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호랑이를 만난다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호랑이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나무가 없다면? 그러면 별수 없지요. 호랑이에게 통째로 삼켜진다 한들 어쩌겠어요.”
중국 사상가 루쉰의 말을 듣는다. 해석자, 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철학자 고병권은 “(다른 번역이 존재하는데) 위와 같은 번역보다는 ‘나무가 없으면 방법이 없다. 잡아먹으라고 하는 수밖에. 하지만 호랑이를 한번 물어도 괜찮을 것이다’는 번역이 루쉰의 기질에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나아가서 “뭔가를 단번에 해결지으려는 태도야말로 어떤 나약함과 관련이 있다”며 “당신이 길을 걷다가 난관에 봉착했다면 한숨 자는 것도 괜찮다”고 격려한다.
배움에 대한 배움, 메타배움
“왜 우리가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 (메디치 펴냄)는 고병권이 교도소에서 철학 강의를 하다가 한 수인에게 받았던 질문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되돌려주는 책이다. 책에 대한 책을 메타북이라고 하듯이, 한결같이 배움을 생각하며 배움의 태도와 방법을 논하는 이 책은 ‘메타배움’이라고 할 만하다.
수유너머를 만들고 교도소에서 야학에서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말하고 가르치기를 해온 그는 길에서 만난 스승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질문에 답한다. 가령 노들야학에서 처음으로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는 학생은 자기 무능과 자기 포기의 정서를 넘어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배움’을 체험한 그의 스승이다. “문제는 식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열등하다고 믿는 자들을 일으켜세우고, 그들을 자신들이 빠져 있는 늪에서 빼내는 것이다. 무지의 늪이 아니라 자기 무시의 늪에서 말이다”라고 했던 프랑스 철학자 조제프 자코토의 말대로 배움의 본질을 실현한 사람이다. 네팔로 송환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한국으로의 귀화도 거부했던 미누는 “유대인은 아닌데 유대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사람”으로 살았던 사도 바울의 현시다. “국민을 보안관으로 활약하게 하는 ‘덕성 있는 공동체’”를 예찬하는 마이클 샌델 같은 반면교사도 있다. 책은 “철학자는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은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라고 이른다. 자신의 지옥 속에 새로운 천국을 세울 힘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배움이기도 하다.
때가 장차 오지만 지금도 그때“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공부를 하라”고 우리의 등짝을 내리치는, 길게는 수천 년 묵은 철학자와 종교인의 말들에는 현실의 긴장감이 서려 있다. 300명의 아이들이 죽는 비극적인 사건의 피해자며 가해자며 구경꾼이었던 우리는 “하지만 나는 이 혁명이 그것을 지켜본 모든 구경꾼의 마음에서, 욕망에서 이미 일어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라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칸트의 언급을 읽으며 자꾸 이를 앙다물게 된다. “정말 믿는 사람에게는 ‘때가 장차 오지만 지금도 그때’라는 말이 옳습니다”라는 함석헌의 목소리를 다시 들으며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호랑이에게 던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살아 있는 마음, 보잘것없지만 옳은 생각’ 하나는 무엇인가. 책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오르도록 하라!” 지은이는 책의 말미에 니체의 말을 던진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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