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다 삐루갱이 암송아지 덕

명주 한 필과 바꾼 송아지 한 마리, 어머니는 소를 늘려 논 살 꿈을 꾸었네
등록 2019-10-18 10:32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할머니는 일하시는 데 탁월한 솜씨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삼베는 하루에 한 필을 짜고 명주는 사흘에 한 필을 짜셨습니다. 밭을 매도 남자들과 맞먹을 정도로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파는 데는 재주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젊은 어머니가 장돌뱅이가 되다시피 집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건을 파는 담당이 되었습니다.

“송아지야,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얘기해라”

해방이 되던 해 봄, 어머니는 명주를 팔러 장에 갔습니다. 저녁때가 되어도 팔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삐루갱이(벼룩)가 다 파먹은 암송아지 한 마리를 가지고 와서 명주 한 필과 바꾸자고 합니다. 아무도 사지 않는 삐루갱이 먹은 송아지를 망설이지도 않고 명주와 바꾸었습니다.

늦은 장꾼들의 도움을 받아 송아지를 끌고 집으로 왔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보시고 쯧쯧… 다 죽어가는 송아지를 어쩌려고 사왔느냐고 걱정이 대단하십니다. 어머니는 걱정 마시라고 자기가 버젓이 잘 키워서 우리 집을 부자로 만들 수 있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십니다.

큰소리는 쳤지만 속으로는 난감합니다. 마구간에 들일 수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예 부엌에서 같이 키우기로 마음먹습니다. 밥하면서 버럭지에 물을 떠놓고 시뻘건 불덩어리를 집어넣습니다. 치지직 치지직직~ 무럭무럭 김이 나며 꺼먼 숯물이 우러납니다. 수건을 숯물에 적셔 삐루갱이 먹은 송아지를 골고루 닦아줍니다. 숯물로 닦으면서 보니 그냥 볼 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털이 거의 없고 살가죽을 깊이 파먹어 고름이 나는 곳도 많습니다. 고름이 심하게 나는 곳에는 아주까리기름을 발라줍니다. 아기라도 키우는 것처럼 송아지를 들여다보고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꿉꿉하고 아프냐.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얘기를 해라.” 사람도 못 먹는 콩죽을 끓여 오지동이에 담아놓고 송아지만 먹입니다. 그것도 손으로 떠서 먹입니다.

“아이구~ 얄궂어라. 부엌 구석에서 소를 키우다니.” 흉을 봅니다. 사람들이 보고 “기구 가관이다. 뭔 언나도 아니고 저것이 뭔 소 노릇을 하겠나.” 혀를 끌끌 찹니다.

송아지는 어머니의 정성을 알았는지 한 달쯤 지나니 많이 좋아졌습니다. 한 2년만 키우면 송아지를 낳고 또 그 새끼가 새끼를 낳을 것입니다. 소를 늘려 다수리 논을 사서 이사도 하고 부자가 될 꿈을 꿉니다.

어머니의 꿈이 한창 부풀어오를 때입니다. 아버지가 으슬으슬 춥고 떨린다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아버지지만 병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한 사흘은 춥고 떨리고 하루는 괜찮은 하루거리(하루씩 걸러서 앓는 학질로 ‘초짐’이라고도 함)에 걸렸습니다.

배냇소로 주고 농어소로 주고

가장이 농사철에 일을 못하고 앓다보니 농사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겨우 나물을 뜯어 나르고 어머니가 장에 내다 팔아 쌀 한 됫박 사다가 나물에 어쩌다 쌀 한 알 보이는 죽을 끓여 먹고 삽니다. 너무 못 먹어서 할머니와 아이들까지도 얼굴이 퉁퉁 부었습니다. 사람들이 송아지를 팔아서 양식을 사먹으라고 합니다. “이 미련한 사람아, 온 식구가 다 죽은 다음에 소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합니다.

우리 집에서 송아지는 그냥 소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알 리 없습니다. 우리 송아지는 가족이기 때문에 생사를 같이해야 합니다. 우리 가족이 굶어죽으면 같이 죽고 살아나면 같이 살아날 것입니다.

그저 죽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애쓰다보니 한 해가 갔습니다. 다시 봄이 되자 아버지도 그 지긋지긋한 초짐에서 놓여났습니다. 힘써 일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소 노릇을 못한다던 송아지는 버젓한 암소로 자라났습니다. 새끼를 낳기 시작합니다. 해마다 암송아지를 낳습니다. 송아지가 커서 또 새끼를 낳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하든지 소를 10마리 이상 늘려서 다수리 논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소가 점점 불어납니다. 사람들은 우리 암소가 삐루갱이가 다 파먹어 비실거리던 송아지라는 걸 다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 집 암소는 새끼를 잘 낳는 소로 소문이 났습니다. 새끼를 잘 낳으니 많은 사람이 배냇소(소를 데려가서 먹이고 돌보며 2년 안에 송아지를 낳으면 송아지는 빌려간 사람이 갖고 소는 도로 돌려주는 제도)로 달라고 합니다. 황소는 농어소(큰 소를 데려가 농사를 지으며 키워서 1년 뒤 돌려주는 제도)로 주었습니다.

마지리에 사는 봉균이네가 농어소를 달라고 여러 번 부탁해 잘 크는 황소를 주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그 집 이웃 아저씨가 소를 죽이지 않으려면 소를 도로 데려가라고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먹이를 안 주고 배고파 소리를 지르면 지게 작대기로 때리는 걸 보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사람이면 설마 그럴 리 있겠느냐고 가보았더니 뼈에 가죽만 씌워 있습니다. 소를 보자 눈물이 와락 솟는 걸 억지로 참고 “이 사람아, 소가 왜 그리 삐쩍 말랐나” 물으니 “세상에 그렇게 입이 짧은 소 새끼는 처음 봤소. 뭘 줘도 잘 처먹어야 말이지. 그동안 먹인 품값이나 주고 도로 가져가소” 하며 거의 반말지거리를 합니다. 아버지는 너무 화가 나서 봉균이라 안하고 봉갱이 이놈 평생 놀고먹고 잘살아라 하며 소를 몰고 왔습니다. 잘 먹이니 금세 살이 올랐지만 불쌍해서 다시 남의 집에 보내지 못했습니다.

삐루갱이 암소는 네 마리로 불고

내가 갓난아기일 때 우리 집에 온 삐루갱이가 다 먹었던 암소는 새끼를 낳고 또 낳았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이던 어느 가을걷이가 끝났을 때입니다. 배냇 소로 주었던 소도 돌아오고 농어소로 주었던 소도 돌아 왔습니다. 문푸래 꼭대기에 사는 나상호씨네는 암소를 배냇소로 데려가서 네 마리로 불려 소를 삼부자가 몰고 왔습니다. 그것도 소만 몰고 온 게 아니라 청차조 인절미를 해서 지게에 지고 왔습니다. 소를 잘 키워 와서 우리가 고마운데 자기네가 고맙다고 수수 백번 인사를 하고 갔습니다. 고동골 사는 낙현씨네도 살이 통통하게 오른 농어소를 몰고 왔습니다. 큰 소가 열한 마리가 되었습니다. 삐루갱이 먹었던 암소만 남기고 다 팔아 소원이던 다수리 논 일곱 마지기를 샀습니다.

어른들은 세월이 흘러도 어느 해 흉년에 살아난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우리 집이 밥술이나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삐루갱이 먹은 송아지 덕분이라고.

전순예 1945년생 저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