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짐승을 가축으로 여러 종류 많이 키울 때는 병치레도 잘 안 하고 쉽게 잘 컸습니다. 그때는 고양이나 개를 방 안에 가두고 키우지 않았습니다. 자연 그대로 풀어놓고 때 되면 밥 주고 물 주면 마음껏 뛰어놀고 쑥쑥 잘 자랐습니다. 때가 되면 알아서 털갈이해서 날마다 씻겨주는 것보다 훨씬 윤기 나고 고운 털을 유지했습니다. 짐승은 밖에 두고 보살피면 알아서 돌아다니며 아주 건강하고 예쁘고 영리하게 잘 살았습니다.
브로콜리는 먹고 흰색 콜리플라워는 안 먹고베트남에 산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나는 친정에서나 시집에서나 항상 가족이 많아서 외로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베트남으로 떠나오기 전, 큰딸이 시집갈 때 놓고 간 스누피 인형을 손주가 할머니 거라고 짐 속에 넣어주었습니다. 워낙 먼 베트남에 와서 아는 사람 없을 때 스누피 인형한테 위로받고 살았습니다. 남편이 딱했는지 어느 날 조그만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아파트에 조그만 고양이 새끼 한 마리 달랑 갖다놓고 키우다보니 그야말로 애가 탑니다. 하도 애가 타서 애완동물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대소변도 가릴 줄 몰라 멀쩡히 놀다가도 침대 위에 올라가서 쌉니다. 고양이가 제 화장실을 사용하기까지 별별 수다를 다 떨고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고고는 멀쩡히 잘 놀다가도 사람 소리만 나면 창고 방에 가 숨어서 나오질 않습니다. 우리 집에 오던 첫날 같이 있던 이웃 최씨 아저씨와 가끔 엄마를 따라 놀러 왔던 민영이 외에는 절대 아는 체를 안 하려고 합니다. 1학년인 민영이는 고양이 고씨에 고기를 좋아하니까 ‘고고’라고 이름 지어주었습니다.
고고는 아무도 없으면 졸졸 따라다니면서 온갖 참견을 다 합니다. 하루는 베트남 특산인 수수라는 나물을 삶아 담가놓았는데 발로 살며시 건져 먹고 있는 겁니다. 아! 고고가 삶은 나물을 좋아하는구나. 이것저것 줘봤습니다. 나물이라고 무조건 먹는 것이 아니고 수수 나물은 줄기만 먹고 잎은 먹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생겼어도 흰색 콜리플라워는 안 먹고 파란 브로콜리만 먹습니다. 삶은 배추 이파리를 주었습니다. 조금 있다 보니 무슨 징그러운 지네 같은 것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고고가 삶은 배추 이파리만 먹고 줄기를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 모래를 묻혀 지네처럼 만들어 놀고 있던 것입니다.
베트남 온 지 3년째 되는 해, 땅을 빌려 집을 짓고 이사했습니다. 고고는 맨 마지막 실을 물건 밑에 감추어놓았다가 이삿짐과 함께 이사했습니다. 방 하나를 먼저 꾸려 고고를 방에 풀어주었습니다. 이삿짐 아저씨들이 잘못 알고 가구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고고는 깜짝 놀라서 창문을 뛰어넘어 건물 뒤 좁은 골목을 지나 풀밭으로 도망갔습니다. 이틀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고양이를 먼저 이사시키고 방문을 잠갔으면 될 일을. 고고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간의 고생을 이야기하듯이틀이 지난 밤중에 뒷골목에서 조그맣게 고양이 소리가 들립니다. 반가워서 맨발로 뛰어나갔습니다. “고고야, 어서 와.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고고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도로 골목 끝까지 돌아가 야옹야옹합니다. 벽을 기어오르는 시늉도 합니다. 놀라서 빨리 뛰어 골목으로 도망갔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아주 몸을 웅크리고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시늉도 합니다. 한 20m 되는 좁은 골목을 들어오는 데 30분 넘게 걸렸습니다. 여러 번 이야기한 끝에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집에 들어오자 허겁지겁 밥을 먹더니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굴려도 모르고 꼬박 하루 밤낮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애교가 더 늘었습니다. 1층 집이니 통제가 안 됩니다. 문 열 때마다 가만히 뛰어나가고 창문을 넘어 마당 풀밭에 돌아다니며 열심히 사냥합니다. 강아지처럼 큰 쥐가 기어가면 무서워서 집 안으로 도망칩니다. 아직 올챙이 꼬리가 붙은 개구리도 잡아오고 골방 쥐새끼도 잡습니다. 사냥한 다음엔 물고 와서 야옹거리며 보여줍니다. 칭찬해주면 가지고 놀다가 먹지 않고 내 침대 밑에 갖다놓았습니다.
