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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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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대화

등록 2007-12-07 00:00 수정 2020-05-03 04:25

▣ 그림·글 최규석

부모님 댁에 갈 때면, 마실을 오시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엿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최근에 아들을 결혼시킨 아주머니는 아들 부부의 신혼방 문에 걸린 신랑신부 인형에 대한 설움을 호소하신다.

“방문에다가 그거를 떡하니 걸어놓은 기 무신 소리겠노? 요기는 우리만 있는 덴께네 내보고 문도 열지 말란 소리 아니겠나? 그거를 딱 본께 가심이 탁 맥히고 살이 다 떨리더라꼬.”

해석의 황당함에도 놀랐지만 숨이 막히고 살이 떨린다는 표현은 좀 오버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함께 있던 아주머니들은 “하모, 하모”를 연발하며 깊은 공감을 표하신다.

윗길 어느 집 아들이 선을 봤는데, 인물 좋고 학벌 번듯하고 직장 든든한데도 선본 처녀 집안에서 퇴짜를 놨단다.

“총각이 운전면허증이 없다 카더라꼬.”

“하모. 남자가 운전면허증 없으모 오데 문제가 있는 기라. 요새 면허 없는 아가 있는가?”

말하기 뭣한 사연이 있어서 핑계를 댄 것이려니 하다가도 다들 면허 없는 걸 심각한 문제라 하니 나도 그런가 하게 된다.
(10년을 버티던 나도 결국 서른 살에 면허를 딸 수밖에 없었다. 장가가려고 딴 건 아니고…)

다들 교인인지라 대화 소재가 소진되면 자연스럽게 성령체험담 발표회가 된다.

“전에 본께 우리 동네는 비가 안 오는데 바로 길 옆에는 비가 오더라꼬. 그거를 보고 아! 하나님이 ‘실재하심’을 나에게 비로소 ‘증명’하시는구나 하고 ‘감명’을 받았다”라는 정도의 체험담인데 다들 경쟁이 붙어서 본인들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법한 일까지 신의 존재와 사랑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승격시키신다. 이러한 종교적 대화로 성령이 충만해지신 아주머니(나를 내심 사윗감으로 점찍어두셨던) 한 분이 아련한 눈빛으로 내게 물으신다.

“우리 할배는 예수님을 봤으까?”

“예에!? 예수님은 훨씬 옛날 분입니더”. (더욱이 한국 사람도 아니고!!)

“그라마 우리 증조 할배는 봤겄제? 내도 한 번만 봤으모 올매나 좋겄노….”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살던 분입니더.”

“2천 년? 2천 년 전에도 세상이 있었다꼬?”

“…ㅠㅠ…”

시대를 헷갈리게 만드는 아주머니들의 투박하면서도 귀여운 대화에 취해 즐거워하다가도 한편으로는 하루빨리 근대화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빌게 된다.
10년 동안 운전면허증 때문에 고통받은 나는 빼더라도 최근에 결혼한 그 형님은 얼마나 괴롭겠냐고.

최규석의 일러스트 에세이는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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