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지금 바로 볼 수 없어.” 여섯 살 아이는 필름카메라를 돌려 사진을 확인하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찍어준 자신의 모습을 언제나 바로바로 확인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필름카메라는 스마트폰이 아니니 당연히 바로 보여줄 수 없었다. 나중에 볼 수 있다는 말로는 아이를 설득하기 어려웠다. 아이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렸다. 아이와 내가 ‘사진’이라는 단어를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의 머릿속에 있는 사진의 개념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그리고 모바일로 사진을 둘러싼 기술과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사진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각자가 경험하는 사진의 형태도 무척 다양해졌다. 너무 많고 너무 다양하다는 건 직업적으로 사진을 다루는 이들에겐 언제나 곤혹감을 안겨준다. 너와 나의 사진이 이렇게 다른데, 우리는 그 모두를 사진이라고 불러도 될까.
매년 가을에 열리는, 올해 10회째인 ‘2019 서울사진축제’(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10월1일~11월10일)에서 마주하는 것 또한 그런 ‘곤혹감’이다. 한 전시 공간에는 1950년 전쟁 후 폐허로 전락한 명동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 액자가 걸렸다. 맞은편 전시 공간에는 어느 팬이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 강남구청역에 게재했던 광고사진이 담긴 엘이디(LED) 라이트 패널을 설치했다.
두 사진이 공존하는 장면은 어쩌면 올해의 서울사진축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일지 모르겠다. 1950년 명동과 2019년 강남구청역 사이, 폐허와 팬덤 사이, 흑백 다큐멘터리와 아이돌 광고 사이, 나무 액자와 LED 패널 사이. 이 극심한 차이는 보는 이를 곤혹스럽게 만들지만, 이 곤혹감이야말로 지금 사진이 처한 환경이 아닐까. 그리고 이 현실이야말로 이번 서울사진축제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은 아닐까.
‘오픈 유어 스토리지: 역사, 순환, 담론’이라는 제목을 달고 전시 중인 서울사진축제는 크게 두 개의 전시와 한 개의 프로그램으로 짜였다. 소개 자료에 따르면, 1950년대 한국 사진사의 아카이브를 기초로 구성된 ‘역사’(전시1), 동시대 사진 행위와 생산물을 리서치하는 ‘순환’(전시2) 그리고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사진 그룹의 생생한 토론 현장을 중계하는 ‘담론’(프로그램)으로 얼개를 이룬다. 공간을 기준으로 삼으면 입구 왼편 전시 공간 1, 2층과 오른편 전시 공간 1, 2층으로 나누어볼 수도 있다. 왼쪽 공간에서는 1950년대의 사진 환경과 사진가들을 소개하고, 오른쪽 공간에서는 2019년을 중심으로 최근의 사진 환경에서 파생된 사진 작품과 담론이 펼쳐진다.
오른쪽과 왼쪽, 1층과 2층을 오가며 전시작들을 보면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미 과거에 죽은 자와 현재를 사는 자들의 사진에 대한 생각과 그 결과물을 비교·대조하면서 묘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이와 같은 타임슬립 효과는 사진이 선사해줄 수 있는 가장 기묘한 경험 중 하나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 어느 시간으로, 어떤 장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것은 사진이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 이제부터는 이번 서울사진축제가 품고 있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따로 떼어내 하나씩 살펴본다.
전시1에 해당하는 ‘명동싸롱과 1950년대 카메라당’은 1950년대 명동을 시공간 축으로 삼아 한국 사진의 제도 안팎을 공시적·통시적으로 살펴본다. 당시의 사진 관련 주요 기관과 시설, 사진관과 사진재료상, 사진 전시 공간, 출판사와 잡지 등 한국 사진사의 귀중한 사료로 채운 전시실은 마치 한 권의 역사책을 연상시킨다. 폐허, 물질, 소비되는 이미지, 사진계, 전시 공간, 출판 등으로 명료하게 구분된 섹션은 잘 짜인 차례 같고, 전시장 벽에 채운 다양한 형태의 자료와 도표 그리고 부연 설명 등은 충실하게 쓰인 책의 본문 같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 왜 하필 ‘1950년대 명동’일까. 해당 전시의 기획자 이경민씨 설명에 따르면, “1950년대는 보수파와 혁신파(급진파)가 서로 논쟁과 대결을 벌이면서 사진에 대한 각자의 이념과 미학적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했던 첫 시대”였다. 그렇기에 “한국 사진사에서 근대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하나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만하다”는 것이다. 또한 명동에 관해서 “1950년대 중반에 이르면 사진문화가 일찍 꽃피울 수 있는 다양한 인적, 물적 인프라가 구축되었다”고 주장한다. 근거로는 어느 곳보다 빨리 복구되었다는 점, 전쟁이 끝나자 피란을 떠났던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다시 명동으로 몰려들었다는 점, 일제강점기부터 사진 관련 시설이 있었고, 특히 사진재료상은 해방 이후에도 운영이 계속되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전후 폐허의 이미지에서 시작되어 전시 공간과 출판물 등 사진 관련 인프라가 구축되는 과정은 한국 근대사의 압축 성장과도 겹친다.
