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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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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객, 1%의 세상을 베다

탐욕에 눈먼 미국의 최상층 조롱하며 변화 위한 99%의 행동 촉구하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오! 당신들의 나라>
등록 2011-12-16 12:07 수정 2020-05-03 04:26

2007년 1월, 홈디포(주택수리 및 집 가꾸기 자재판매 유통회사)의 최고경영자(CEO) 로버트 나델리가 주가 하락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가 퇴직금으로 받은 돈은 2억1천만달러(약 2390억원). “실패한 CEO에게 거액의 퇴직금이 웬 말이냐”고 정색하고 따지지 말자. 그저 다음과 같이 말하자. “나델리가 실제로 어떤 형편인지 알고 있는가? 엄청난 부양비를 대야 하는 전처가 10명쯤 있을 수도 있고, 그 전처들이 하나같이 장애 등으로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을 수도 있다. 나델리는 희귀병에 걸려 날마다 고릴라의 생간을 다져서 섭취해야만 연명할 수 있는 처지인지도 모른다.”

특권층을 조롱하고 야유하다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할 일이 아니다. 툭하면 구조조정하면서 주가가 떨어져도 천문학적인 퇴직금을 챙기는 그분들의 탁월한 노후 대비 정신을 배울 일이다. 이런 일들을 통해 “거대 기업들이 ‘반자본주의’라는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몰래 전하는” 데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그나저나 직설적인 비판보다 더 매서운 풍자객의 말발을 보여주는 이 누구인가.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판매원으로 위장 취업해 열심히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미국 워킹푸어의 현실을 고발한 (Nickel and Dimed·2001)로 이름을 날린 바버라 에런라이크다. 국내에는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을 가리는 도구인 ‘긍정 사회’를 고발한 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촌철살인이 이번에는 탐욕에 눈먼 미국의 부유층을 정조준한다. (부키 펴냄, 1만3800원)는 약자를 짓밟고, 부를 독식하고,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무너뜨린 ‘1%’를 향해 날카로운 풍자와 유쾌한 야유를 던지는 책이다.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엮은 책 속에서 그녀는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진 자들을 대놓고 조롱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1980년대에 미국 기업들이 옷에서 철강에 이르기까지 제조업을 죄다 해외로 아웃소싱해 많은 도시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중략) 다음에는 CEO 자리를 아웃소싱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도 누군가 생각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중국인이나 인도인들은 미국 CEO 연봉의 10분의 1 이하만 받고도 완벽하게 업무를 수행할 것이다.”

책이 날선 조롱과 야유만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다. 책엔 더 가지려고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빼앗는 부자들을 향한 분노가 또렷하다. “부자들은 한 손으로는 H. 리 스콧처럼 임금을 죄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대출로 가난한 사람들을 유혹했다. 손쉬운 대출이 저임금의 대체물이 되었다. 예전엔 돈을 벌려고 일했는데 지금은 돈을 ‘갚기’ 위해 일한다.” 1%의 부자들을 향한 그의 분노는 다수가 불안과 절망에 휩싸인 현실과 연관돼 있다. 즉, “상류층이 사치를 부리는 데 사용되는 돈은 어딘가에서, 더 정확히는 ‘누군가로부터’ 나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년 동안 자본주의적 혁신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여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쥐어짜는 기술이었다”. 결국 “지금까지의 사태를 통해 볼 때 기업에 적용되는 ‘자유’라는 단어는 다른 누군가의 고통과 동의어”다.

풍자가 지니는 통찰력 곳곳에

모든 풍자가 그러하듯 이 책 곳곳엔 번뜩이는 통찰력이 내장돼 있다. 특히 ‘가난하게 살려면 돈이 든다’는 대목에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다. “가난과 단순한 삶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략) 가난하게 사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중략) 식비에서 자동차보험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면에 걸쳐 저소득 도시 거주자가 부유층에 비해 생활비가 더 많이 든다.” 왜 그럴까? 계좌가 없는 사람들은 임금으로 받은 500달러 수표를 현금으로 환전할 때 5~50달러의 비용이 든다. 차량 구입시 3만달러 미만 소득자는 차량 대출금 이자가 더 비싸다. 저소득 운전자는 보험료가 높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택 대출금 이자도 평균 1%포인트 더 내야 한다. 예는 수두룩하다. 그녀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부자라면 줄곧 부자로 있는 게 낫다.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그쪽이 훨씬 돈이 덜 드니까.”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웃으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상황에 분노하게 될 것”이라는 독자의 말처럼, 웃기고 자빠진 세상에 대한 통쾌한 조소는 읽는 재미와 더불어 공분을 낳는다. 애완견 항암치료는 시켜도 의료보장 확대엔 반대하는 그분들을 향해 “동물 보험을 아이들에게 개방하라”고 외치는 동시에, 돈 없는 어른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교도소를 추천할 때, 불법체류자들 때문에 실업이 는다며 집에서 불법체류자를 부려먹는 평등한 그들의 실체를 고발할 때, 글로벌 기업 웬디스를 협박했다는 혐의로 10년형을 받은 파트타임 노동자의 사연을 소개할 때, 도리 없이 가슴 한켠이 서늘하다.

책의 원제는 <this land is their>. 대공황기 이후 피폐해진 민중의 삶을 노래한 포크 가수이자 사회활동가 우디 거스리가 만든 포크송 에서 따왔다. 이 땅은 1%만의 땅이라는 뜻일 터. 책을 읽으며 울다 웃다 문득 깨닫는다. 바로 지금이 세상을 바꾸는 행동에 나설 때라는 사실을. 더 늦기 전에.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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