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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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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공해로 얼룩진 밤에

어둠의 깊은 가치와 빛공해의 위협을 담은, 폴 보가드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등록 2014-11-22 15:14 수정 2020-05-03 04:27

당신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본 적이 있는가. 광고판과 네온사인 등 휘황찬란한 불빛이 가득한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그런 경험이 많지 않을 테다. 2001년 이탈리아인 피에란토니오 친차노와 파비오 팔키가 만든 인공 밤하늘 밝기에 관한 세계지도에 따르면, 지구인의 3분의 2는 진짜 어둠, 인공 불빛으로 훼손되지 않은 밤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한다. 인공적인 빛에 어둠이 점령당한 ‘빛공해’ 속에 살고 있으니까.

깊은 밤으로의 여행

‘지구상 가장 어두운 곳으로 떠나는 깊은 밤으로의 여행’이라는 부제를 단 (폴 보가드 지음, 노태복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는 어둠의 깊은 가치와 빛공해의 위협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야성을 이룬, 빛공해가 가장 심한 미국 라스베이거스 룩소르 카지노에서부터 ‘은하수가 지구로 마구 쏟아져내릴 만큼’ 어두운 데스밸리의 태곳적 밤하늘로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빈센트 반 고 흐는“나는 자주 밤이 낮보다 더욱 생기 있고 색채가 풍부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밤하 늘 그리고 어둠에 대한 찬가를 책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에서도 들을 수 있다.  한겨레

빈센트 반 고 흐는“나는 자주 밤이 낮보다 더욱 생기 있고 색채가 풍부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밤하 늘 그리고 어둠에 대한 찬가를 책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에서도 들을 수 있다. 한겨레

우리는 몇백 년 동안 낮에는 밝고 밤에는 어두운 환경에서 진화해왔다. 이런 리듬이 깨진 것은 고작 지난 100여 년 사이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현상이다. 야간근무자들은 늘 전깃불을 켜놓고 일하고 밤에 거리를 나서면 항상 가로등, 주차장 불빛, 손전등, 광고판 등에 노출된다. 집 안에서는 텔레비전, 컴퓨터 화면 등을 비롯해 눈을 감기 직전까지 불을 밝힌다. 그러면서 우리의 몸은 병들어가고 있다. 잘 시간에 밝은 불빛을 많이 쐰 사람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촉진된다. 야간근무와 야간조명이 인간에게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밝혀낸 학자들은 “야간근무자들은 암과 당뇨, 심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주간근무자보다 높다”라고 경고한다. 실제 지은이가 만난 야간근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피폐한 몸과 마음이 그것을 입증한다.

책은 의 찰스 디킨스, 의 버지니아 울프 등 문학가들의 밤의 예찬도 들려준다. 의 요아힘 슐뢰어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에 깃든’ 밤의 아름다움. 즐거운 마음으로 밤 산책을 나서면 이 유쾌한 어둠 속에서 차츰 맥박이 느려진다”고 말했다.

지은이는 빛공해로 얼룩진 정도가 더 낮은 그 길목에서 ‘국제 어두운 밤하늘 협회’를 설립한 천문학자, 여러 곳에서 활동하는 ‘빛공해 퇴치’ 운동가들을 만난다. 어둠을 지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점점 어두운 곳으로 향하면서 마음의 평온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가 얻은 깨달음은 “만약 당신이 밤을 잃는다면 평온한 수면과 생체리듬, 예술과 사유뿐만 아니라 끝내는 당신 자신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밤하늘 지키기’ 환경운동이 퍼져가고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빛공해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고 밤하늘을 지키자는 환경운동이 퍼져나가고 있다. 과도한 인공조명도 환경오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인공 불빛의 개수와 밝기는 해마다 늘고 환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지켜야 할 목록 중에 ‘밤하늘’도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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