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중형차 살 돈으로 수입 소형차 살까, 소비자의 복잡한 열망 눈치챈 수입차 브랜드들
▣ 노진수 기자
수입차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의 오너는 크게 수입차 오너와 수입차를 타고 싶어하는 국산차 오너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수입차 열풍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05년 국내에서 판매된 자동차의 약 3%가 수입차였고, 지난해는 4%를 차지했다. 올해 역시 5% 고지에 무난히 오를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매년 1%포인트씩 성장하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수입차 판매가 시작된 게 지난 1987년임을 감안하면 시장점유율 3%에 이르기까지 18년 정도 걸린 데 반해 4%와 5%는 1년 단위로 올라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수입차 시장점유율이 요 근래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성장세를 유지한다면 1년에 2%포인트 성장도 머지않을 것으로 보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좀더 급격한 성장도 점칠 수 있다. 참고로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를 갖고 있는 일본도 현재 수입차 점유율이 15% 정도다.
스포츠카? 저건 ‘쿠페’랑 ‘로드스터’잖아!
외제차 시장의 변화를 바라보면 ‘세대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자동차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했던 소박한 국민들은 이미 50~60대로 접어들었다. 지금 자동차를 사는 20~30대에게 자동차는 그저 있기만 해도 감사한 집안의 자랑거리가 아니다. 남다른 자신의 개성을 자동차에 담아낼 수 있고, 누가 뭐래도 자기 마음에 드는 자동차를 고르는 세대다. 조금이라도 날렵하게 생기면 무턱대고 스포츠카라고 부르던 세대는 지나가고, 쿠페(Coupe)와 로드스터(Roadster)를 구분지을 줄 아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것은 물론 포르셰나 메르세데스 벤츠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드림카로 꼽곤 한다.
수입차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서 몇 년 새 수입차 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2천만~3천만원대 엔트리급 수입차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2천만~3천만원이라는 차값의 의미는 조금 좋은 국산차를 살 돈으로 수입차를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도 나이 지긋한 세대라면 ‘같은 돈으로 수입 소형차를 사느니 국산 중형차를 사겠다’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비슷해 보이고 흔한 국산 중형차보다는 개성 있는 수입 소형차를 사겠다고 거침없이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의 젊은 세대다.
이런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한 수입차 메이커들도 다양한 금융 프로그램으로 좀더 부담 없이 차를 살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아우디코리아가 두 개 모델의 차량에 대해 5%에 해당하는 등록세를 지원하거나, 차량 값의 30%만 선납금으로 낸 뒤 36개월 동안 매월 일정 금액을 내면 되는 저금리 리스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특별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리스 뒤 유예금을 내면 자기 차가 된다. 볼보자동차코리아도 차량 가격의 35%를 선납하는 특별 유예 금융 리스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당장 목돈 마련은 어렵고 수입차는 타고 싶어하는 이들을 유혹한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엔트리급 수입차 메이커와는 따로 놀던 지체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들 역시 좀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차 가격 내리기에 뛰어들고 있다. 한 예로 최근 선보인 신형 BMW 5시리즈는 구형보다 가격을 1천만~2천만원가량 낮췄고, 이에 자극받은 메르세데스 벤츠와 아우디, 렉서스 등도 차값 인하를 조만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식 수입 안 된 모델, 중고시장으로
이처럼 수입차 시장이 활기를 띠자 중고 수입차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고 수입차 시장은 국내 수입차 오너들이 내놓는 소수의 매물 위주로 돌아갔다. 이제는 바다 너머에서 매물을 들여오는 수입 중고차 전문 딜러가 생기면서 다양한 차종을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확보하게 됐다. ‘중고차’의 이름을 단 대신 더 다양한 차종을 만날 수 있다니 수입차 구매 의사가 있다면 한 번쯤 둘러보게 되는 셈이다.
