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고 혼란스런 파리의 빅토르 위고

명작을 썼던 전성기의 위고, 복잡한 사생활과 좌충우돌 정치인생도 함께한 파리 시절

연재 순서

① 일본의 윤동주 도쿠토미 로카
② 일본의 괴벨스 도쿠토미 소호
③ 프랑스혁명과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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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위고문학관에 걸린 빅토르 위고의 초상화. 임헌영 제공

빅토르 위고(1802년 2월26일~1885년 5월22일)는 2살 때 고향 브장송을 떠난 뒤 하도 옮겨다녀 여행객으로서는 다 찾아다니기 어렵지만 생가와 파리의 위고문학관은 꼭 가볼 만하다.

“브장송은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기개가 넘치고 재치 있는 인재가 많은 도시다”( 제1부 24장)라고 스탕달은 극찬했다. 쥐라산맥 북쪽 끝자락의 생테티엔산을 끼고 두(Doubs)강이 원을 그리듯이 거의 한 바퀴 도는 가운데에 다소곳이 브장송 구시가지가 있어 딱 프랑스의 하회마을이다.

2월16일, 그날이 그날이다

의 주인공 줄리앙 소렐은 레날 부인과의 불륜이 들통나 베리에르 시장 집에서 쫓겨나자 셀랑 사제의 추천으로 교육도시인 브장송 신학교를 찾아가는데 첫눈에 브장송 요새가 들어온다. 100여 항독 레지스탕스가 처형된 터에다 세운 ‘레지스탕스 박물관’이 여기에 있다. 1971년에 문을 연 20여 전시실의 이 박물관은 가히 압권이다. 브장송 출신으로는 마르크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 부른 푸리에와, 화가 쿠르베가 너무나 존경하여 초상화까지 그린 혁명가 프루동, 영화의 아버지 뤼미에르 형제 등이 있다.

그 요새 바로 아래에 위고의 생가가 있다. 이 집 2층에서 위고는 나폴레옹 숭배자에 바람둥이인 소령(나중 장군) 아버지와 노예무역에도 손댔던 선장의 딸로 골수 왕당파였던 어머니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남편 복무지보다는 애인(반나폴레옹파 장군)을 찾아다니기에 바빴던 어머니 때문에 무척 울었다는 위고의 어린 시절은 유랑의 연속이었다.

파리 마레지구 보주광장의 로앙-게메네 저택의 위고문학관은 그가 한집에서 가장 긴 16년간(1832~48) 살았던 곳이다. 연간 1500프랑의 임대료를 4분기로 나눠 지불하면서 100여 편의 작품을 썼던 가장 행복한 때를 보낸 장소다. 자료관은 팔자가 기구한 대가의 생애를 망명 전, 망명 시기, 망명 이후로 나눠 온갖 희귀 자료를 소상하게 전시하고 있다.

브장송 요새 바로 아래에 있는 위고 생가. 임헌영 제공

여기서 그는 문예가협회 회장(1840), 아카데미 회원(1841), 자작 작위(1837), 상원의원(1845) 등 세속적인 출세를 했고, 응접실에는 낭만파 문인들, 나중에 대통령에 출마하게 될 시인 라마르틴, 소설보다 더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알렉상드르 뒤마, 나폴레옹 3세 치하에서 상원의원을 지낸 메리메 등등과 어울렸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 흉사도 있었다. 모성애 결핍을 앓았던 위고는 소년 시절부터 사랑했던 아델 푸셰와 20살에 결혼했는데, 그녀가 당대 최고 평론가 생트뵈브와 잠시 염문을 뿌렸다. 그녀가 마음 다잡고 위고의 충실한 내자(內子)로 돌아선 몇 년 뒤 맏딸과 사위가 결혼 7개월 만에 익사(1843)한 것도 이 집에 살 때였다.

아내를 내자로 집 안에 묶어두고 바깥의 모든 행사에 동행하게 될 외자(外子) 역할로서의 연인 여배우 쥘리에트 드루에와 위고가 첫 깊은 관계를 맺은 날은 1833년 2월16일. 이게 뭐 중요하기에 날짜까지 짱박느냐면 에서 마리우스가 코제트와 결혼한 날임을 상기하기 바란다. 어떤 전기는 19일이라고도 하지만 어느 날이든 두 사건은 같은 날이었으리라. 소설은 1833년 2월16일을 “참회의 화요일! 참 잘됐다”, “참회의 화요일 결혼에 배은망덕의 자식은 없다”(정기수 옮김, 민음사, 5권 323쪽)는 속담까지 동원한다.

