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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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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도 몰라, 소스 레시피는

종속 관계를 교묘하게 유지하려는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

그 중심에 있는 ‘특제 소스’
등록 2018-12-29 05:11 수정 2020-05-02 19:29
튀긴 뒤 ‘비법’ 소스에 버무려진 치킨. 이 소스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점포의 종속 관계를 유지하는 비법도 된다. 클립아트코리아

튀긴 뒤 ‘비법’ 소스에 버무려진 치킨. 이 소스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점포의 종속 관계를 유지하는 비법도 된다. 클립아트코리아

“프랜차이즈 치킨집이요? 할까도 생각했지요.” 서울 서초구 한 치킨집 주인 박준서(50·가명)씨의 말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몇 주 전, 그의 가게엔 동네 주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7년 전 치킨집을 열었다는 박씨는 처음엔 한 프랜차이즈에서 상담도 받고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비용은 무려 600만원.

“성공한 지점만 보여주더라고요. 저도 혹했지요. 저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겠다 싶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 도전하는 식당 영업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소중한 출발점이었다. “마침 저보다 먼저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여러 얘기를 들었죠.” 박씨는 고민 끝에 프랜차이즈 가맹점 주인이 되는 걸 단념했다. 도대체 그는 왜 몇 달치 월급 정도의 큰 금액을 버리는 셈 쳤을까?

덴마크 유명 셰프가 한국 사찰을 드나든 이유는

“물론 배운 것도 있어요. 교육과정에서 조리 과정을 보니깐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더군요. 600만원이 아깝지는 않았어요.” 박씨는 자기 가게의 진짜 주인이 되고 싶었다. 친구의 얘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수익을 20~30%도 가져가기 힘들겠더라고요. 포스(POS·판매 시점 정보관리) 기계는 본사가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요. 매출이 오르자 이런 소스, 저런 소스를 받으라고 했다는 겁니다.” 친구는 잘 팔리는 메뉴의 재료를 공급받지 못할까 걱정돼 결국 승낙했다. 박씨는 “고생하더라도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박씨는 날마다 근처 재래시장에 가 닭을 산다. 8~9호 닭을 사 직접 고안한 튀김 기계에 넣고 튀긴다. “처음엔 돈 버는 게 목적”이었다는 그는 이젠 “내 아이가 먹어도 탈이 안 나는 치킨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자본의 논리보다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배달도 안 한다. 그날 이 집을 찾은 한 고객은 “직접 와 사가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맛이 좋으니까, 그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가게를 칭찬했다. 진정성이 최고의 마케팅 전략인 시대가 아닌가! 박씨의 마음이 손님에게 닿았다.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는 점주와 종속 관계를 교묘하게 유지한다. 지난 연재 제1240호 ‘왜 치킨집은 부재료로 승부하는가’)에서 밝혔듯이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치킨은 하림, 참프레 등 몇몇 양계 대기업이 공급하는, 거의 같은 닭이다. 원재료의 맛은 같다. 식재료, 조리법, 소스는 맛을 만드는 3대 요소. 그중 소스는 음식의 개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부분이다. 승부처는 소스다. ‘소스가 뭐라고! 그저 식재료에 붓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들이 한국 사찰을 몇 년 전부터 방앗간 참새처럼 찾는 이유도 소스에 있다. 덴마크의 고급 레스토랑 ‘노마’의 레네 레제피, 미국의 ‘프렌치 론드리’의 토머스 켈러 등 셀 수 없는 유명 셰프가 스님이 만든 간장에 박수를 보냈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양념. 그네들 표현으로 보면 소스다. 영국 잡지 이 해마다 뽑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 1, 2위를 다투는 스페인의 ‘엘 세예르 데 칸 로카’에선 샘표식품의 조미료 ‘연두’를 쓴다. 소스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다.

‘분자요리’(식재료를 분자 단위까지 연구 분석해 만든 요리) 등 어려운 조리 기술은 이제 고급 레스토랑에선 보편화한 지 오래다. 더는 기술로 승부할 수 없다. 고급 식재료 사용은 기본이다.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더 필요한 게 뭘까? 소스의 혁신이다. 그들은 동양의 작은 암자에서 소스의 영감을 얻어갔다. 치킨 프랜차이즈도 이 심오한 진실을 안다.

타 브랜드와 다른 미묘한 맛

교촌치킨의 인기 메뉴는 ‘마늘간장소스치킨’. 교촌오리지널·콤보·윙·스틱의 조리엔 마늘간장소스가 다 들어간다. 교촌허니콤보는 간장소스에 꿀을 섞었다. 간장과 꿀은 섞기가 쉽지 않은 재료다. 창업 상담을 받아보니 교촌치킨 쪽은 “교촌만의 노하우”라며 “마늘간장소스는 교촌에만 있고, 공장에서 만든다”고 한다. 점주는 레시피를 모른다. 완제품을 받는다. “시중에 이 소스를 파는 곳은 없다”고 했다. ‘레드’가 붙은 메뉴 4가지엔 홍고추로 만든 소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담원은 “다른 데(브랜드)와 다른 미묘한 매운맛을 만든다”고 말했다. 광고 영상도 매운맛 소스를 강조한다.

튀기지 않고 오븐에 굽는 점을 강조하는 굽네치킨도 19개 메뉴의 차이는 소스다. 꿀, 갈비 양념 등을 강조한다. ‘굽네갈비천왕’의 광고 모델인 배우 박보영은 영상에서 “노릇노릇 익으면 소스를 쫙, 양념이 뽀글뽀글”이라고 말한다.

비비큐가 미는 메뉴는 ‘황금올리브프라이드치킨’. 배우 하정우가 모델인 광고의 문구는 ‘출출함에 쫓길 땐 BBQ 황금올리브속안심이’다. 지난달 비비큐의 가격 인상 논란이 된 메뉴 중 하나다. 비비큐 창업 상담원은 염지(식재료를 소금에 절이는 과정)제를 자랑한다. “본사가 개발한, 비비큐에만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염지제를 공급받지 못하면 점주는 제맛을 내기 어렵다. 고기의 질이나 닭의 생산지를 강조하는 프랜차이즈는 없다.

10년 넘게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활동한 전문가 A는 “가맹점주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시중에서는 안 파는, 그 프랜차이즈에서만 공급하는 특제 소스를 활용한다”고 말한다. 공생 관계인 본사와 가맹점이 이상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하면 좋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본사는 포스로 점주를 감시하고, 나쁜 마음을 먹은 점주는 포스를 조작한다.

우리보다 앞서 프랜차이즈를 도입한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계약서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이다. 이해가 충돌하는 관계에서 계약서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 단계에서 정보 대부분이 공유된다. A는 “한국은 정보 비대칭에서 오는 불균형이 가장 큰 문제”라며 “본사가 정보를 독점한다”고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누리집에 올라온 정보도 큰 도움은 안 된다. 최신 정보가 아닌 6개월이나 1년 전 자료가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 자료만 믿고 창업했다가 이미 시장에선 퇴출당한 상태라면 낭패다. 한때 열풍이 분 대만카스텔라 프랜차이즈가 대표적 사례다. A는 “미국이나 일본은 정부가 1년에 한 번 프랜차이즈 관련 통계 조사를 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이의 눈물 고인 치킨 시장

치킨은 본래 미국 흑인 노예의 ‘소울 푸드’였다. 백인 농장주가 버린 닭 날개, 발, 목 등을 바삭하게 튀겨 뼈째 먹으면서 생긴 음식이다. 치킨의 역사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이 고여 있다. 지금 한국 치킨 창업 시장과 크게 다를까 싶다.

박미향 ESC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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