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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눈으로 전쟁을 본 톨스토이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 다룬 대작 <전쟁과 평화> ‘전쟁은 이성에 어긋나고 권력은 역사의 노예’ 결론
등록 2016-03-17 12:22 수정 2020-05-02 19:28




연재 순서


① 일본의 윤동주, 일본의 톨스토이
② 춘원 이광수의 양부, 일본의 괴벨스
③ 위대하고 혼란스런 파리의 빅토르 위고
④ 무시무시한 시절의 위고
⑤ 늙어서 오히려 진보한 위고

⑥ 민중의 눈으로 전쟁을 본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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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지노 전투 당시 러시아군 진지 쪽에 있는 전몰자 묘지. 톨스토이는 침략전쟁을 “인간의 이성과 본능에 어긋난 사건”으로 보았다. 임헌영

보로지노 전투 당시 러시아군 진지 쪽에 있는 전몰자 묘지. 톨스토이는 침략전쟁을 “인간의 이성과 본능에 어긋난 사건”으로 보았다. 임헌영

킹 비더 감독의 208분짜리 영화 (1956)는 할리우드식 멜로드라마지만, 보로지노 전투 장면 때문에 그나마 볼만하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의 소설 그대로 촬영했다는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431분짜리 영화(1966)는 아무리 보고 싶어도 허사다. 누군가 이런 명화를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 작품은 보로지노 전투 장면을 러시아 공군이 지원, 공중 촬영해 유명하다. 다행히 그 화면의 맛을 볼 수 있었던 건 이 영화를 210분으로 축약, ‘공산권 영화 수입 1호’로 1988년 한국에서 상영했기 때문이다.

그 보로지노로 가는 길은 러시아의 대평원이 주는 넉넉함에다 의 사운드트랙, 특히 그 속에서 ‘나타샤 왈츠’나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을 가미하면 보드카를 마신 것처럼 더욱 알딸딸해진다.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역이 없다. 행선지 지명이 곧 역으로 되어 있기에 차를 잘못 탈 염려는 없다. 보로지노엘 가려면 벨라루스(수도 민스크)역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더 서쪽으로 달리면 폴란드 바르샤바와 독일 베를린으로 통한다. 언제쯤에나 우리는 기차로 이런 여행이 가능해질까.

39살 톨스토이가 본 대평원

거기서 장거리나 국제선이 아닌 교외선 전철로 두 시간가량이면 보로지노역에 도착, 100km²가 격전지였던 국립 보로지노 군사역사박물관 보존 지역의 대평원을 전망할 수 있다. 자동차는 한결 편하다. 모스크바에서 민스크행 고속도로를 따라 서향, 스몰렌스크(모스크바 서남 362km. 나폴레옹 침공 때 격전지의 하나)로 가는 길로 빠진다. 120km라 1시간30분이면 넉넉하다. 이 길을 거꾸로 하면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 경로가 된다.

서른아홉 살의 톨스토이는 1867년 9월 말쯤 열두 살짜리 막내처남(스테판)을 데리고 수렁투성이 옛길을 골라 하루 꼬박 걸려 배를 쫄쫄 곯아가며 마차로 갔다.

보로지노 전투로 죽은 니콜라이 투츠코프 장군의 미망인(마르가리타 투츠코프)이 1824년에 세운 스파스 네루코트보르니 수도원에다 그는 여장을 풀었다.

시신들로 뒤덮였던 들판과 오두막들은 평화롭고 풍요한 평야일 뿐이었다. 대지는 전쟁을 싫어해 어떤 잔혹함도 부드러운 흙으로 변모시킨다. 발을 딛는 그 밑이 전부 송장이 즐비했던 자리라 귀신의 곡소리가 난다 한들 놀랄 일도 아니다. 이 들판을 톨스토이는 이틀간 증언자와 전투 흔적을 찾아 쏘다니며 취재했다.

1812년 9월7일(에서는 구력으로 8월26일), 나폴레옹군 13만5천과 러시아군 12만6천 병사가 15시간의 격전으로 10여 만 명의 사상자를 낸 게 보로지노 전투다. 통계 기록마다 제각각에다 서로가 이겼다고 우기며, 장군들의 전략·전술에 대한 논평과 역사교과서 서술까지 깡그리 엇갈리는 게 이 전투의 특징이다.

전투 통계·평가 제각각
톨스토이의 친필 원고(위쪽)와 러시아 전승 기념비.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갈파한 역사의식은 민중사관과 닮았다. 임헌영

톨스토이의 친필 원고(위쪽)와 러시아 전승 기념비.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갈파한 역사의식은 민중사관과 닮았다. 임헌영

보로지노 전투 100주년 기념(1912)으로 조성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군은 동쪽(왼편), 프랑스군은 서쪽(오른편)에 3km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1839년에 세운 입구의 승전기념탑을 비롯하여 숱한 기념비와 탑, 묘지들은 거의가 길 왼편 러시아군 진지 쪽에 있다. 나폴레옹 캠프의 기념 오벨리스크는 남서쪽에 있는데, 1912년 프랑스가 지불해서 세운 것이다.