제임스 조이스도 애인 노라 바너클과 첫 사랑을 나눈 날(1904년 6월16일)을 의 시간적인 배경으로 삼았다니 작가의 아내들은 남편의 작품을 세심하게 읽어볼 일이다. 아니, 이런 건 평론가의 몫이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혁명

1971년 문을 연 레지스탕스 박물관의 출입문. 임헌영 제공

문제는 내자와 외자만으로 만족할 위고가 아니란 데 있다. 세계 문학사에서 정력가로 금메달은 톨스토이이고 은메달은 위고, 소문 요란한 괴테와 바이런이 동메달로 다툰다는 게 믿거나 말거나 통신이다. 위고는 또 다른 정인을 탐색했다. 노예무역 폐지론자인 화가 오귀스트 비아르의 아내 레오니 도네와 위고가 불륜으로 잡힌 건 1845년 7월5일. 당시 간통은 현장 구속이라 레오니는 수감됐으나 위고는 귀족 특권으로 석방됐다. 이럴 경우 정작 아내인 내자보다 시샘으로 방방 뛰는 건 외자인 드루에다. 내자는 외자가 안달하는 꼴을 보려는 심술에서 도리어 레오니의 보석금까지 물어줘서 풀려나게 만들었다. 왕실은 화가 비아르에게 베르사유 궁전 벽화를 그릴 일감을 주선해 공소 취하를 종용했다. 특권이란 이런 것이다.

레오니 도네 사건에서 느닷없이 이병린 변호사(1911~86)가 떠올랐다. 유신 치하인 1975년 1월17일, 윤리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도 현장을 덮쳐 구속, 인격을 추락시킨 독재의 피해자가 되신 분이다. 사건 하루 전날 정보부원이 내민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 사퇴 각서를 거절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누군가 그 고고했던 분의 기념사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2월은 위고에게 행운의 달이었다. 생일(26일)에다, 세계 연극 사상 가장 시끌벅적했던 로맨티시즘의 판정승을 가져다준 연극 의 첫 공연(1830년 2월25일)과, 수호천사 같은 외자 드루에와 첫 관계를 맺은 것이 다 2월이 아니던가.

이 보주광장의 집에서 위고는 1848년 2월에 느긋하게 특권과 명예를 누리느라 세계사를 변모시킬 대사건이었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금광 발견(1월24일)이나 (2월21일)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특권층들이 행복에 겨워 낌새도 못 채는 사이에 요상한 기운으로 갈아엎어진다. 16년간 잘 살았던 이 집에서 위고는 2월혁명을 맞았다.

1848년 1월19일로 예정됐던 파리 제12지구 투표권 확대를 위한 개혁 모임이 관계 당국의 상투적인 불법 타령으로 금지당하자 2월22일로 연기됐다. 이 기간에 저항 세력이 확산되어 성난 군중은 ‘개혁 만세’와 보수적인 총리 ‘기조 타도’ 시위를 전개, 23일 밤에는 총격전으로 50여 명이 사망했지만 24일 10시에는 시청을 포위했고, 11시경에는 공화국 요구 포스터가 나붙었으며, 1시에는 루이 필리프 왕이 퇴위, 의회는 공화제를 의결, 25일 아침에 공화제를 선포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역사상 왕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이 소용돌이는 위고를 특권층의 꿈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 그는 역사와 혁명을 제대로 파악했다.

“아무리 교묘하게 꾀를 써도 민중을 제가 원하는 것보다 더 빨리 걸어가게 하지는 못한다. 민중을 강요하려고 하는 자는 불행할진저! 민중은 저에게 시키는 대로 두지 않는다. 그런 때엔 민중은 반란을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둔다.”( 5권 115쪽)

제헌의회 총선에서 주장만 많은 개혁파와는 달리 보수파는 용의주도하게 ‘빨갱이’ 소동을 전개하는 등 온갖 요술방망이를 휘둘렀다. 시인 라마르틴의 추천으로 파리지구 혁명위원을 지낸 위고는 5월에 정든 집을 떠났고, 6월5일 보궐선거에서 제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브장송 요새에서 바라본 구시가지. 임헌영 제공

19세기 프랑스, 21세기 한국

그해 12월10일 대통령 선거 때 위고는 막역한 문단 선배 공화주의자 라마르틴 후보(뿐이 아니라 다른 두 공화주의 후보자)를 제치고 나폴레옹의 조카(가짜설이 우세)라는 루이 나폴레옹을 우수, 냉정, 온화하며 자유와 정의의 지지자로 빈곤 퇴치에 노력할 것으로 신뢰한다며 프랑스의 운명 등등 거북한 찬사로 자기가 냈던 일간지 을 통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천재도 가끔 해까닥하는 모양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똑똑한 분이 해까닥하는 예를 심심찮게 보지 않는가.

나폴레옹 몰락 후 국제 떠돌이 사기꾼이었던 루이 나폴레옹이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길 닦아놓으니 문둥이가 먼저 지나간 격이다. 프랑스대혁명 뒤에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망가뜨리더니 그의 몰락 33년 만에 그 조카가 부활했다. 우리도 비슷한 처지다. 4월혁명을 뒤엎은 5·16이 유신독재 몰락 33년 만에 부활하지 않았는가. 루이 나폴레옹이 영구 집권을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듯이 유신 부활 정권이 오는 4월 총선에서 개헌선을 노리는 것도 판박이다.

임헌영 문학비평가·민족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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