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는 희곡 에서 미국 독립전쟁 때 영국의 용병으로 팔려가 가장 악랄하게 굴었던 ‘헤센 기병대’를 빗대기라도 하듯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일부 독일 영주들은 자기 영지 내 청년들을 남의 나라 군으로 팔았는데, 미국행 지원자는 흔치 않았다. 영주는 몇몇 불평분자를 총살하라고 명령, 그들의 골수가 포장도로 위에 튀어오르자 장병들은 “어서 미국으로!”라고 외쳤다. 그렇게 팔려간 7천 명의 몸값인 보석 하나가 마침 정나미 떨어져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버리려는 영주 애첩의 재혼 선물로 주어진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스물셋에 반골로 찍히다</font></font>출생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이런 나라에선 태어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실러가 태어난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영주 카를 오이겐 공도 폭군으로 교만과 사치와 방종의 화신이었다. 실러보다 열한 살 늦게 태어난 헤겔의 아버지는 오이겐 밑에서 재무관을 지냈지만, 실러의 아버지는 끗발 없는 위생병 하사에서 시험을 거쳐 군의관이 된 처지여서 가족의 고난이 클 수밖에 없었다.
튀빙겐, 슈투트가르트, 하이델베르크를 거쳐 만하임에서 라인강과 합류하는 네카어 강변의 마르바흐에서 실러는 태어났다. 헤겔의 고향인 슈투트가르트에서 25km 떨어진 이 한적한 소도시에는 독일 최대 문학 도서관의 하나인 ‘국립실러박물관’과 동상이 높다란 실러 언덕에 세워져 있다.
실러네는 쪼들려 싼 집을 찾아 자주 이사 다녔다. 카를 오이겐은 자신이 세운 군사학교에 실러를 강제 입학시켰다. 그 학교가 슈투트가르트 시내로 이전하면서 육군대학으로 승격되어 실러는 의학을 전공, 군의관으로 슈투트가르트 연대에 근무하며 출세작 를 냈다.
만하임에서의 첫 공연에 참석하고자 부대를 이탈하자 카를 오이겐은 그에게 14일 구류 및 향후 다른 작품 발표 금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실러는 바로 “폭력을 가하는 자에게 우리는 인권을 위하여 투쟁할 것이다. 비겁하게 폭력을 감수하는 자는 인간의 권리를 포기하는 자이다”라고 선언, 탈영해버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괴테가 을 바꾸다 </font></font>영주 통치의 삼엄한 시대 스물세 살에 반골로 낙인찍힌 그의 신산한 삶은 절대 권력에 절대 저항하는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진실과 자유를 향한 굽힐 줄 모르는 저항의 투지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불운한 실러를 괴테는 6년간 테스트한 뒤 신뢰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뒤 실러는 바이마르로 이사, 정착했는데, 이미 마흔 살이었고, 나폴레옹이 바이마르를 약탈하기 한 해 전(1805)에 마흔여섯 살로 타계했다. 이 신뢰하는 후배가 살아 있었다면 괴테는 나폴레옹 점령 때 그토록 초라하게 굴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소중한 사람은 죽은 뒤에 표가 난다.
은 괴테로부터 양보받아 실러가 죽기 한 해 전에 쓴 최후의 걸작이다. 전설의 무대는 스위스의 절경 피어발트슈테터 호수(루체른 호수)의 남쪽 알트도르프다. 실러가 현지에 가보지도 않고 쓴 이 작품은 스위스의 국민극이자 세계 민족해방 투쟁의 걸작으로 찬연히 빛난다.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알트도르프에 들어서면 게슬러가 모자 막대기를 세웠던 전설의 자리에 빌헬름 텔 부자 동상이 압도하고 그 뒤는 간략한 전시장과 세미나실을 갖춘 극장이고, 주변은 장터다. 외길로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빌헬름 텔의 고향 마을 뷔르글렌이다. 조용한 주택가와 교회, 빌헬름 텔 박물관 등이 있다. 마을 전체가 빌헬름 텔 기념관처럼 평화와 자유의 정겨움이 서려 있어 떠나기 싫어진다. 거기서 듣는 교회의 종소리는 유난히 청아하다.
막대기에 걸린 모자에 경의를 표하라는 미친 짓거리는 지상의 모든 악정을 상징한다. 이를 닮은 저질 정치가들이 우리 주변에만도 얼마나 흔한가.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헤르만 게슬러 같은 자유와 평화의 적은 엄존하며, 그런 세상이라면 빌헬름 텔 같은 저항은 이어질 것이다.
실러가 작고한 뒤 괴테는 게슬러 총독이 나무에서 사과 한 알을 따서 아들 머리 위에 올려놓고는 아버지로 하여금 활로 쏘게 하는 장면은 너무 잔인하니 고치라는 설득에 나섰다고 회고했다. 너무나 끈질기게 괴테가 주장하자 결국 실러는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에서 밝히고 있다.
실제로 작품에는 발터 텔(아들)이 “우리 아버지는 나리의 나무에 달린 사과를 100보 떨어져서도 쏴 떨어뜨리세요”라고 총독을 자극한 것으로 나온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외세에 복종하면 대가 받아야</font></font>과연 괴테의 충고가 옳은가? 아니, 괴테는 누구 편인가?
이 드라마는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는 협력과 연대의 공동 투쟁이며, 둘째는 “가장 자유로운 사람도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 셋째는 빈민족적 행위자 엄벌이다. “오스트리아에 복종하는 자는 아무런 공권도 가질 수 없으며 모든 명예를 상실해야 합니다. 어떤 주민도 그런 사람을 따뜻이 맞아들여서는 안 됩니다”라는 구절은 유난히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임헌영 문학비평가·민족문제연구소 소장※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연재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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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일본의 윤동주, 일본의 톨스토이
② 춘원 이광수의 양부, 일본의 괴벨스
③ 위대하고 혼란스런 파리의 빅토르 위고
④ 무시무시한 시절의 위고
⑤ 늙어서 오히려 진보한 위고
⑥ 민중의 눈으로 전쟁을 본 톨스토이
⑦ 인도주의 상징 톨스토이
⑧ 지복을 누린 괴테
⑨ 정치는 우리의 운명, 스탕달</font>
⑩ 실러의 위대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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