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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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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을 위해 보는가

등록 2007-03-03 00:00 수정 2020-05-03 04:24

▣ 손영숙 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 교수

우리의 일상에서 시각 경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다. 오죽하면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이처럼 중요한 ‘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우리의 신체 기관은 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눈이 멀었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눈과 더불어 뇌가 있기 때문이다. 눈이 하는 일은 바깥 세상의 이미지를 카메라처럼 찍는 것뿐이고 그 이미지를 뇌로 보내서 해석하는 과정이 진행되지 않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신경외과 의사이면서 자신이 만난 뇌 질환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유명해진 올리버 색스 박사의 저서 가운데 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의 첫 번째 글에 등장하는 사람은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뇌에서 시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영역에 부분적인 손상을 입은 까닭에 자신의 아내와 모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당혹스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 눈 자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므로 사물의 부분적인 특성, 예컨대 뾰족하다거나 둥글다거나 길쭉하다거나 노란색이라거나 하는 것들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전체적으로 사람의 얼굴인지 아니면 모자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사물을 보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사물을 잡거나 들어올리는 등의 행동을 해야 할 때에는 그 사물에 매우 적절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연필과 사과를 눈앞에 두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연필을 쥐거나 사과를 잡을 때의 손놀림은 매우 자연스럽고 능숙하다.

이와는 반대로 뇌의 시각 영역 중에서 또 다른 부분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눈앞의 사물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연필 혹은 사과라고 정확히 말하면서 막상 그 물건들을 손으로 잡아보라고 하면 그 물체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 예컨대, 엄지와 검지를 모아서 사과를 잡으려 한다든지, 손바닥을 펼친 상태로 연필을 잡으려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이들의 행동을 보면 이들이 눈앞의 사물이 무엇인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한데 막상 물어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두 종류의 시각 장애는 우리 뇌의 시각 영역에서 형태와 색깔을 해석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기능과 그 사물이 놓인 위치와 움직임을 분석해서 그것에 대해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 분리돼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때에는 그 두 기능이 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우리 의식 속에서는 보는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과 그 대상에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과정이 분리돼 있지 않다. 그 둘이 분리돼 표출되는 것은 뇌의 정상적인 작동 기제가 깨졌을 때뿐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대상에 대한 인식과 그 대상에 대한 행동이 분리되는 현상이 뇌 손상 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알면서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전혀 몰랐음에도 제대로 행하는 경우도 있다. 눈앞의 사물에 대해 적절한 행동을 할 수는 있으나 그 사물에 대한 인식 혹은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 비극과, 눈앞의 사물에 대한 인식은 있으되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비극 중에 더 큰 비극은 어느 쪽일까. 인식과 행동의 괴리를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시각은 그저 보기만 하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닌 모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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