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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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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리고 떠난 오리

암탉이 품어 낳은 오리들, 어느 날 이웃집 손주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는데…
등록 2019-11-22 11:10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봄이 되니 암탉들은 3~4일 간격으로 서로 알을 품으려고 알둥주리를 차지하고 내려오지 않습니다. 집오리는 알 낳을 줄만 알았지 알 품을 줄을 모릅니다. 닭이 대신 품어주지 않으면 새끼를 깔 수 없습니다. 그해는 오리를 좀 많이 키울 생각으로 토종닭 여러 마리에게 알을 안겼습니다. 토종닭은 21개 정도 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계란보다 굵은 오리알은 15개 정도가 적당합니다. 닭이 오리알을 품은 지 28일이 되면 알에 실금이 가며 삐삐…삑삑 소리가 들리다가 알껍데기를 깨고 오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기가 오리 어미인 줄 아는 암탉

처음부터 예쁘게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털이 짝 달라붙은 게 좀 무섭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합니다. 알껍데기를 깨고 나와 조금 지나면 보슬보슬한 예쁘고 앙증맞은 오리새끼로 요술처럼 변신합니다. 튼튼하게 잘 크라고 첫 먹이로 계란 노른자를 먹입니다.

암탉은 제 새낀 줄 알고 꼬꼬거리며 부지런히 땅을 파 뒤집어 열심히 오리새끼를 거둡니다. 며칠은 암탉 품에서 잠도 자고 추위도 피하지만 오리새끼는 물만 보면 들어갑니다. 먹으라고 떠놓은 물통에 움직일 수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가기 일쑤입니다.

오리새끼가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강으로 보내주기로 합니다. 집에서 강까지 한 500m쯤 되니 한동안은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합니다. 앞에서 먹이를 조금씩 뿌리며 쭈쭈하며 갑니다. 오리새끼들은 한 줄로 서서 타다닥 타다닥 뒤뚱뒤뚱 하며 따라옵니다. 암탉들도 꼭꼭 하며 강까지 함께 갑니다. 오리새끼들은 물을 보자 뒤도 안 돌아보고 물로 들어가 파닥거리며 물을 뒤집어쓰고 놉니다. 어디서 이렇게 큰물을 본 적도 없고, 어미가 있어 교육받은 것도 아닌데 눈곱만큼의 무서움이나 망설임이 없습니다. 어린 오리는 깊은 강으로 가지 않고 소강에서 송사리나 작은 고기, 올챙이, 물벌레를 잡아먹느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암탉들은 꼬꼬꼬거리며 나오라고 나오라고 하지만 오리새끼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암탉들은 며칠을 따라다니다 지쳐 어미 노릇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해가 지면 강가에 가서 “쭈쭈~ 이제 해가 졌으니 집에 가자” 하면 용케 알고 몰려나옵니다. 하루이틀 하니 저녁이 되면 알아서들 돌아옵니다.

아침에 물까지 데려다주기만 하면 오리들은 물 위에 동동 떠다니며 알아서 놀다 집에 알아서 돌아오니 신경 쓸 일이 없었습니다. 까마귀나 매가 채러 내려오면 물속으로 쏙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리 날쌘 새매도 오리새끼는 채갈 수 없습니다. 하루는 오리새끼들이 집으로 들어오는 중에 족제비가 나타나 한 마리 물고 갔습니다. 바쁜데 저녁에 오리를 데리러 갈 생각을 하니 귀찮아서 “워리야, 오리 좀 강에 데려다주고 데려올래?” 해봤습니다. 다음날 아침입니다. 오리가 집을 나서자, 워리가 오리 뒤를 따라 강까지 데려다주고 오리가 강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집으로 왔습니다. 워리는 해가 설핏하면 오리를 집으로 데리고 와 닭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제 집으로 갑니다.

오리도 한 달쯤 크니 멀리서도 오는 소리가 타다닥 타다닥 타타다닥 들려옵니다. 털도 갈색으로 청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변합니다. 5개월쯤 지나니 아주 큰 오리가 됐습니다. 손님이 오면 닭 대신 오리를 잡아주니 아주 좋아들 합니다. 여름내 잡아먹고 팔아 용돈도 쓰고 해서 암컷 오리 아홉 마리에 수컷 오리 한 마리만 남겼습니다.

