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엔 막걸리 프랜차이즈 즐비하고, 신상품도 쏟아지니 막걸리가 대세로구나
▣ 허시명 여행작가·술품평가 twojobs@empal.com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 막걸리가 되살아나고 있다. 논두렁에서조차 맥주와 커피에 밀려 길을 잃었던 막걸리가 도심에 출현했다. 얼음막걸리, 생막걸리, 막걸리칵테일, 퓨전대포집 해서 이름도 갖가지고, 막걸리 세 글자로 간판을 뒤발한 주점도 보인다. 2006년에 인기를 끈 창업 사업으로 요리주점이 꼽혔는데, 그 인기몰이를 주도한 게 막걸리였다. ‘탁사발’ ‘뚝탁’ ‘청송얼음골막걸리’ 같은 프랜차이즈 막걸리 체인점도 생겨 몸집을 불리고, 체인점으로 창업한 막걸리 주점도 1천 곳을 넘어섰다.
약주업계의 선두주자인 국순당은 우리 쌀 100%로 빚은 쌀막걸리를 새로 출시하고, 국순당을 뒤쫓는 배상면주가에서는 대포막걸리를 내놓았다. 이미 이름을 얻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서울의 장수막걸리와 포천 출신의 막걸리들을 추격하기 위해서 지방의 막걸리 업체들이 상경해 서울 시장을 흔들고 있다. 추락한 막걸리가 어떻게 생기를 얻게 됐을까? 입맛에도 복고풍이 분 것일까? 막걸리가 전격적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일까?
술 소비의 70% 장악하다 맥주가 역전해
사실 옛날을 생각하면, 이런 물음은 막걸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민의 술로서 막걸리는 1970~8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1974년에 막걸리는 168만㎘로 생산 이래 최고의 출고량을 기록했다. 당시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한창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농촌에서도 산업현장에서도, 고단한 노동에 지친 이들을 달래주던 술이 막걸리였다. 그때 막걸리는 전체 술 소비량의 70%를 차지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부터 완만하게 막걸리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해, 출고량이 1982년에 130만㎘에서 1983년에 85만㎘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1988년에 85만3천㎘로 맥주 출고량 85만1천㎘에 쫓기더니, 1989년부터는 4년 연속 맥주와 간격이 25만㎘씩 벌어지면서 맥주에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양주 시장이 개방된 1991년에는 막걸리의 출고량이 44만㎘가 되고, 맥주는 158만㎘가 되었다.
1991년에 막걸리 주세율은 10%에서 5%로 하향 조정됐지만, 출고량은 더욱 줄어 1998년에 18만㎘를 기록했다. 전성기에 견줘 10분의 1로 줄어들고, 주류 출고량도 전체 술의 70%에서 5%대로 추락했다. 30년도 못돼서 정확하게 막걸리와 맥주가 완전히 자리바꿈을 해, 맥주가 60%를 차지하게 되었다.
막걸리가 주도권을 상실한 것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동하면서, 맛의 기호도가 막걸리에서 맥주로 옮겨앉게 된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이는 사무직 노동자의 증가, 여성 음주량의 증가, 도시 집중화 등의 사회 현상이 촉진시킨 것이다. 둘째는, 막걸리 양조자들이 지역 독점 판매로 새로운 술 개발에 게을리했다. 셋째는 1960년대와 70년대의 경제개발시대를 거치면서 막걸리 재료가 쌀에서 수입 밀가루로 대체되면서 술이 우리 농산물과 상관없는 상품이 되어버린 점이다.
결국 막걸리는 추락할 데가 없을 만큼 추락해버렸다. 자조 섞인 말로 바닥을 쳤으니 이제 남은 것은 상승할 것밖에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던 막걸리가 살아나고 있다니, 신통한 일이다. 이는 막걸리 생산 지표로도 확인된다. 2004년에는 14만1천㎘ 생산량이 2005년에는 16만2천㎘가 되고, 2006년에는 16만9천㎘로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승 기운은 술품평가인 내게도 감지된다. 2007년 올해만 해도 두 차례에 걸쳐 막걸리 품평회에 참석했다.
