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 ‘통닭골목’에서 닭을 튀기는 모습.
6년 전이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 있는 ‘통닭골목’을 취재한 적이 있다. 지글지글, 타닥타닥. 골목의 명함 같던 닭 튀기는 소리는 지금도 간혹 생각난다. 탐식가라면 음악 소리쯤으로 여겼겠지만, 당시 영화 의 그로테스크한(괴기한) 장면이 떠올라 흠칫 놀랐다. 좁은 거리를 배회하던 눅진한 바람엔 튀김 냄새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애인의 쇄골에서 풍기는 타인의 체취 같았다. 진미통닭, 용성통닭, 장안통닭, 매향통닭 등 ‘통닭’이란 글자를 간판에 건 집은 대략 10여 곳. 수많은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음식을 먹겠다고 모였다. 생경했지만 ‘치킨은 국민 간식’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최근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비비큐(BBQ)가 일부 메뉴의 소비자가격을 1천~2천원 올려 논란이다. 고작 몇천원 올린 것을 두고 왜 난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 야구나 축구는 닭다리 몇 개 뜯으면서 봐야 직성이 풀리고, 응원하는 팀이 스리아웃으로 패전의 기운이 역력해도 고소한 닭기름이 혀를 감싸면 그날이 생의 마지막이라도 웃을 수 있다. 배달 앱 업계 1위 ‘배달의민족’이 웃자고 시작한 이벤트 ‘치믈리에(치킨 맛 감별사) 자격시험’에 수백 명이 몰린 민족이 우리다. 누구 마음대로 ‘치느님’의 몸값을 올리느냐는 항의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논란이 일자 비비큐 쪽은 본사와 가맹점주의 의사협의기구인 동행위원회 회의에서 가맹점주들의 요청으로 이뤄진 결정이라고 항변했다. “9년간 한 번도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 오른 인건비와 식재료비 등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최근 뉴스를 보면 일부 가맹점주는 반대 의견을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비비큐의 당기순이익은 약 167억원, 영업이익률은 8.69%로 수익이 양호한 편이다. 적자라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소리다. 비비큐의 가맹점 수는 무려 1659개.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중 1위다. 그러면 오른 가격의 수익은 누가 가져갈까?
이 사태의 이면에 우리 먹거리의 거대한 비밀이 숨어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수십 개지만, 가장 중요한 원재료인 닭을 공급하는 회사는 하림·참프레·체리부로·올품·동우·마니커 등 몇 개 회사다. 생산량으로는 하림이 1위다. 이들은 병아리를 축산 농가에 팔고, 그 병아리가 먹을 배합사료도 팔고, 성장한 닭을 수매하며, 그 닭을 포장해서 유통한다. 홈쇼핑 채널까지 인수한 하림은 자사 방송을 통해 더 많은 닭고기를 판다.
김재민 편집장은 책 에서 이런 구조를 ‘수직계열화’라고 정의하고, 이미 수많은 양계장이 그들의 권력 아래 있다고 했다. 업체가 병아리를 공급하지 않으면, 배합사료를 안 팔면, 키운 닭을 사주지 않는다면 축산 농가는 망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들이 공급하는 닭은 성장 속도가 빠른 수입 종계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먹는 닭의 맛이 왜 거의 비슷한지 이해되는 지점이다. 치킨 프랜차이즈가 소스나 파, 양파 등 부재료로 승부하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양계 대기업은 수십 년간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들은 우리 식탁의 권력자다. 한승태 르포작가가 에서 닭 사육 현장의 참혹함을 고발했지만, 축산업자만 탓할 수 없다(두 번 다시 그런 곳에서 생을 마친 닭을 만나고 싶지 않다).
양계 대기업의 고속 성장엔 30~40년 전 정부의 무분별한 정책자금 지원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치킨 프랜차이즈의 번창도 한몫했다.
업계는 1970년대 문 연 림스치킨을 원조로 본다. 외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1970년대, ‘치킨’이라는 이름은 요샛말로 ‘힙’했다. 지금이야 빈티지 바람이 불어 ‘통닭’이 세련된 말 같지만, 당시는 얼큰하게 취해 들어와 아이들을 깨우는 주책맞은 중년 아비와 동의어였다. ‘영양센터’란 말도 “초콜릿또, 초콜릿또”를 외치며 미군을 따라다니던 1950년대 가난했던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후 문 연 업체들의 상호에 유독 영어나 ‘치킨’이 많은 이유다.
페리카나(1981년), 멕시칸치킨(1985년), 멕시카나(1989년), 교촌치킨(1991년), 비비큐(1995년) 등은 지금도 성업 중이다. 굽네치킨, 호식이 두마리 치킨, 네네치킨, 노랑통닭, 치킨마루, 깐부치킨, 처갓집 양념치킨 등 현재 영업하는 업체 수는 도무지 다 셀 수가 없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새 치킨 브랜드가 출산을 앞두고 있을지 모른다. 프랜차이즈 업장에서 튀긴 닭이 많이 팔릴수록 양계 대기업의 배는 두둑해진다.
3년 전 6월 충남 논산에 있는 지산농원을 간 적 있다. ‘계모’(鷄母) 이승숙 대표가 키우는 재래종 닭의 한 종류인 ‘연산오계’를 조리한 음식을 맛봤다. 쪽쪽 찢어지는 결은 돌아누운 애인의 등을 두드리는 이의 설렘 같고, 은근한 육수는 결혼에 골인한 연인의 마음 같았다. 하지만 최근 이 대표는 “죽을 맛”이라고 했다. “종을 지키겠다는 신념은 여전하지만, 채산성이 떨어져서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도축장이 적어 못 팔기도 한다. 양계 대기업 대부분은 도축장을 소유하고 있는데, 도축량이 적은 토종닭 농장이 이용하기 어렵다”면서 “그나마 있던 소규모 도축장도 사라져가는 형편”이라고 했다.
바야흐로 미식 시대다. 배를 채우는 게 능사가 아닌 세상인 것이다. 미식의 기본은 맛의 다양성이다. 그 출발점은 음식의 원재료인 식재료다. ‘치킨의 비밀’은 다음 연재에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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