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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가격에 맞는 품격은?

일반 외식업체 수익률 뛰어넘는 평양냉면, 비싼 가격에 빠진 그것은…
등록 2018-11-11 23:53 수정 2020-05-02 19:29
한 평양냉면 집의 제면기에서 면이 나오고 있다.  류우종 기자

한 평양냉면 집의 제면기에서 면이 나오고 있다. 류우종 기자

“비싸면 안 사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재료비와 인건비가 얼마나 올랐는데요!” 배짱이다. 지난 10월 서울 강북의 한 평양냉면 노포(오래된 식당) D의 매니저가 한 말이다. 1만원이 넘는 평양냉면의 값이 비싼 거 아니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었다. 그에게 또 물었다. “육수 낸 고기는 수육 등으로 파는 거 아닌가요?” 다소 뜸을 들인 그는 “우리가 수육으로 쓰는 고기는 달라요”라며 면박을 준다.

당일 앞서 간 또 다른 평양냉면 노포 E. 작은 카메라로 차림표를 찍으려 하자 메마른 소리가 들렸다. “어, 뭘 찍으시려는 거예요?” 냉랭했다. 식당 내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주시하던 매니저가 한 소리였다. 갑질 상사가 지르는 신경질적이고 면도날 같은 목소리였다. “막 찍으면 소송감이에요!” 엄포다. 그의 눈엔 쌍심지가 켜졌다.

비수기에도 ‘흑자’ 내는 평양냉면

의 저자 한승태 작가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은 엄청난 사건·사고가 아니라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불행이라고 했다. 무릎 꿇어 주문을 받는 종업원의 과잉 친절도 못 견디게 두드러기가 나지만, 지나친 당당함으로 무장한 불친절도 감당하기 버겁다.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겪으면 제아무리 지구가 불구덩이가 된다 해도 냉면은 그저 밉상이요, 불쾌한 경험의 대명사가 된다. 우리가 식당을 찾는 이유엔 단지 허기를 채우거나 식도락만 있는 건 아니다. 유쾌한 서비스는 마음의 감각을 깨워 엔도르핀을 돌게 한다.

D의 매니저가 항변한 원가로 돌아가보자. 육수와 메밀면 등 재료비에 대해선 지난 칼럼에서 살펴봤다(제1232호 ‘평양냉면의 적정 가격은 얼마일까’ 참조). 인건비를 살펴볼 차례다. 7년 이상 경력의 주방 기술자는 인건비가 대략 월 300만~500만원이라고 한다. 홀 직원은 월 200만~270만원 정도다.

입수한 한 유명 평양냉면집 A의 급여 대장을 보면, 지난 8월 정규직 11명의 급여는 각각 230만~350만원으로, 한 달 이 집의 인건비 총액은 2800만원이었다. 아르바이트생 임금은 빠진 금액이다.

이제 수익을 계산해보자. 최상급 한우 암소를 쓰는 냉면집 A의 8월 하루 원가(대략 한우 563만6400원+메밀 120만원+정규직 기준 인건비 94만원)는 777만원 정도다. 하루 1200그릇 이상 팔렸다고 하니, 8월 하루 매출은 적게 잡아도 1080만원(9천원 기준)이다. 만약 냉면 가격이 1만1천원이면 1320만원, 1만3천원이면 1560만원으로 계산된다. 육수용 고기도 수육(2만~3만원)으로 판다. 아르바이트생 임금을 고려하더라도 수익이 요즘 5% 내외라는 일반 외식업체에 견줘 높다. 더구나 이 집은 월세가 200만원이지만, 강북의 대다수 노포는 주인이 소유한 경우가 많다. 임대료가 안 나간다는 얘기다. 냉면집 A의 주인은 겨울엔 손님이 50~70% 준다고 하면서도 순수익이 대략 20%라고 했다. 수입육이나 돼지고기, 사골, 닭고기 등을 쓰는 곳의 수익률은 더 높다. 올해는 남북 정상회담 이슈로 평양냉면이 불티나게 팔렸다. 미디어에 북한 냉면집 ‘옥류관’이 뜰 때마다 덕 볼 가능성도 크다. 도통 적자가 나긴 어려워 보인다. (한우를 쓴다는 한 신생 평양냉면집 주인은 냉면 한 그릇 가격이 9천원이지만, 약 10~15% 수익이 난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노포의 브랜드 파워는 엄청나다. 포털 네이버의 검색량과 연관 검색어 조회 도구인 ‘엠(M)-자비스’를 활용해 강북의 유명 노포와 신생 평양냉면집의 검색량을 따져보니, 노포의 검색이 2배 이상 많았다. 검색은 냉면집 방문으로 이어진다.

