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라는 이름은 단순한 개인의 호명이 아니다. 박정희 체제에 대한 향수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를 통해 왜 하필 박근혜라는 이름이 복귀했는지 이유를 따져보자는 (시대의창 펴냄)는 얼핏 뒤늦게 도착한 편지 같은 인상을 준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를 쓴 것이 2010년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때 바디우는 “사르코지는 두려워하고 보호받기를 원하는 사회의 이름”이라며 사르코지를 ‘쥐 인간’이라고 불렀다.
박근혜와 안철수, 87년 체제의 종착유신의 퍼스트레이디, 비정상 정치를 일상화하는 정치인, 정의의 후퇴. 과거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현재를 휘두르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집권 이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보수의 행태를 간수 삼아 단단하게 응고하고 있던 참이다. 그러나 책의 의도는 민주주의 시대에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이들 중에서 왜 ‘생각하지 않는 시민’이 40%나 되느냐며 박근혜 반대론자들이 가졌던 애초의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문제제기다.
한국 보수는 박정희 체제를 기원이라고 믿지만 정작 박정희는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파시스트였고 시장주의에 적대적이었다. 따라서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시장주의 시대의 박근혜 정부는 결코 박정희 체제의 계승일 수 없다. 책은 “박정희에 대한 향수라고 쉽게 단정되는 그 정서의 핵심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를 제대로 작동시켜달라는 요청”이라며 “민주적 자본주의를 신봉해왔던 한국의 권력 엘리트들이 결과적으로 봉착하게 된 것이 박근혜 정부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정부를 재구성하자는 1980년대 혁명적 자유주의 세대가 박근혜 정부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역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문제의식이 혼용돼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언명에 얽혀 있는 보수와 진보의 욕망을 확실하게 잘라 말한다는 점에서 책은 쉽게 읽힌다. 책에서는 자주 박근혜와 안철수가 1987년 체제의 종착을 지시하는 상징으로 거명된다. 두 이름은 정당정치가 쇠퇴하고 정치인 명망만을 신뢰의 기조로 삼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효용성이 없는 박정희를 확인시키는 것“모든 권력은 시장으로부터 나온다”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단순히 민주적 자본주의를 열망하는 세력으로부터 탄생한 정권의 딜레마만 드러내지는 않는다. 자기계발을 통해 시민되기의 신화를 실현하는 이명박 정권과 부르주아 정치의 원리를 구현하는 박근혜 대통령 탄생의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경제 발전을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설정하는 ‘민주적 자본주의’는 박정희 체제 이후에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합의된 목표였다. ‘민주적 자본주의’가 호출해낸 그 이름이 박근혜라면 박근혜가 딱히 자본주의보다 민주주의를 중시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는 유신시대 국가 주도형 경제정책과는 정확히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21세기 자본주의에서 효용성이 없는 박정희를 확인시키는 것,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역할일지 모른다. 책은 “이런 의미에서 정치를 억압하기 위해 출현한 박근혜 정부야말로 낡은 정치에서 새로운 정치로 나아가는 통로”라고 예측한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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