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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그 목소리와 함께

슬픈 노래를 기쁜 듯이, 기쁜 노래를 슬픈 듯이 부르는 밴드 가을방학의 보컬 ‘계피’… 새 앨범 듣고 나니 잠이 오지 않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네
등록 2015-09-19 22:53 수정 2020-05-03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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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가을방학의 새 앨범으로 도배됐다. “아침부터 가을방학 노래를 듣는 게 아니었다”며 옛날 노래와 영화 동영상을 줄줄이 올리는 페이스북 친구를 보고 ‘그거 정말 미친 짓인데!’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음원 사이트에 접속해 가을방학의 새 앨범을 찾아 틀었다. 역시 미친 짓이었다. 평화는 깨졌다. “대체 왜 이래, 원하는 게 뭔데”라고 읊조리는 계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대체 왜 이래. 원하는 게 뭔데. 며칠째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2년 전 여름, 5년을 사귄 연인과 이별했다. 생각보다 담담했다. 단지 뭔가를 씹는 게 귀찮아 몇 달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뿐. 열심히 일했고 영화와 책을 많이 보면서. 그때 일하는 카페까지 집에서 1시간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고, 가을방학의 노래를 반복 재생해 들었다. 사랑의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가을방학의 노래는 또 다르게 다가오고, 그래서 그렇게 매일.

가을방학의 콘서트 한 번 가본 적 없고, 그들의 트위터도 팔로하지 않으며, 관련 영상을 뒤져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덕후의 자격이 있을까?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2년 넘게 가을방학의 노래를 매일매일 들었을 뿐이다. 우쿨렐레 피크닉의 노래를 듣고 우쿨렐레를 사서, 가을방학의 노래들을 열심히 커버하고 있을 뿐이다. 그뿐이다.

가을방학의 노래의 매력을 말할 때 정바비의 가사를 빼놓을 순 없겠지만, 그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불렀다면…. 글쎄? 계피의 목소리니까 그 독특한 가사를 맘에 파고들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청량하거나 예쁜 목소리도, 쓸쓸하거나 우울한 목소리도 아니다. ‘뭘 좀 아는’ 목소리랄까. 자기의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뭔가를 어필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뭔가를 느끼라고 설득하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 공감을 하든 말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을 한 번 접어 넣고, 가장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효과적으로 자신이 느낀 걸 전달하려는 사람 같다. 게다가 그 부르는 방식. 계피는 슬픈 노래를 기쁜 듯이 부르고 기쁜 노래를 슬픈 듯이 부른다. 지금의 이야기도 이미 지난 이야기처럼, 과거도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그러니까 마치 현명한 아이나 철없는 노인처럼. ‘뉘앙스’를 굉장히 훌륭하게 다루는 보컬이다. 같은 가사도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바꿀 수 있는. 언젠가는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봤다. ‘계피가 라는 노래에서 ‘베스트’를 어떻게 발음하는 줄 알아? ‘베슷-흐’. 완전 요물이야. 그 계집애.’ 대충 이런 요지의 이야기였는데, 그 발음하는 방식에서 주는 약간의 성적인 긴장감 역시 좋아하는 포인트 중 하나다.

2년 동안, 긴 연애를 정리했고, 몇몇과 알 듯 말 듯한 감정을 나눴고, 옴팡 집중해 마음을 줄 사람이 생기기도 했다. 모든 걸 다 쏟아붓는 연애를 하던 20대는 이제는 내 마음은 내 마음, 상대 마음은 상대 마음일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아닌 건 기대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30대가 됐다. 거리 유지에 공을 들이고, 내 마음의 공간을 확보하느라 애를 쓴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한발 더 나아가는 데 겁이 나고, 그러다보면 참 쓸쓸하다는 생각도 든다.

2년간 재생 목록에는 어김없이 가을방학의 노래들이 들어 있다. 계피의 목소리는 나를 흔들고, 기어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나를 뒤흔든 다음, 그 마음을 가라앉히게 위로한다. 병 주고 약 주는, 그 목소리와 함께, 또 그렇게 가을이 왔다.

계피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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