한 외식업체 전문가는 “요즘 반죽 기계와 면을 탄력 있게 만드는 급랭 기계 등의 수준이 높고 이 기계들을 갖춘 데가 많다. 그런 곳은 수익이 더 난다. 오른 원가를 고려해도 8천~9천원이 적당하다”면서 현재 유명 냉면집의 가격에는 다소 거품이 있다고 했다.

98.9%는 “평양냉면 비싸다”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tillionpanel.com)에 의뢰해 10월17일부터 사흘간 수도권 20~60대 남녀 2999명에게 물어봤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가?’란 질문에 62.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훌쩍 넘는 75.1%가 “평균 한 달에 한 번꼴로 먹는다”고 했다. ‘현재 유명 평양냉면집 가격이 적당하냐’는 질문에 83.1%가 “아니다”라고 답했는데, 응답자의 98.9%가 비싸다고 했다. 응답자의 58.4%가 “인기에 영합해 가격을 올린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칼럼에서 나온 직장인 이준호(59·가명)씨와 같은 생각인 이가 많다.

평양냉면집도 한때 어려웠다. 1990년대엔 함흥냉면집이 강세였다. 한여름 식중독 예방이란 명목으로 나온 위생 점검에 고초를 겪은 곳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옛날 신문을 살펴보면, 당시도 유명 노포들은 ‘여름철 갈 만한 식당’으로 소개된 적이 많았다. 수많은 단골이 있어 지금의 노포가 건재한 것이다. 4년 전 ‘1세대 명가 아성에 도전장을 내미는 냉면 맛집들’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도 노포들의 지나친 자신감에서 나온 거친 손님 응대가 거슬렸다. 권력은 꼭 정치집단에만 있는 건 아니다.

물론 평양냉면 노포가 다 D와 E 같진 않을 것이다. 지난 10월 또 다른 평양냉면 노포 F. ‘혼냉’으로 배를 채우는데, 종업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E보다 2천원 비싼 1만3천원. 이 집의 친절은 계산대에 붙은 ‘축산물 (소) 등급판정확인서’(10월18일 발행. 한우 암소 구매 인증서)와 5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한 고령의 전무가 가게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는 데서 나왔다. 그는 “종업원 가족이 냉면을 즐기는 기회도 만들고 생일도 챙기니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라고 했다. E보다 여기 냉면 가격이 비싸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가격엔 서비스도 포함된다. 하지만 F의 친절은 다른 노포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날 F에서 운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덕질’에도 품격을 따지는 시대다. 평양냉면 노포에서 품격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그저 돈통이 무거우면 배시시 웃고 정작 그 돈을 내는 이에게 인상 쓰는 곳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도 되는 건 아닐까? 순메밀이라고 하나, 한 그릇 가격이 1만7천원인 식당을 곱게 볼 수 있을까?

노포의 품격

30여 년간 3천 개 넘는 식당을 컨설팅한 일본의 외식 전문가 우이 요시유키는 어떤 음식점이든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손님에 대한 정성, 손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꼽았다. 청나라 기행문을 쓴 18세기 후반 학자 유득공도 저서에 ‘평양의 냉면’을 거론했다고 하니, 우리 유전자에 박힌 평양냉면의 역사는 꽤 길다. 품격마저 갖춘다면 평양냉면 노포를 가는 일만큼 ‘힐링’이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박미향 ESC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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