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그해는 ‘빼앗긴 봄’으로 기억됩니다. 전두환 신군부의 ‘세계사상 가장 오래 걸린 쿠데타’가 이어졌고, 5월 광주를 총격했습니다. 그해는 인지언어학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1980년 조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은 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책 후기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은유들은 그저 보고 지나칠 어떤 것이 아니다. 사실상 우리는 오직 다른 은유를 사용함으로써만 그 은유들을 넘어서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은유를 통해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은 마치 감각-시각, 촉각, 청각 등-과 같아서 은유는 세계의 많은 부분을 지각하고 경험하는 독특한 방식을 제공한다. 은유는 우리 활동에서 촉각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며 그만큼 값진 것이다.”(노양진·나익주 옮김)
‘체험주의적 대안’이랄 수 있는데요,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개념적 은유’입니다. 흔히 말하는 문학적 은유와는 구별해야 합니다. 은유의 소재가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개념 체계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고와 인지 과정의 대부분이 은유적으로 구성되며, 따라서 은유는 소수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능력”이라는 관점입니다. 객관주의-주관주의의 ‘공허한 대립’ 자체를 뛰어넘는 주장입니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 레이코프와 그의 제자 엘리자베스 웨흘링의 대담을 담은 책 (나익주 옮김, 생각정원 펴냄)는 개념적 은유를 바탕으로 진보-보수의 서로 다른 프레임을 편안히 설명합니다. 레이코프의 이전 유명 저작들( 등)의 연장선에 이 책이 놓여 있습니다. 질문-대답으로 이어지는 맥락 속에서 자연스레 ‘프레임(생각의 틀)이 사실보다 앞선다’는 주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몇 대목 보겠습니다. “우리의 언어와 사유에서 은유를 피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논쟁을 그냥 논쟁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양(量)을 그냥 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요.”(은유는 생각의 틀이다) “([국가는 가정] 은유에서) 가장 지지하는 이상화된 모형이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이라면 우리는 정치적으로 더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자애로운 부모 모형을 지지한다면 우리는 더 진보적일 가능성이 높고요.”(가정 양육 모형이 정치적 도덕관을 결정한다)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지 않아요. 사실은 우리 마음속에서 더 큰 해석 판형과 통합할 때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러한 판형을 ‘프레임’이라고 부릅니다.”(‘사실’보다 강한 ‘프레임’의 힘)
진보주의와 언론에 던지는 화두도 있습니다. “정파가 쟁점에 대해 사유할 때 의존하는 도덕적 프레임이 사실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 진보주의자들은 쟁점을 자신의 도덕적 프레임에 넣는 일에 더 많은 초점을 둬야 하고, 사실만을 나열하는 일은 정말로 그만해야 합니다.”(진보주의의 과제) “‘객관적인’ 저널리즘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가정으로 인해 특히 사회적·정치적 쟁점에 대한 다원성과 투명성이 방해를 받습니다. 우리는 이 가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언론의 자세)
레이코프의 ‘은유, 정치적 프레임’ 이론에 더 다가서고 싶은가요? 옮긴이가 직접 쓴 (2017)를 추천합니다. 은유 없는 생각은 없습니다.
전진식 교열팀장 seek16@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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