마당 있는 집에 살다보니 점점 짐승을 늘렸습니다. 강아지도 네 마리나 키웠고 열두 마리의 꼬꼬도 키우게 되었습니다. 꼬꼬 먹이로 참깨를 주다보니 마당에 참깨가 저절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먹이가 있으니 베트남에서 보기 드문 귀한 새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시내에서는 참새나 겨우 볼 수 있는데 까치처럼 큰 새도 날아와 놀다 갑니다.
아주 예쁜 파랑새 부부가 하루에 한 번씩 꼭 날아와 참깨를 먹으며 즐겁게 놀다 갔습니다. 고고는 파랑새가 올 때마다 풀밭에 숨어서 엉덩이를 얄랑거리며 잡을 기회를 노립니다. 그래도 어린놈이 설마 새를 잡으려니 했습니다. 하루는 작은방에 들어가 보니 파랑새 털이 많이 흩어져 날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파랑새 한 마리가 혼자 와서 슬픈 소리로 울다 갑니다. 남편은 “고고 이 새끼, 시카리(서캐) 새끼. 그 새는 아빠가 키우는 건데 잡아먹으면 어떻게 해!” 하며 쥐어박았습니다. 고고는 꽁지 있는 개구리, 골방 쥐새끼는 잡아도 놔주고 파랑새는 몰래 먹고 털만 남겼습니다.
어물쩍하다 중성화수술을 못 했는데 고고한테 발정기가 왔습니다. 며칠 동안 아아오옹~ 아오오옹~ 별나고 시끄럽게 쉬지 않고 울어댑니다. 한참을 앙앙거리던 고고가 달려오더니 나한테 껑충 뛰어올라 힘을 다해 왼쪽 팔을 물고 할퀴며 대들었습니다. 억지로 떼어서 창밖으로 던지고 창문을 닫았습니다. 다시 들어오려고 뛰어올랐지만 창문에 쿵 부딪혀 떨어졌습니다. 고고는 집 뒷골목으로 도망갔습니다. 팔에 고고 발톱 자국이 나고 피가 흐르고 맺혔습니다. 창문을 너무 빨리 닫아 창에 부딪힌 게 잘못되지는 않았나, 걱정입니다.
거지꼴이 되어 납작 엎드려 돌아오다사흘째 되던 날, 오후 2시쯤 되었는데 집 뒷골목에서 고고 소리가 아주 조그맣게 들립니다. 남편이 듣고 고고 이놈 못된 버릇을 한다고 내쫓아버린다고 달려갑니다. 내가 얼른 뛰어가서 “고고야 괜찮다, 어서 들어와라”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주 미안해서 쩔쩔매는 시늉을 합니다.
작은 소리로 아옹아옹하고 벽을 확 할퀴는 시늉을 하고 엎드려 있기도 합니다. 거지꼴이 다 된 놈이 납작 엎드려서 아주 조금씩 조금씩 기어오느라고 들어오는 데 1시간은 걸렸습니다. 씻기를 싫어하는 놈이 따뜻한 물에 씻기니 가만히 있습니다. 서둘러 중성화수술을 했습니다. 고고는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다니다 흙 묻은 발로 들어와 꼭 침대 위에 올라가 잡니다. 40℃ 넘는 날씨에도 대낮에 침대 위에 올라가 매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늘어지게 잡니다. 고고는 베트남에서 맞이한 첫 애완동물로 이래도 저래도 나의 애를 태우며 같이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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