그동안 더 싼 값에 수입차를 구하려는 수요 때문에 중고 수입차 시장이 과열돼 폐차 수준의 수입차를 헐값에 들여와 겉만 번드르르하게 고친 뒤 새 차인 양 속여 파는 악덕 수입상들도 기승을 부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나름의 자정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정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내 수입차 업체들이 들여오지 않거나,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는 메이커라 국내에서 희소성이 있는 차들이 중고차 시장을 통해 들어오기도 한다. 미국 등지에서 직수입해오는 이런 차량은 소수의 마니아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주행거리가 극히 짧은 새것 같은 중고차만을 엄선해 판매하는 모습도 최근 수입중고차 시장의 변화를 말해준다.
오, 이런! 국산차의 ‘초라한 차림표’
그렇다면 이런 ‘수입차 인기’ 무드 앞에 조금은 뻘쭘한 국산 차, 원인은 무엇일까? 차를 사려는 사람들이 수입차로 자꾸만 시선을 빼앗기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치우친 국산차 메이커들의 초라한 ‘차림표’를 지적할 수 있다. ‘흰쌀밥에 김치’만으로도 만족했던 지난 세대와는 달리 좀더 다양한 밥상을 원하는 눈 높은 소비자들의 입맛을 국산차 메이커들이 더 이상 충족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대표 메이커 도요타는 가지치기 모델을 빼고도 현재 48종의 승용차를 현지에 선보이고 있다. 이는 현대, 기아, GM대우, 르노삼성, 쌍용 등 다섯 개 국산차 메이커에서 판매 중인 모델을 모두 합한 46종보다도 많은 수다. 나아가 도요타와 함께 닛산과 혼다, 마쓰다, 미쓰비시를 모두 더하면 그 격차는 120여 종으로 크게 벌어진다. 우리보다 120여 종이나 더 많은 차를 선택할 수 있다 보니 일본인들은 비슷한 값으로 살 수 있는 수입차가 널려 있음에도 여전히 국산차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10년 전쯤부터 눈에 띄게 발전해나가던 국산차 품질이 근래 들어 정체돼 있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듯한 분위기도 이같은 수입차 선호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자동차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기계부품의 성능과 내구성을 높이기보다 화려한 편의장비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수법에 익숙해진 결과다. 지난 1990년대 뒤떨어진 품질의 자동차를 양산했던 영국차 메이커들의 몰락을 바라보며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기엔 이미 너무 늦은 걸까. 10여 년이 흐른 지금 국내 메이커 역시 그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아울러 국내 시장에서의 비싼 차값도 문제다. ‘바퀴 넷 달린 최소한의 탈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경차’조차 거의 1천만원을 줘야 한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는 품질 좋은 600만~800만원짜리 소형차가 널려 있다. 차를 사려는 사람들의 다양한 동기와 욕구에 맞춰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물론 수입차 메이커들 역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최근 그나마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지나치게 비싼 차값은 ‘비싸야 잘 팔린다’는 왜곡된 국내 수입차 시장구조를 대변하고 있다. 물론 혼다와 푸조, 폭스바겐 등 수입 대중차 브랜드들이 관세와 운송비 등을 빼면 현지 판매가와 큰 차이가 없는 값으로 엔트리급 모델들을 선보이면서 전반적인 수입차 문턱이 많이 낮아진 건 사실이지만, 수입차 시장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더 높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거품 빼기’도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수입차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애프터서비스망 부족과 수리비 폭리 의혹 역시 수입차에 대한 불신을 높이고 있다. 몇몇 수입차 업체들의 이같은 소인배적 경영 마인드로는 결코 급성장하는 국내 수입차 시장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아니라 더 장기적인 시각으로 수입차가 아닌 국산차와 경쟁해나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2007년 수입차 바라보는 복잡한 열망
수입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열망은 어떤 ‘이미지’를 향한 열망일 수도 있다. 하지면 수입차 시장은 그 욕망과의 접점을 조금씩 구체화하며 소비자에게 다가서고 있다. 시장은 커지고 물건은 쏟아져 단순히 소망 수준에 머물렀던 수입차 구매가 현실화되고 있는 건 아닐까. 2007년 수입차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속에는 그런 복잡한 사정들이 섞여 있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욱 수입차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바짝바짝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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