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은 입안을 파고드는 얼얼한 맛이 특징이다. 한겨레 자료
지난주 한 마라탕 가게 주인이 전화를 했다. 6월께 식품의약품안전처 직원이 다녀갔는데, 조리실 환풍기가 비위생적이라며 행정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금액은 30만원. 바로 시정한 그는 그다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식약처의 ‘비위생적인 마라탕 전문점’ 명단에 자신의 식당이 오르자 밤잠을 설치게 됐다. 중국 외식업체와 협력해 판매용 마라탕 소스도 개발 중이라서 고심이 크다고 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계속 깨끗한 주방 사진을 올리는데,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매운맛7월22일 식약처는 마라탕, 마라샹궈 등을 파는 식당과 식재료 공급업체 63곳의 위생 상태를 점검해 37곳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당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마라탕’이 떴을 정도로 반향은 컸다.
최근 우리 외식업계를 강타한 ‘종목’은 마라탕이다. 들불처럼 일어나더니 골목마다 우후죽순 생겼다. 라면 전문점보다 많아 보일 정도다. 중국 쓰촨성 음식인 마라탕은 입안을 파고드는 얼얼한 맛이 특징이다. 조리할 때 들어가는 향신료 화자오나 마자오 때문이다. 그저 ‘매운맛’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한국 고추와 견줘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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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성의 매운맛과도 차이가 있다. 마오쩌둥이 사랑한 후난성의 매운맛은 은근하면서 여운이 길다. 반면 쓰촨성의 매운맛은 단박에 혀를 마비시킨다. 마취 주사를 맞았을 때 처음엔 감각이 없다가 약효가 떨어지면 서서히 고통이 증가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라탕에 열광하는 이는 주로 20~30대 젊은층이다.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쓰촨성의 매운맛은 수도 베이징 대학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고 한다.
매운맛은 단맛, 신맛, 짠맛, 감칠맛과는 결이 다른 ‘통각’이다. 통증이다. 먹는 동안 체온이 오르고 땀이 난다. 땀이 휘발하면서 상쾌함이 몰려온다. 순간 우리 뇌는 ‘맛있다’고 기억한다.
업계 사람들은 식약처의 점검을 이미 예상했다. “기회 봐서 칠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만큼 많이 생겨서다. 식약처 점검엔 아쉬움이 남는다. 위생도 중요하지만, 식재료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봤어야 했다.
올해 초였다. 한 중식 전문가가 모임에서 마라탕이나 마라샹궈의 재료가 되는 화자오, 마자오, 다양한 마라탕 소스 등을 선보였다. 단단히 밀봉된 것들을 뜯어 맛을 봤다. 특이했다. 소스의 이름은 같았지만, 질의 차이가 컸다. 전문가는 말했다. “도저히 우리가 먹어서는 안 되는 싸구려 마라탕 소스도 있다. 음식이 아니라 독이다. 중국은 넓은 나라다. 만약 소스를 수입한다면 면밀하게 따져 골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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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식약처 점검에선 수입 신고를 하지 않은 업체도 적발됐다. 전문가가 언급한 ‘쓰레기’를 싼값에 수입했을 확률이 높다. 외식업계에서 들리는 얘기는 이게 끝이 아니다. 어떤 마라탕 전문점은 아예 화자오를 넣지 않는다고 한다. 캡사이신(매운맛 주성분) 덩어리를 넣고 마라탕이라고 판다. 많은 양의 캡사이신을 넣어 매운맛을 극대화한다.
인플루언서 고용하실래요?소비자를 기만한 일이다. 매운맛 종류를 구별 못하는 무지한 이들이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맵기만 하면 속는다고 업주는 생각한다. 그러고는 인테리어를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으로 꾸미고, 근사한 스토리텔링(이야기)을 만들어 영업한다. 인스타그램 등에서 ‘#마라탕맛집’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홍보에 열중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수백 개가 달리고 공유되면 당대 최고 맛집으로 회자된다. 지금 우리 시대 권력인 ‘대중의 인기’를 획득한 것으로 비친다. 그러면 뒤늦게 언론이 기사를 쓴다. 하지만 여기에도 엄청난 사기가 도사리고 있다. ‘좋아요’가 조작인 경우가 있다.
몇 달 전 빵집을 연 한 지인은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SNS 마케팅 업체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가 한 달에 ‘좋아요’ 1천 개 이상 달리게 해주겠으니 얼마를 내라는 것이었다. 인플루언서(SNS 등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가 업장을 찾으면 공짜 빵을 제공하는 것도 포함 조건이었다.
인플루언서의 등급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었다. 수백만원이 드는 인플루언서도 있었다. 지인은 거절했지만, 만약 장사가 잘 안되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른다고 했다. 자영업자는 실제 매출이 오른 사례를 여러 경로로 들으면 마음이 흔들린다. 이런 데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저가의 식재료 구입으로 이어진다. 진짜는 사라지고 가짜만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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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먹거리 동네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데 나서지 않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보복 같은 중대한 사안이 벌어지는데, 그까짓 먹는 일이 무에 큰일이냐 싶은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행복지수가 높다고 꼽히는 나라일수록 먹거리 기준이 엄격하다. 음식은 우리 생명과 직결된다. 한 국가의 음식 조감도는 정치권력만큼이나 중요하다. 한 접시엔 ‘세상’이 담겨 있다. 생산자, 유통업자, 관리, 소비자, 배달 애플리케이션 만든 기술자, 자영업자 등 따지고 보면 전 국민이 촘촘히 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접시에 세상이 담긴다싸구려 마라탕 소스를 아무 가책 없이 파는 파렴치한이나 캡사이신을 잔뜩 넣는 업자는 범죄자다. 정부는 더 매서운 눈으로 감시해야 한다. 속는 이가 있으니 속이는 놈이 활개치는 것이다. 오늘 당장 식당에서 김치 한 조각을 먹을 때도 진짜인지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연재를 마치며저는 음식문화 기자입니다. 오랫동안 음식 관련 보도를 했지요. 맛집을 소개하고, 우리 전통 음식의 기원 등을 살폈답니다. 외국 식문화도 섭렵하면서 전세계 고수들을 만났지요. 몸무게가 껑충껑충 늘어 ‘비만 고양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즐거웠어요. 음식이 담긴 접시 한 장은 제 호기심에 불을 댕기기에 충분했거든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허전하더군요. 제 직업은 ‘푸드 저널리스트’. 우리 시대 음식문화의 감시자로서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들었지요. 오히려 뒷걸음치는 데 일조하는 건 아닌지 자책도 했답니다. 소개했던 식당의 변절이나 먹거리를 둘러싸고 각종 추악한 뒷모습을 볼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식탁의 배신’을 시작했지요. ‘푸드 탐사’(?)를 나름의 방법으로 했다고 하면 너무 오만이겠죠. 이제 연재를 마치면서 아쉬움이 큽니다. 하지만 스스로 깨닫고 배운 게 많습니다. 지금은 떠나지만 ‘아이 윌 비 백’(I will be back),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제 보잘것없는 글을 넓은 아량으로 읽어주신 독자에게 감사 인사 전합니다. 기회 되면 비빔냉면 안주 삼아 술 한잔 해요.박미향 ESC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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