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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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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사생활

‘소들의 대필작가’가 쓴 <소의 비밀스러운 삶>
등록 2018-06-26 16:46 수정 2020-05-03 04:28

한밤중 갑자기 큰 울음소리가 들린다. 배가 고프다는 뜻일까? 아픈 것일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서 쓰다듬어보니 ‘아라민타’라는 것을 알겠다. 젖이 퉁퉁 불어 있다. 젖을 짜주면 괜찮겠지 했는데 계속 고통스러워한다. 뭔가 사람에게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다. 혹시 새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아라민타를 앞세워 울타리 밖으로 나가 둘러보다 새끼 ‘더 돈’을 찾았다. 심하게 부풀어오른 배 때문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고무 튜브를 이용한 응급처치를 받은 뒤 한숨 돌린 ‘더 돈’은 엄마와 함께 헛간 밀짚 위에 편히 누워 힘들었던 하루를 마감한다.

‘실화냐’ 싶은 이야기다. 혹시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하더라도 ‘아라민타’나 ‘더 돈’은 개나 고양이지 싶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들은 ‘소’. 더 놀라운 것은 사람이 소의 마음을 이렇게 잘 파악할 수 있냐는 것이다. 자신을 ‘소들의 대필작가’라 하는 지은이 로저먼드 영은 동물학자의 냉정한 시선이 아니라 친구 같은 따뜻한 관심과 배려로 이 책을 썼다.

지은이는 영국 런던 근교에서 부모님이 시작한 ‘솔개 둥지 농장’을 물려받아 운영한다. “동물의 개성을 존중하며 키우겠다는 확고한 뜻으로 농장을 시작한” 부모님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어릴 적부터 소들과 ‘인격적 만남’을 해보았기에 (양철북 펴냄)이라는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 책에 기술된 소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영리하며 개성적이다. 물론 이런 점을 파악하려면, 소는 일일이 구분하고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지은이가 보기에 어떤 소들은 모성이 지극하고 또 어떤 소는 자식에게 냉담하다. 개처럼 사람을 너무 잘 따르는 소도 있고, 사람을 믿지 않고 냉정하게 대하지만 ‘소’로서는 지혜롭고 따뜻한 경우도 있다. 어릴 적엔 사람에게 애교를 떨다가 ‘사람을 믿지 말라’는 어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청소년기에 접어들어선 쌀쌀해지기도 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우정을 중요시해 어미의 품을 일찍 떠나기도 하고, 송아지들의 우정이 워낙 굳건해 그 어미들끼리 친구가 되기도 한다. 어떤 소는 분만한 딸을 돌봐주며 할머니로서 의무를 다하고 싶어 하지만 딸이 거부하고 육아를 독점하는 것에 서운해한다(이 모녀는 결국 절교한다). 어떤 소는 마른풀 대신 생풀만 먹는 진정한 채식주의를 고수하기도 하고, 어떤 소는 건초 더미를 아주 좋아한다.

소들을 자유로운 환경에 놔두면 대부분 제 몸을 알아서 챙긴다. 아주 날씨가 좋을 때도 소들이 축사에 들어가길 원하면 곧 비가 온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들은 다치면 버드나무 잎을 많이 먹는데, 버드나무엔 아스피린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분만하고 기력이 소진됐을 때는 엉겅퀴, 소리쟁이 같은 가시 많은 풀을 많이 먹는다.

사랑스러운 동화가 진한 교훈을 남기듯, 이 책 또한 매우 교훈적이다. 고기와 우유를 얻겠다는 목적으로, 이 똑똑하고 취향이 분명한 짐승을 감옥과도 같은 집단사육 시설에 밀어넣어 한평생을 보내게 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인간적인 관점에서라면, 행복하게 자란 소의 고기와 우유가 훨씬 맛있고 건강하다는 것 또한 잊을 수 없겠다.

이주현 문화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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