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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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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마저 불평등한 사람들

현장 취재와 자료 분석을 통해 건강과 소득 불평등의 관계를 밝힌
김기태의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등록 2012-06-21 10:22 수정 2020-05-03 04:26
서울 하월곡동 성가복지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호사와 자원봉사자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서울 하월곡동 성가복지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호사와 자원봉사자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우리는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구속당하고 고문당하며 실종되는 인권침해의 사례들에 대해서는 쉽게 분개한다. 하지만 건강 불평등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사회학자인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학 명예교수는 라는 책에서 건강 불평등의 위험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소득 격차가 벌어질수록,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협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소득 불평등이 심한 미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그 절반인 그리스보다 평균 기대수명이 낮고,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뒤 소득 불평등이 심해져 평균 기대수명이 급격히 준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건강과 소득 불평등의 연결고리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호스피스 병동서 한 달 자원봉사로 취재

는 그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앞서 2010년 12월 ‘죽음도 가난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이 모두 8차례 보도한 ‘생명 OTL’ 기획연재 기사를 갈무리해 실었다. 지은이인 김기태 기자는 건강과 소득 불평등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삶과 죽음이 숱하게 오고 가는 병원을 현장으로 선택했다. 가난한 환자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서울 하월곡동 성가복지병원의 호스피스 병동과 교통사고·추락 등 생사를 넘나드는 심각한 외상 환자가 실려오는 경기 수원의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중환자실, 그리고 노숙인 등 민간 병원이 외면하는 환자들이 오는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에서는 먼저 가난한 이들의 쓸쓸한 죽음을 적나라하고도 담담하게 보여준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한 달 동안 자원봉사자로 머문 지은이는 암투병하는 환자 5명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전북 김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담도암으로 숨을 거둔 70대 남성, 혈액암 판정을 받은 뒤 전 재산인 편의점 문까지 닫고 투병했지만 끝내 눈을 감은 50대 남성까지. 각자의 굴곡진 사연을 건조하게 풀어냈다.

건강 불평등을 향한 고민의 시선은 응급실로 이어진다. 중환자실과 응급실을 오고 가는 일주일의 목격담 안에는 가난한 이들이 더 많이 다치고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정이 담긴다. 지은이가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중환자실에서 만난 18명의 환자들은 모두 화려한 직업보다는 부동산중개인, 마트 판매직, 음식점 배달부 등 주변에 흔한 직업이 많았다. 그러나 부자 고객을 겨냥한 암센터를 세우는 데 집중해온 국내 병원의 부실한 응급진료 시스템은 거칠고 위험한 노동·주거 환경에 내몰린 ‘돈 안 되는’ 중증외상 환자를 거두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때문에 해마다 베트남전 한국군 전사자(4407명)의 2배가 넘는 중증외상 환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한국 사회,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죽어”

지은이는 병원이라는 현장에서 목격한 사실에 다양한 분석자료를 덧붙여 한국 응급의료 시스템의 문제와 산재·자살·질병 불평등의 문제까지 확장해 풀어간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는 모든 계층이 골고루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죽는 길로 걸어가고 있다”는 지은이의 결론이 좀더 무겁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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