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가장 사소한 것들의 역사서다. (어크로스 펴냄)은 저자 제임스 워드가 썼듯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물건 뒤에 있는 사람들, 브랜드 뒤에 있는 그들의 이름, 그들의 삶, 그들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다.
제임스 워드는 영국의 ‘문구 덕후’다. 영국 서리주의 작은 도시 우스터파크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 시내에 있는 문구점 파울러스에 자주 갔다. 조용하고 작은 문구점 파울러스의 진열대 절반은 사무용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어른들이 필요한 물건만 골라 얼른 사라지는 파울러스는 도서관처럼 공기가 묵직했다. 워드는 그곳에 있는 모든 것에 매료됐다. 클립, 스테이플러, 펀치, 습식 스탬프 패드 같은 것을 그는 한참 만지작거리고 손안에 굴려보았다. 평범한 물건들 사이에 숨은 이야기를 탐색하며 자란 아이는 그렇게, ‘런던 문구 클럽’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독서 클럽처럼 자주 쓰는 문구용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그런 그가 썼으므로 이야기는 매우 시시콜콜하다. 이를테면 우리는 압정을 누가 최초로 발명했는지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다. 하지만 워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평생 모르고 살아도 지장 없는 미미한 역사를 진지하고 태연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 압정의 최초 발명자는 도대체 누굴까. 워드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엔지니어 하인리히 삭스가 1888년 디자인했다는 주장이 있고, 1900년대 초반 독일의 시계 제작자인 요한 키르스텐이 발명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1800년대에 미국과 영국 곳곳에서 압정과 같은 물건을 묘사한 기록이 있다.
이 사소하고도 대단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자. 요한 키르스텐은 핀에 크고 납작한 머리가 있으면 작업 중 메모를 벽에 붙일 때 엄지손가락이 덜 아프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황동 조각을 두드려서 머리를 만들고 못을 박아 붙였다. 그는 이 핀을 직공들에게 팔았다. 하지만 지독한 술꾼인 키르스텐은 술 마시느라 돈을 다 써서 더 이상 압정을 생산할 수 없었다. 그는 디자인을 공장주 아르투르 린트슈테트에게 판다. 매일 수천 개의 압정을 만들어 전 유럽에 판매했다. 린트슈테트는 부자가 되었다. 키르스텐의 영예는 사후에 겨우 인정되는데 이마저도 초라하다. 압정 발명 100주년을 기념해 베를린 북쪽의 작은 도시 뤼헨, 뤼헨에서도 외곽에 있는, 그리고 그 작은 동네에서도 조그만 호텔 앞에 쓸쓸한 조각상으로 세워진다.
한동안 압정에 매료돼 있었을 그는 또 이런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 먼지를 털어냈을 것이다. 1932년 6월18일 사우스 청퍼드에 사는 도리스 니컬스 부인은 동네 정육점에서 닭 한 마리와 돼지고기 파이 다섯 개를 샀다. 저녁 늦게 파이를 베어문 니컬스 부인은 입안 깊숙한 곳에서 날카로운 무엇을 느꼈다. 입속을 찌른 압정을 손가락으로 훑어 빼냈지만 그 뒤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정도로 목이 아팠다. 피를 토하다 파이를 먹은 지 일주일이나 지난 6월25일 압정을 하나 토해냈다.
이런 식으로 클립, 펜, 노트, 연필, 지우개, 홍보용품과 기념품, 포스트잇, 스테이플러, 서류함 따위에 엮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상 서랍에서 문구류들이 속닥이는 그들만의 역사를 엿듣고 있는 기분이다. 가장 일상적이고 사소한 물건 뒤에는 이렇게 방대한 역사가 숨어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은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 사라지고 없어질 무언가에 대한 거룩하고 중요한 기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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