전주 삼천동에 가서 1만원만 내면…
4월28일부터 29일까지 일산 문화광장에서 열린 제5회 대한민국 막걸리 축제의 품평회 최종심에서 막걸리 25종을 맛보았다. 이 심사에서 전북 완주의 천둥소리막걸리가 대상, 전주의 비사벌막걸리가 금상, 경기도 화성의 배혜정누룩도가의 부자생술이 은상을 받았다. 국세청 주최로 9월11일에 있었던 제1회 대한민국 주류품평회에서도 최종심에 오른 20종의 막걸리를 맛보았는데, 전남 순천의 나누우리막걸리가 금상, 경북 청도의 생참맛막걸리가 은상, 전북 남원의 춘양골생막걸리와 충북 음성의 보천막걸리가 동상을 차지했다.
두 대회에 출품된 막걸리를 맛보면서 느낀 소감은, “우리 막걸리 맛이 여간 아닌데, 제법 정교해졌는데!”였다. 입에 착 감기는 술이 있는가 하면, 달지도 시지도 않으면서 깊은 맛을 낸 술이 있고, 무겁지 않으면서 입 안에 가득 차는 술도 있었다. 막걸리 명예를 회복할 만한 술들이 많아졌다는 판단이 들어서 기쁘기까지 했다.
지금의 막걸리 바람을 주도하고, 그 바람의 징후를 가장 앞서 보여준 곳으로 전주 삼천동 막걸리 골목을 꼽을 수 있다. 전주 삼천동 우체국 골목에는 막걸리 간판을 건 집만 50여 곳이 된다. 전국에서 막걸릿집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안주나 분위기가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대체적인 취향은 비슷하다. 막걸리는 노란 주전자에 담겨 나온다. 손길을 많이 탄 주전자는 탈색이 되고 찌그러져 있기도 하다. 주전자 안에는 페트병 막걸리 세 통, 2ℓ 정도가 담겨 있다. 안주는 밑반찬에서 데친 낙지에 계란말이까지 15가지쯤 나온다. 이렇게 해서 술값은 1만원이다. 너무 싸다. 1만원짜리 술 한 주전자를 더 시키면, 안주가 뒤따라 더 나온다. 이렇게 장사해서 남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막걸릿집 주인아주머니는 이렇게 해야 단골이 생기고 장사가 된다고 말한다. 서민들을 위해 서민들이 운영하는 막걸릿집이다. 술뿐만 아니라, 인정도 맛볼 수 있어서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거쳐가는 여행지가 되었다.
전주에서 힘을 얻은 막걸리 바람은 서울로 올라와 세련되게 변모했다. 탁사발은 프랜차이즈 체인점이 200개를 넘어섰다. 노란 주전자를 전등갓으로 사용하고, 1970년대 복고풍의 포스터와 인테리어 소품을 사용하고, 양은 도시락에 밥과 안주를 내놓아서 40~50대 손님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체인점 뚝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3년 동안의 시험과 검증을 거쳐 무농약 친환경 경기미를 이용한 참살이 탁주를 들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참살이 탁주를 만드는 이는 남한산성소주로 경기도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강석필씨다. 주점에서 파는 참살이 탁주 한 통 값은 6천원으로 다른 막걸리의 2배다. 막걸리의 차별화와 고급화를 추구하고 나선 셈이다.