주체와 객체로 나누던 경계의 붕괴전시2에 해당하는 ‘러브 유어셀프’는 1950년대 명동에서 시공간을 뛰어넘어 최근 디지털과 모바일 환경에서 생산되는 동시대 사진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러브 유어셀프’.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네가 너를 사랑하라는 말은 스마트폰과 인스타그램, 셀피(스마트폰 등으로 찍은 자신의 사진) 등의 키워드로 집약되는 요즘 사진 환경과도 호환된다. 요즘 디지털-모바일 환경에서 카메라와 이전 필름카메라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듀얼 카메라를 꼽을 수 있다. 전면과 후면에 렌즈가 달린 듀얼 카메라로 상대방을 보는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감각은 이전과 다른 방식의 바라보기를 제공한다.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외부를 향한 카메라 렌즈를 기준으로 사진의 주체와 객체가 분명하게 나뉘었다. 하지만 외부를 바라보는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듀얼 카메라와 페이스타임은 카메라 앞뒤에서 주체와 객체로 나누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여성 사진가를 중심으로 그동안 여성의 이미지가 얼마나 대상화되어 소비되었는지 고찰하거나 여성이 주체가 되는 시선을 고민하는 작업이 등장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요즘 자주 접하는 ‘나와 결혼하고 싶다’ ‘나와 사랑하고 싶다’ 등 모순형용처럼 들리는 표현도 현실에서든 이미지에서든 객체로 대상화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담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맥락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러브 유어셀프’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드래그퀸을 촬영한 ‘김문독’의 사진, 다양한 연령대의 육체가 주체적으로 욕망을 발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파트타임스위트’의 비디오 작업 등이 해당된다.
디지털-모바일 환경에서 생겨난 커다란 변화를 살펴보면,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 유통 등 모든 과정에서 개인이 1인 미디어로서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아이돌 지하철 광고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제 팬들은 더는 아이돌 문화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이미지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생산자이자 기획자가 되는 셈이다.
모두가 스스로 이미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환경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진가도 등장하게 된다. 이전에는 사진가가 되기 위해 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업하는 등 일정한 자격을 얻어야 했다. 이제는 이러한 절차 없이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고 대중의 호응을 얻어 사진가로 데뷔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참여작가 중 한 명인 ‘무궁화소녀’이다. 그는 사진을 전공하거나 스튜디오에 들어가 사진을 배운 적 없이 자기 자신과 주변 친구들을 찍었고, 그 결과물을 자신의 계정에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궁화소녀의 화려한 색감과 빈티지한 느낌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서 사진을 생업으로 삼게 되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해 유명 아이돌을 촬영할 정도로 주목받는 상업사진가로 성장했다. 무궁화소녀든 아이돌 지하철 광고든 디지털-인터넷 환경에서만 가능했던 사례가 아닐까.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1950년대 명동의 폐허 사진과 2019년 강남구청역의 아이돌 광고 사진. 멀리 떨어진 두 시공간을 동시에 다루고 있지만, 유독 ‘동시대’를 강조하는 이번 서울사진축제의 방점은 결국 ‘2019년 현재’에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서 존재 의미가 더 크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시대에 사진이 처한 환경을 미술관에서 본다는 건 묘한 아이러니다. 대부분 사진을 모니터와 스크린으로 보는 요즘, 미술관은 종이 프린트 형태로 사진을 보여주는 매우 드물고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동시대 사진을 아무리 잘 정리해 보여준다고 해도, 결국 동시대 사진이 처한 환경은 미술관 밖에 존재한다. 미술관은 그저 동시대 사진 일부를 비춰주는 거울일 뿐. 미술관 안에서도 밖에서도 언제나 당신 손에 있는 스마트폰이야말로 지금 가장 동시대적인 사진 환경이다. ‘오픈 유어 스토리지’(Open Your Storage).
박지수 편집장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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