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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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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징비록>의 서애 그리고 김상중 발자취를 좇아간 안동 덕질 로드
등록 2015-08-07 17:17 수정 2020-05-03 04:28

한반도에서 가장 댄디한 50대 배우 김상중 덕후의 두 번째 간증 시간! 김상중은 현재 SBS 와 KBS 드라마 에 출연 중이다. 그 외에도 온·오프라인상의 광고를 통해 예기치 못하게 덕후를 ‘심쿵’ 하게 만든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앞에 선 사람이 신문을 펼쳐들었다. 한데 믿을 수 없게도 눈앞에 김상중 사진이 대자로 박힌 광고면이 보이는 게 아닌가! 일반인 코스프레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정신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김상중 덕후 H 제공

김상중 덕후 H 제공

몇 달 동안 김상중의 서애 유성룡 선생 연기를 보다보니 이젠 김상중이 좋은 것인지 유성룡이 좋은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상중과 유성룡이 혼연일체가 되었음을 덕후가 잘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간만에 찾은 고향에서의 토요일 아침, 덕후는 김상중과 덕질의 정점을 찍고자 경북 안동으로 향했다. 대구에서 안동 하회마을까지 버스로 2시간,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가는 덕질 로드. 이 버스가 덕후를 발할라로 데려갈 거야! V8! V8! 주체할 수 없는 덕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마침 폭염주의보가 내린 핫하게 뜨거운 날, 덕후는 안동 하회마을에 입성했다. 한 마리 외로운 덕후를 환영하기라도 하듯 하회마을 입구 쪽 전시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사진)를 발견했다. 포스터 속 갓끈을 늘어뜨리고 우아하게 뒤돌아보는 김상중을 보며 무릎 꿇고 오열할 뻔했다. 자, 침착하자. 덕질 로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중요한 목적지인 옥연정사(玉淵精舍)부터 구경했다. 옥연정사는 서애 선생이 말년에 거처한 가옥으로 국보 132호로 지정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첫 화에서 김상중이 징비를 위해 책을 쓰다 피를 토한 장면을 찍은 장소였다, 쿨럭. 옥연정사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옥연정사에 들어가는 순간, 욘사마의 자취를 찾아 한국 땅을 밟은 일본 여성팬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여기서 김상중이 촬영을 했겠지, 헉헉. 툇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는 와중에 김상중의 얼굴을 한 조상님을 떠올리다 눈물짓고 말았다.

땡볕 아래 옥연정사에서 나와 부용대에 올랐다. 부용대에선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덕후가 덕질을 위해 이곳에 왔는데 좋은 경치까지 보니 원 플러스 원이로구나, 얼쑤! 겸암정사(謙唵精舍)까지 둘러보려 했으나 웬 말벌 한 쌍이 나타나 덕후를 위협했다. 불순한 의도로 이곳을 찾은 덕후를 알아본 것일까. 덕후는 겁이 나 슬그머니 도망쳤다.

다시 나룻배를 타고 마을로 건너가 다음 목적지인 원지정사(遠志精舍)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지정사는 옥연정사보다 먼저 지어진 곳으로 서애 선생이 부친의 3년상을 치르며 기거했던 곳이라 한다. 엔 나오지 않는 장소이긴 했으나 이미 김상중과 유성룡을 따로 떼놓고는 생각하지 못하게 된 몸이 아니던가. 원지정사에는 2층짜리 누정인 연좌루(燕坐樓)가 있다. 연좌루에서 정면을 바라보니 부용대가 보였다. 조상님의 탁월한 부동산 입지 능력에 잠시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서애 선생의 종택 충효당(忠孝堂)과 하회마을까지 돌아본 뒤 덕질 로드는 끝이 났다. 상의가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으나 김상중 덕질에 있어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는 생각에 희열이 차올랐다. 입에 문 12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몹시 달구나. 그래, 덕후는 역시 이래야 제맛이 아닌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저 좋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주체적이고 생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 바로 덕후라는 존재다! 은 이 글이 나갈 때쯤 대단원의 막을 내렸을 것이다. 부디 이 덕후를 기억해줘!

김상중 덕후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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