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는 출퇴근기록기를 설치하고는 지각을 할 경우에는 분당 임금 삭감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노동조합을 만든 뒤) ‘노동자 의식도 없는 애들이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건너건너 들어야 했다.”
“하루에 3시간씩 사장에게 불려가 ‘넌 바보다’ 따위의 세뇌를 당했다.”
“대표는 폼이 났지만, 직원들은 피폐해져갔다. 마케팅은 고상하고 영업은 저속한 것으로 취급됐다.”
이 모든 당황스러운 노동자 인권침해는 모두 출판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에 실린 고아영 등 출판노동자 11명의 고백은 서로 다르지만 놀랍도록 같다. 처음엔 다 책을 만드는 일이 좋았다. 출판은 ‘지성으로 살아 숨쉬는 신성한 생물’을 만드는 사명감 넘치는 행위였다. 책을 만지는 것만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동료·선배·후배의 해고, 퇴사 행렬, 복사기로 찍어낸 듯 똑같은 수당 없는 야근과 주말, 휴일근무로 이어지는 장시간 노동, 주간·사장·부장 등의 폭언 등으로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지고 회의감은 높아만 갔다.
이들의 회의감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드는 건 그들이 일하는 곳이 바로 ‘책공장’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책인데 그 책을 만드는 회사는 이렇게 비상식적이란 말인가?”(이수정, 프리랜서 북디자이너) “글자는 왼쪽으로 갔지만, 왼쪽의 담론을 책으로 담아내는 사람은 말인지 똥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말과 행동을 쏟아냈다.”(정유민, 웅진지식하우스 편집자)
게다가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의 노동자성은 참으로 비루하다. 노동조합을 어렵사리 만들라치면 들려오는 소리는 다음과 같았다. “내가 얼마나 진보적인 사람인데, 너희들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 “내가 얼마나 직원들에게 잘해주는데, 뭐가 문제가 된다고 노동조합 같은 걸 만들려고 하냐?” 1년에 1종 이상 책을 낸 출판사 2900여 곳(2009년 기준) 가운데 노동조합이 있는 출판사는 8곳에 불과하다. 이건 비단 출판계만의 일은 아니다.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 공무를 보는 공무원, 대기업 삼성에 고용된 ‘삼성맨’, 수많은 파견노동자의 노동자성도 모두 바람 앞의 촛불 같다.
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노동의 한 분야를 눈앞에 끌어냈다. ‘왜 굳이 출판노동을 말해야 하는가’라고 자문하는 출판노동자들에게 ‘왜 출판노동자의 자기 고백이 책으로 나오면 안 되는 거냐’고 반문한다. 책 표지뿐 아니라 책 본문 디자인도 자식처럼 생각하는 출판 디자이너의 노동과 엉망진창인 번역 초고 앞에서 황망해하는 편집자의 노동과 그림책을 팔기 위해 구연동화 이벤트를 하고 인문도서를 더 잘 팔기 위해 스터디 모임을 하는 마케터의 노동은 책 뒤에도 사람이 있고 노동이 있음을 일러준다. 책 표지는 지은이는 물론 기획자·펴낸이·디자이너·영업·편집자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그동안 표지 뒤 내지에 숨어 있던 이름이다.
출판사 ‘숨쉬는책공장’이 각 분야 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둘러싼 진솔한 이야기를 담을 ‘일과 삶’ 시리즈 첫째 권에 담기로 선택한 이야기는 이렇게 ‘자신들의 이야기’였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둘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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