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년 전, 세계의 유명 신경과학자들이 영국 케임브리지에 모여 깜짝 놀랄 만한 선언을 했다. 2012년 7월2일 발표된 이 문건의 이름은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 이제까지의 동물 의식 연구를 정리하면서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신경해부학, 신경화학, 신경생리학적 기질에 따라 작동하는 의식이 ‘비인간동물’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로 수렴되고 있다.”
언론은 ‘동물에게 의식이 있다’고 대서특필했지만, 정작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선언문의 핵심은 문어에 있었다. 선언문 마지막 문장에 들어간 한 단어, 문어. “모든 포유류와 조류 그리고 ‘문어’를 포함한 다른 생물 등 비인간동물은 신경생리학적 기질을 갖는다.”
사실 두뇌 신피질과 신경계 등의 하드웨어가 있으면, 의식이라는 모종의 소프트웨어가 진화했으리라는 예상을 과학자들은 진즉에 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의식이 있다면, 동물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인간과 동물 공히 신경계 그리고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을 지녔는데, 인간은 의식이 있고 동물은 의식이 없을 이유가 있을까?
문어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선언문 마지막 문장이 왜 중요하냐면, 그때까지 학계에서는 인간과 영장류 그리고 ‘고등 척추동물’이 아닌 다른 동물의 정신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식’이란 개념을 정의하기 힘든 것도,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의견이 분분한 이유였다. 어쨌든 의식이란 과거와 미래를 인식하는 시간관념, 좀더 고차원적으로는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자의식을 포함하지만, 고통이나 기쁨, 슬픔 등 감정을 갖고 이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 정도만으로도 의식이 있다고 본다.
그때까지 논쟁은 주로 물고기가 통증을 느끼느냐를 두고 벌어졌다. 인간은 자극을 받으면 이 신호를 뉴런에 실어 두뇌에 전달하고 신피질의 신경세포가 고통을 느끼게 한다. 이런 사실을 들며 미국 와이오밍대의 제임스 로즈는 물고기에게는 신피질이 없어 의식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영국 리버풀대학의 린 스네든은 ‘신피질 중심주의’를 배격했다. 이를테면, 까치 같은 새는 신피질이 없지만 도구를 제작하고 먹이를 숨겨두는 등 고도의 정신 활동을 한다. 신피질이 없어도 의식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새나 물고기는 척추동물이니 그렇다 치지만, 인간과 멀어도 한참 먼 문어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문어는 진화의 생명수에서 일찌감치 척추동물과 갈라졌으며, 척추동물과 너무 다른 하드웨어를 지녔다. 문어의 무척추동물 친구인 조개는 심지어 뇌도 없다.
더욱이 우리가 보통 ‘동물’이라고 하는 동물과 문어는 너무 다르다. 동물은 대개 좌우대칭형이지만, 문어는 방사형이다. 우리처럼 머리-몸통-발로 이어져 있지 않고, 머리-발 하고 끝난다(그래서 문어·오징어·낙지 등을 두족류라고 한다). 문어는 다리가 8개고 1천 개 넘는 빨판이 달렸다. 빨판으로 물건을 빨고 맛보고, 사람의 엄지와 검지처럼 구부려 물건을 집어 입으로 실어 나른다. 인간의 뇌는 네 가지 엽으로 조직됐는데, 문어 뇌의 엽은 50~70가지에 이른다. 수관이라는 기관에서 물을 내뿜어 추력으로 움직인다. 기분에 따라 몸 빛깔을 바꾼다. 게다가 문어 신경의 절반 이상은 뇌가 아니라 다리에 있다. 같은 영화가 외계인을 문어처럼 그리는 이유가 있다(실제 문어의 조상이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일군의 과학자도 있다).
이렇게 이상한 동물의 정신 능력은 최근 동물행동학계에서 이슈다. 연구 결과가 잇달아 나왔고, 문어는 적어도 개만큼 영리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문어는 사람을 구별할 줄 안다. 친한 사람에게는 살갑게 굴고 낯선 사람은 경계한다. 동물원의 오랑우탄이 낯선 사람을 보면 침을 뱉는 것처럼, 문어는 수관에서 물을 발사한다. 친한 사람 앞에서는 몸 빛깔을 하얀색으로 바꾸며 늘어진다.
둘째, 문어는 놀 줄 안다. 수관으로 물을 뿜어 약병을 공처럼 갖고 노는 행동이 관찰됐다. 활동적인 문어, 차분한 문어, 대담한 문어 등 문어에게 성격이 있다는 논문도 나왔다.
셋째, 도구를 사용한다. 코코넛이나 조개 껍데기를 가지고 다니며 이동식 텐트처럼 쓴다. 문어는 몸을 구겨넣고 두 개의 껍데기를 닫으면 은신처가 된다. 포식자 앞에서는 숨고, 먹이를 앞에 두고 매복한다.
세상을 바꾼 문어 ‘파울’
가장 유명한 문어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축구의 예언자 문어 ‘파울’일 것이다. 파울은 당시 독일 오버하우젠의 시라이프 수족관에 살던 3살이 채 안 된 문어였다. 수족관은 2008년 유로컵 축구대회 때 국기가 꽂힌 두 개의 상자를 주고(상자 안에는 홍합 같은 먹이가 있었다), 파울이 어떤 상자를 여는지 보면서 독일이 이기는지 상대국이 이기는지를 알아맞히게 했다. 장난으로 시작된 이벤트에서 파울은 66% 적중률을 보였고, 독일 사람들은 2010년 월드컵을 기다리며 파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2010년 월드컵에서 파울은 독일 국기를 선택했고, 독일 축구대표팀도 이겼다. 독일의 축구 실력이 좋았으니 적중률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4강전에서는 독일 대신 스페인을 선택했다. 3·4위전에서 다시 독일을 선택한 파울은 100% 적중률로 월드컵 도박사 리그의 진짜 우승자가 됐다. 같은 나이의 사람 아기도 잘 열지 못하는 복잡한 뚜껑을 열 수 있는 문어의 능력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너무들 즐거웠으니까.
문어 파울은 결과적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문어라는 동물에 모였고, 무척추동물의 인지 연구를 지속시키는 토양이 되었다. 남아공 월드컵 석 달 뒤인 10월, 파울은 세상을 떴다(문어의 평균수명은 3~4년으로 영리한 동물 중 가장 단명한다). 2년 뒤 과학자들은 케임브리지에 모였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무척추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스위스는 지난 1월 동물보호법을 개정해 바닷가재 같은 갑각류를 산 채로 끓여 먹는 행위를 금지했다. 문어가 가재를 구한 것이다.
법률에서 굳이 문어가 빠진 이유는, 서양 문화권에선 문어를 끓여 먹거나 산 채로 먹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한국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산낙지라고 하는, 흰 접시에서 꼬물꼬물하는 생명체가 문어목 문어과 동물이다. 끝으로 정호승의 시(‘산낙지를 위하여’)를 붙인다.
“신촌 뒷골목에서 술을 먹더라도/ 이제는 참기름에 무친 산낙지는 먹지 말자/ 낡은 플라스틱 접시 위에서/ 산낙지의 잘려진 발들이 꿈틀대는 동안/ …/ 산낙지의 죽음에도 품위가 필요하다/ 산낙지는 죽어가면서도 바다를 그리워한다/ 온몸이 토막토막난 채로/ 산낙지가 있는 힘을 다해 꿈틀대는 것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바다의 어머니를 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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