“우리가 겨냥하는 고객은 25~35살”
막걸리 체인점 뚝탁을 연 윤진원 소장에게 “왜 막걸리 체인점을 열었습니까?” 물어보았더니, “막걸리에는 우리 역사와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 그 막걸리를 유통시장에 그냥 맡겨둘 수 없어서,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우리 쌀 막걸리를 개발해 직접 고객을 찾아나섰습니다”라고 했다. 그가 겨냥하는 고객은 향수에 젖은 40~50대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겨냥하는 고객은 25~35살의 젊은 층입니다. 이 세대는 해외 배낭여행도 많이 다녀와서 개방적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술을 즐길 만큼 개성적입니다. 200종이 넘는 수입 맥주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술을 찾아내고, 와인도 자기 취향의 와인을 찾아내는 이들입니다. 저희는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한 막걸리를 만들어서 시장에 들어온 거지요.”
길가는 사람들에게 전통술이 뭐냐고 물으면, 흔히들 막걸리와 동동주를 먼저 꼽는다. 주종(酒種)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있는 양조장은 막걸리 양조장이다. 예전에는 면 단위마다 하나씩 있어 2천 개가 넘었다. 2003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막걸리 양조장 888개가 있다. 맥주회사 2개, 소주회사 10개에 견주면 엄청난 규모다. 우리 술이 뭐냐고 물을 때 사람들이 막걸리라고 말하는 것은, 지역에 고루 분포된 소규모 막걸리 양조장의 위상도 작용했을 것이다.
근현대사를 보면, 술은 정치적인 흥정거리였다. 막걸리는 그 흥정 대상이 되어 제대로 된 길을 걷지 못했다. 막걸리는 1965년에 곡물을 써서 빚지 못하게 하면서, 미국산 수입밀로 만든 밀막걸리 시대가 열렸다. 쌀막걸리를 다시 만들 수 있게 된 게 1990년 일이다. 막걸리의 판매구역 제한으로 한참 동안 양조장들이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지만, 그게 족쇄가 되어 발전과 변신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막걸리 판매구역이 풀린 것은 2001년의 일이고, 포천 막걸리가 전국 시장을 공략한 것은 그 뒤의 일이다. 막걸리에 과일 원액을 20%까지 넣을 수 있게 된 것은 2004년 일이다. 살균막걸리, 생막걸리, 포도막걸리, 검은콩막걸리, 약재막걸리 등등 그 재료가 다양해졌다. 우리 쌀로 된 술들이 나오고, 쌀 재배 지역까지 밝히는 술도 나오게 되었다. 도수도 6도만 고집하지 않고, 배혜정누룩도가에서는 16도, 13도, 10도 부자 막걸리를 내고, 소주를 빚는 화요에서는 15도 막걸리 낙낙을 내놓았다. 전라도 태인 양조장의 송명섭씨는 직접 찹쌀 농사를 지어 찹쌀막걸리를 내고 있다. 사용하는 누룩도 전통누룩, 쌀누룩, 밀가루누룩, 개량누룩 등 다양하다. 텁텁하고 묵직하던 막걸리의 맛도, 경쾌하고 부드러워졌고 달보드래해졌다. 청량감을 위해 탄산가스가 올라오던 막걸리 일색에서, 이제는 완전 발효시켜 탄산가스가 올라오지 않은 막걸리도 나오고 있다. 수준급 막걸리를 만들어 외국 시장을 겨냥하는 회사들도 생겼다. 편안하고 맛있게 취할 수 있는 막걸리들이 많이 생긴 셈이다.
쌀 한 가마니면 술 여섯 가마니 반
막걸리의 최대 경쟁력은 주세가 5%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소주가 교육세와 부가세를 합해 100%가 넘는 주세를 내는 것에 견주면 파격적인 대우다. 막걸리는 재료의 6.5배 정도의 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쌀 한 가마니를 재료로 하면 여섯 가마니 반 분량의 술을 만들어낸다는 소리다. 그만큼 농산물의 가공 상품으로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막걸리 트렌드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곡물의 깊은 맛을 담아낸 막걸리, 소주보다 더 독하게 느껴지는 막걸리, 과일 맛이 나는 막걸리, 기능성 막걸리, 유기농 쌀막걸리, 바야흐로 막걸리의 패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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