변을 분석한 결과 “30개 중 29개에서 글리포세이트의 농도는 허락된 최고치(0.1㎍/ℓ)의 12배를 상회했다”. 이후 프랑스 사회에 소변 검사를 하는 사람들의 결사체인 ‘자발적 오줌싸개들’이 등장했다.

한국 독자도 ‘자발적 오줌싸개들’이 되어달라는 게 한국어판에 실린 저자의 요청이다.

진명선 기자 팀장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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