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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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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제주의 맛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소박하고 심심한 요리들… 소멸 위기에 놓인 귀한 제주 향토음식
등록 2016-08-05 20:58 수정 2020-05-03 04:28
‘왓!?’
제주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왓은 ‘밭’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왓을 따라 사람들이 살았다. 해안길을 따라, 중산간 길을 따라 어디든 왓이 있다. 제주 서쪽에 비옥한 왓이, 동쪽에 척박한 ‘빌레왓’(너럭바위가 있는 돌밭)이 있었다. 왓을 지키기 위해 검은 돌로 쌓은 ‘밭담’은 제주의 마을 풍경을 만들었다. 제주 전역의 밭담을 이어붙이면 용이 구불구불 솟구쳐오르는 모습이 보인다고 해 ‘흑룡만리’라는 말도 있다.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을 먹이고, 살리는 구실도 왓이 했다. 해녀들이 물질로 먹거리를 가져오던 바다는 아예 ‘바당밭’(바다밭)이라고 불렸다. 왓을 따라 제주 여행을 떠나보자. 아직 그 길이 낯설다면, 여기 이 건네는 제주 비밀노트가 있다. 제주의 길과 오름, 자연, 문화, 역사, 맛과 재미를 담았다.
크기가 작은 게를 넣어 만든 ‘깅이죽’은 해녀의 섬,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크기가 작은 게를 넣어 만든 ‘깅이죽’은 해녀의 섬,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식재료가 매우 신선하고 독특한 맛을 자랑해서 놀랐다. 제주 영귤은 꿀보다 달았고 열대과일보다 풍미가 깊었다.” 두 달 전 열린 ‘제1회 푸드앤와인페스티벌’에 참가하려고 제주도를 찾았던 싱가포르의 유명한 페이스트리 셰프 재니스 웡이 당시 제주의 식재료를 맛보고 감탄한 말이다. 이제 제주는 세계적 요리사들이 찾는 미식의 섬이 됐다. 실력을 갖춘 대도시의 요리사들마저 ‘요리 이민’을 해 제주의 식탁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서울의 고급 레스토랑 같은 맛집이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연다.

뻘건 것은 물 건너 들어온 것

하지만 제주 음식의 본래 매력은 소박하고 담백하고 심심한 데 있다. 제주 향토음식 명인 1호로 지정된 김지순(80)씨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음식”이라고 정의했다.

부족한 물, 태풍, 척박한 땅 등 농사짓기에는 잔혹한 자연환경을 가진 섬이 제주도였다. 지금은 별미로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은 몸(모자반)국(‘가시식당’), 보말국, 구살(성게)국, 갈치호박국, 각재기(전갱이)국, 멜(멸치)국(‘앞뱅디식당’ ‘정성듬뿍제주국’) 등도 그저 해안의 섬사람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생선이나 해조류였기에 탄생한 음식들이다.

이것들을 통칭해 ‘바릇(바다)국’이라고 한다. 과거 섬사람들은 회를 먹지 않았다. 희뿌연 생선 비늘이 떠다니고 비릿한 향이 감돌아서, 한 숟가락도 못 먹을 것 같지만 일단 혀에 닿으면 그릇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바릇국에서 손을 놓을 수 없다. 매콤하지도 빨갛지도 않다. 요즘은 여행자들의 입맛에 맞춰 빨간 고추장 양념을 넣는 곳도 있지만 전통 방식은 아니다.

김씨는 “본래 간장, 된장 문화다. 고추장이 들어간 매운 음식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 온 호남인들이 들여왔다”고 말한다. 고추는 육지보다 일조량이 많아 빨리 자라는 통에 빨갛게 익기도 전에 벌레의 기습을 받았다. 섬사람들의 방책은 해충의 습격 전에 파랗더라도 빨리 따 먹는 것이었다.

제주도 물회도 육지처럼 뻘겋지 않다. 탱탱한 생선 위에 된장의 구수한 맛이 딱 달라붙어 있다. 뗏목 같은 작은 배를 타고 나간 어부들이, 팔기에는 모양새가 떨어지는 생선을 밥과 된장에 비벼 먹으면서 탄생한 음식이다. 식초와 채소가 듬뿍 들어간다. 육지와 다른 점은 물회에 제피(초피나무 잎)를 넣는다는 점이다. 만약 당신이 제피가 없는 물회를 먹었다면 앙꼬(팥소) 빠진 단팥빵을 맛본 꼴과 같다.

제주물회가 전국적 인기를 끈 것은 1964년 개업한 서귀포시 모슬포항의 항구식당 때문이었다. 제주로 신혼여행을 온 이들이 찾으면서 입소문이 났다. 지역민들의 단골집은 서귀포시 ‘공천포식당’이나 제주시 ‘일곱물식당’이다. 방송을 타 긴 줄을 서야 하는 ‘순옥이네 명가’와는 견줄 수 없다. 푸짐한 자리물회, 전복물회는 감칠맛도 수준급이다.