광의 양잿물을 먹은 귀한 손주

아시네 앞강에서 놀던 재수네 오리가 여울을 타고 우리 집 앞강에 와서 우리 오리와 함께 놀기 시작했습니다. 점두룩(하루 종일) 섞여 놀다 저녁때 우리 집 암컷 오리가 두 마리나 재수네 수컷 오리를 따라갔습니다. 한번 따라가기 시작한 오리는 매일 재수네 집에 갔다가 아침에 강으로 왔습니다. 할머니가 못된 습관 들었다며 오늘 저녁에는 가서 찾아다 가둬두라고 하셨습니다. 오빠들이 저녁 먹고 오리를 찾으러 갔습니다. 재수네 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오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죽은 한 마리는 우리 오리였습니다. 살아 있는 한 마리는 오빠들이 부르니 꽥꽥 객객 하면서 나옵니다. 재수네 아버지는 친척들이 모여 모르고 잡았다며 미안하다고 자기네 산 오리를 주면서 가져가라고 했지만 오빠들은 살아 있는 오리만 안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이웃 간에 큰 손해 나지 않았으면 다투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러다가는 남 좋은 일만 시키겠다고 오리를 다 치우기로 했습니다. 다음날부터는 강에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오리는 강에 가고 싶어 깩깩깩 하며 별소리를 다 하며 종일 시끄럽습니다. 재수네 오리도 가두었는지 다음날부터는 우리 집 앞강에 놀러 오지 않았습니다. 장날이 되자 오리 한 쌍을 남기고 다 팔았습니다. 오리는 약이라고 하니 혹시 약으로 쓸 일이 있을지 모른다고 오리알도 먹을 겸 남긴 것입니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옥고개재 마루에서 해만이라는 네 살 먹은 옆집 손주를 업고 허둥지둥 뛰어가시는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뒤에는 언나 엄마가 엉클어진 머리에 맨발로 따라갑니다. 그 집 할아버지도 따라갑니다. 그 집 의붓시어머니는 “요년, 우리 집 장손이 죽기만 해봐라. 너도 죽을 줄 알아.” 욕을 욕을 하며 따라갑니다.

젊은 새댁이 빨래하느라 깜빡하고 양잿물 깡통을 덮지 않고 광문도 닫지 않았습니다. 해만이 광에 들어가 하얀 것이 맛있게 생겼으니까 입에 집어넣었나봅니다. 으악 소리가 나서 엄마가 달려가니 벌써 입에서 피가 흐르고 손에도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해만이 할아버지가 우리 집으로 달려와 “찬호 아버지~ 해만이가 양잿물을 먹었소” 하고는 털썩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큰오빠보고 얼른 오리를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큰오빠가 안고 온 오리 두 마리를 나무 모탕에 올려놓고 도끼로 사정없이 모가지를 팍 찍으니 대줄기 같은 피가 축 뻗쳐서 받쳐놓은 양재기에 고입니다. 아버지는 오리피를 들고 가서 아이를 확 뺏어 코를 쥐고 오리피를 퍼먹였습니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해만을 둘러메고 25리 되는 길을 달려갔습니다. 평창병원에 가자 의사가 보고 양잿물 먹은 데는 오리피 이상 좋은 약이 없다고 괜찮다고 그냥 가라고 하였답니다. 언나가 양잿물 덩어리를 입에 집어넣고 뜨끔하니 놀라서 빨리 뱉어내고 삼키지를 않아 입안에 상처만 나서 괜찮다고 했답니다.

오리를 기다리는 워리

해만이 할아버지는 고맙다고 오리한테 미안하다고 오리 두 마리와 잘린 목까지 거두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습니다. 우리 집 마지막 오리 두 마리는 큰일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워리는 저녁때가 되면 노을 진 강가를 서성거립니다. 이제는 오리가 없다고 얘기해줘도 워리는 사람들보다 오리를 더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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