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은 1947년생. 우리 나이로 내년이면 일흔이다. 올해 한국에 번역되어 출간된 그의 신작은 두 권. 처음으로 쓴 추리소설 는 2015년 에드거상을 받았다. 30년 만에 낸 중편집 는 ‘스티븐 킹의 마지막 중편집이 될지도 모른다’는 광고 문구로 내 가슴을 덜컹 내려앉게 했다.
호러 마니아가 아닌지라, 제일 좋아하는 그의 작품이 정통 호러는 아니다. 과 가 포함된 중편집 ,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저지하는 타임슬립 이야기 , 그리고 사람들은 잘 모르는 라는 장편소설을 제일 좋아한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그와 찰떡궁합인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의 과 , 그리고 과 가 최고인 것 같다. 나는 월간지 에 부록으로 실렸던 단편을 빨리 출간해달라고 출판사에 편지를 썼고, 그의 책을 읽을 때면 번역이나 교정·교열의 실수를 기록해두었고, 그가 쓴 자서전적 작법 책 는 스무 번쯤 읽었다. 긴말하지 않겠다. 내가 여러분에게 그의 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끼고, 여러분이 읽었을지 안 읽었을지 모를 제목들을 나열하면서도 흥분하고 있다는 게 내가 그의 덕후라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아닌가.
왜 그렇게 그를 좋아하냐고? 단순하게 말해, 일단 재미있다. 스티븐 킹의 책이 재미없다는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으니 여기엔 덧붙일 말이 없을 것 같다. 그 이야기 솜씨에 반해 정신없이 읽고 나면, 글 속에 배어 있는 ‘사랑’이 나를 먹먹하게 한다. 의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자기 아버지에게 몰살당한 수위의 가족을 살리려 고군분투한다. 자신감 없는 학생의 배우적 재능을 발견해 독려한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사랑하게 된 여자를 위해 역사를 바꾸길 마다하지 않는다. 함께 있지 못할지라도. 최근작 를 보면, 처음부터 정체가 드러나는 범인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괴물이며 현실에서 연쇄살인범의 90%에 해당하는 특징을 모두 가진 전형적인 살인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그에 대해 가지게 되는 감정은 분노나 미움보다는 안타까움과 연민이다. 그의 가정 환경이 어쩌구 저쩌구… 그런 문제가 아니라, ‘왜 어떤 인간의 영혼은 이렇게도 어두울까’를 생각하게 되는. 그러다보면 우리 자신의 영혼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 상상할 때가 있다. 가난한 영어 보조교사 생활을 하다가 로 어마어마한 인세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스티븐 킹이, 아내를 위해 뭐라도 사주고 싶어 한밤중 약국에서 헤어드라이어를 사는 장면이 떠오른다. 쓰레기통에서 의 초고를 다시 주워 그에게 꼭 써야 한다고 독려했다던 아내가 헤어드라이어를 손에 든 채 초라한 집을 둘러보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그리고 스티븐 킹이 마약 때문에 피가 흐르는 코를 솜으로 틀어막고 를 쓰는 장면과, 글이 삶을 잡아먹는 형국이라며 집필실을 차지하고 있는 떡갈나무 책상을 도끼로 쪼갠 뒤 아이들이 피자를 먹는 방 안의 작은 책상에서 흐뭇하게 글을 쓰는 장면도. 스티븐 킹이 ‘걸어다니는 기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의 글은 지금도 처럼 항상 무시무시하면서도 장난기가 넘치고, 어떤 멜로드라마나 휴먼다큐보다도 따뜻하고 연민이 넘치니까. 나는 그런 그의 글을 통해 끔찍한 내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니, 만수무강하시길, 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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