수도원 뒤 약간 높은 언덕이 러시아군 진지였고, 바로 그 옆에 톨스토이 방문 기념관이 있는데, 에 관한 한 가장 상세한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

모스크바 시내의 ‘보로지노 파노라마’는 전투 150주년 기념으로 1962년 10월에 건립한 것인데, 워털루의 파노라마 전시관처럼 거대한 시설로 전투 장면을 재생해준다. 그러나 웬만하면 보로지노 현지를 거쳐 돌아오는 길에는 페레델키노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문학관도 들러 오는 게 인문학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톨스토이는 침략전쟁을 독재자들의 간악한 허위와 독선으로 농단된 “인간의 이성과 본능에 어긋나는 사건”으로 치부한다. 이런 가운데서 그는 황제보다 한 수 위인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거만하고 파렴치한 하인” 하나를 부각시킨다.

스몰렌스크에서 보로지노로 행군 중이던 나폴레옹 앞에 끌려간 포로 라브루쉬카는 자신을 심문하는 상대가 희대의 영웅임을 이내 간파하고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뗀다. 러시아가 보나파르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나폴레옹이 묻자 그는 승부가 바로 가려진다면 당신네들이 이길 것이지만 사흘 이상 지나면 오래 끌 거라고 말끝을 흐렸는데, 그 속뜻은 러시아가 이긴다는 암시다.

나폴레옹과 포로의 대화

그러나 아차 싶어진 하인이 “당신네한테는 보나파르트란 사람이 있다는 걸 우리들도 잘 알고 있습죠. 그는 세계를 평정하고 다녔습니다만”이라는 모호한 찬사를 바친다. 찬사에 솔깃해져 나폴레옹은 우쭐대며 “이 ‘돈강의 아들’과 말벗이 되어 있는 사람은 황제 자신이며, 그것도 피라미드 위의 불후의 이름을 기록한 위대한 황제임을 알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시험”해보고 싶어진다.

라브루쉬카는 그 속뜻이 자기를 깜짝 놀라 혼비백산시키려는 것임을 간파하고, 새 주인의 비위에 맞춰 마치 태형장에 끌려갈 때처럼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에 관대해진 황제는 그에게 “상을 주고 마치 고향의 들에 새를 놓아주듯이 그에게 자유를 주었던 것이다.”(, 박형규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 677~678쪽)

그해 8월24일(구력, 소설에 따름), 보로지노 일대에는 비가 내려 땅이 질펀했는데, 나폴레옹은 장화로 바꿔 신지 않은 채 단화로 산책, 아랫도리가 젖어 코감기에 걸렸다.

격전 하루 전인 25일, 침략군과 러시아군은 서로 총 한 방 쏘지 않았다. 오전 11시께, 소설의 피에르는 보로지노가 훤히 보이는 자리를 차지했다.

그날 밤, 황제는 “한가하게 농담”을 즐겼다. “마치 환자를 수술대에 동여매고 있는 동안 이름 있고 자신만만한 명 외과의사가 소매를 걷어올리거나 수술복을 입거나 하면서 하는 태도와 흡사했다.”

결전의 날, 새벽 3시, 그는 콧물감기가 심해졌는데도 크게 코를 풀었다.

민중사관과 닮은 역사의식

워털루 전투 전날 밤에도 나폴레옹은 무척 유쾌했다고 위고가 증언했듯이 영웅도 자신의 한 치 앞은 모르는 것!

1812년 8월26일 결전에서 그는 패배했는데, 톨스토이는 에서 이렇게 쓴다.

“만약에 그가 콧물감기를 앓지 않았던들 그는 전투 전이나 전투 중에 한층 탁월한 명령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러시아는 오래전에 멸망되어 ‘세계지도도 바뀌었을 것이다’라고.” “따라서 24일 나폴레옹에게 방수화를 신길 것을 잊었던 시종이 러시아의 구세주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745쪽)

이런 역사관을 비판하기 위하여 톨스토이는 를 썼다. 톨스토이는 ‘신의 섭리’에 의한 역사관, 역사 속 개인의 운명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을 “왕은 역사의 노예다”라는 짤막한 공리로 정립해준다. 명분은 ‘신의 섭리’라지만 그가 논구하는 역사의식은 민중사관과 닮은 것으로 지금 식으로 풀자면 대통령이나 총리가 역사를 움직이는 듯이 보이지만 그 권력이란 다 ‘역사의 노예’라는 관점이다.

임헌영 문학비평가·민족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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