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어떻게 씌어졌는지 안다. 정은주 기자는 12년차 기자 경력을 숨기고 경력 단절 여성들의 취업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외모를 바꾸지 않으면 게을러 보일 것”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40살의 여자는 자신이 통·번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나 ‘월 250만원에 정규직 취업’ 같은 목표 따윈 잊어야 한다. 실제 정기자는 5개월 동안 수백만원을 들여 살을 빼고 수십 장의 이력서를 썼지만 재취업에 실패했다.
내가 살길은 다시 태어나는 것?
그 뒤 인턴기자였던 3명의 ‘취업준비생’ 젊은이가 합류하면서 (전다은·김선일·나혜리·정은주 지음, 더퀘스트 펴냄)는 본격화됐다. ‘취업 전문가’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진단은 틀렸을지 몰라도 그들이 취업하긴 어렵다는 사실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경력 단절 여성만 어려운 게 아니다. 여자 취업준비생들은 최고의 스펙은 ‘남자’라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되고 이력서에 ‘불임’이나 ‘독신주의자’라고 써야 하나 고민한다. 보건관리학을 전공한 28살 전다은씨는 해외 연수는 못 갔지만 대신 프랑스어 자격증을 따고 자원봉사를 하며 스펙을 관리하려 했다. 그런데 그나마 스펙이 될 것 같은 유명 봉사활동은 면접에서 탈락했다. ‘아무래도 내가 살길은 다시 태어나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이르는 것도 자연스럽다.
사학과를 나온 강선일씨는 대학 시절부터 “인문대생들이 살길은 경영학을 복수 전공해서 은행에 가는 것뿐”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언론정보학과를 복수 전공한 강씨는 자판기에 음료수를 채우는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취업 스터디 모임이나 취업설명회, 박람회로 뛰어다닌다. 문제는 이런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취업 동지들은 인디언 인형처럼 하나둘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취준생들은 자기소개서를 ‘자소설’이라고 부르는데 기업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낯 뜨거운 소설을 쓰고 면접장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기업 인턴만 돌다가 나이 들어가면서 시민단체 활동가도 되기 어렵고 소개팅에서조차 잘려보고 나면.
세상이 자신을 거부하는 경험은 쌓이지만 ‘취업시장’만은 그렇지 않다. 우선 취준생들은 적성을 평가해주는 검사지 앞에 긴 줄을 선다. 요즘엔 지문으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준다는 곳이 인기다. 취업컨설팅 업체의 프로그램을 수강하면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만 28만원, 일대일 수업을 받으려면 180만원을 내야 한다. 서울 강남 성형외과 코디네이터들은 면접에 유리한 성형 수술을 권한다. 토익이나 연수,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강의료는 기본이다. 이래저래 취업철인 ‘9월 전쟁’을 겪고 나면 털린 기분이다. 가족이란 울타리 내에서 소비만 하는 인생에서 벗어나려고 마음먹은 순간 영혼도 주머니도 탈탈 털린다.
그래도 남은 바늘구멍 같은 가능성취업이 삶의 목표가 되었지만 아무도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희망이 있을까? 책은 외국계 기업 인사담당자, 캐나다의 고용서비스센터 매니저 등을 인터뷰하며 바늘구멍만큼의 가능성을 전한다. 어쨌거나 결론은 일하기 위해 이처럼 많은 고통과 눈물을 쏟아야 하는 사회는 안으로부터 말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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