제주 사람들은 생선음식만 먹었을까? 제주는 지역별로 물물교환이 발달한 섬이었다. 중산간에 사는 이들은 버섯을 캐거나 돼지를 잡아 해안 거주민의 생선과 바꿔 먹었다. 일찌감치 나누는 문화가 스며든 공동체였다.

김지순씨의 아들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양용진(52) 원장은 최근 ‘낭푼밥상’을 열었다. 낭푼밥상은 돌우럭콩조림, 빙떡 등으로 구성한, 역사가 오래된 제주 향토식이다. 빙떡은 얇게 빚은 메밀피에 양념한 무나물을 속재료로 넣고 빙빙 말아 만든 음식이다. 매우 담백하다. 양 원장은 낭푼밥상의 원형을 바탕으로 제주의 건강한 식재료를 활용한 밥상을 차렸다.

제주향토음식은 수백 권의 책으로 묶어도, 며칠을 밤새워 얘기를 나눠도 모자랄 정도로 많다. 제주식 육개장도 독특하다. 육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 고기 맛이 난다. 돼지고기 육수에 한라산의 먹고사리를 넣어 푹 끓여 만든다. 메밀가루를 넣어 걸쭉하다. 제주시의 ‘우진해장국’은 여행객들의 순례지가 됐다.

“삼춘, 한 그릇!”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1970년대 제주 꼬맹이들은 메밀버무리를 간식으로 먹었다. 삶은 고구마에 메밀가루를 뿌려 만든 버무리다. 고려시대에 섬에 들어온 메밀은 돌밭 등 황폐한 땅에 무심하게 뿌려도 잘 자랐다. 그저 고맙고 감사한 작물이었다.

양 원장은 종종 꿩 얘기를 도시인들에게 들려준다. “머리가 나쁜 꿩은 늘 같은 길을 다녔는데, 멍청해서 어린아이도 잡기 쉬웠다.” 어른들은 꿩을 잡아 꿩엿을 만들었다. 차조, 보리, 꿩고기를 같이 고아 만들었다. 달짝지근하고 쭉쭉 늘어지는 엿을 먹다보면 뭔가 씹혔다. 꿩고기다. 요즘은 꿩고기를 갈아 넣는다. 가난하던 시절 섬사람들의 거의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1980년대에 사라졌던 꿩엿은 2년 전 ‘슬로푸드’ 운동을 하는 이들의 노력으로 복원됐다.

꿩과 메밀이 만난 꿩메밀칼국수도 담백하기가 평양냉면 저리 가라다. 처음 맛본 이들은 평양냉면을 두고 “걸레 빤 물 맛이야!”라고 괴성을 지르는 ‘평냉’ 초보자처럼 반응할 것이다. 제주시 ‘골목식당’은 찾기 어렵지만 푸짐한 꿩메밀칼국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는 해녀의 섬이기도 하다. 해녀가 연 맛집도 넘쳐난다. 제주시 ‘모메존식당’의 주인 한수열(60)씨가 그런 이다. 이 식당의 동지(배추꽃대)김치, 깅이죽, 깅이콩무침, 깅이칼국수 등도 제주 전통식이다. 소금과 배추가 귀했던 과거 제주에서는 소금 대신 바닷물을, 배추 대신 동지 등을 김치 재료로 썼다.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하는 백령도처럼 이곳도 멸치액젓으로 간을 한다. ‘깅이’는 제주 방언으로 크기가 작은 게를 말한다.

이곳을 찾은 지역민들은 “삼춘, 한 그릇!”이라고 말한다. 여성인 한씨에게 ‘삼춘’이라니! 육지의 삼촌과는 다른 의미다. 씨족사회로 유지됐던 제주에서는 이웃이 모두 ‘삼춘’이었다. ‘여자 삼춘’ ‘남자 삼춘’이라 불렀다.

골목마다 점령하다시피 한 도시의 중국집이 제주도에도 있을까? 제주시 ‘보영반점’의 짬뽕에는 신선한 제주 해산물이, 서귀포시 ‘마라도에서 온 짜장면집’의 짜장면에는 ‘비유전자변형식품’(Non-GMO)인 제주 식재료로 맛을 낸다.

제주 화교사도 중국 산둥에서 시작한다. 산둥에서 내려온 중국인들의 일부가 인천에서 내리고 더 남하한 무리는 전남 목포, 전북 군산에 정착했다. 목포와 직선거리에 있는 제주 한림항에도 일부가 보따리를 풀었는데 그들이 제주 중식사를 시작했다.

소멸 위기의 음식문화 유산에 포함

말고기(‘마진가’), 제주 토종 종자인 흑우(‘흑우랑’) 등은 제주 흑돼지와 함께 제주도만의 육고기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밖에도 제주 쉰다리(막걸리디저트), 꿩엿, 제주푸른콩장, 제주흑우 등 10가지 넘은 제주 토종 작물은 국제슬로푸드협회의 ‘맛의 방주’(소멸 위기에 놓인 음식문화 유산을 지키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에 최근 등재됐다.

글·사진 박미향 음식문화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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