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영숙 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 교수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를 보면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단호하게 외치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인간의 뇌에서는 껍데기가 가장 중요하다. 절대로 껍데기를 가라 할 수 없다. 껍데기가 가면 곧 알맹이가 가는 것이다.
돼지고기로 치자면 2근 남짓의 무게인 인간의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뭉쳐 있는 덩어리다. 물론 그 덩어리 안에는 혈관도 있고 신경세포가 아닌 다른 세포들도 섞여 있지만 주인공은 역시 신경세포다. 이 신경세포 덩어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우리가 피질이라고 부르는, 덩어리의 표면 부위, 즉 껍데기다. (뇌의 껍데기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분들은 식당에서 드셔본 돼지 껍데기를 상상하시면 되겠다.)

뇌 껍데기는 뇌를 구성하는 커다란 세 덩어리의 구조 중에서 진화적으로 가장 늦게, 다시 말해 가장 최근에 생겨난 부분이다. 껍데기보다 앞서 생겨난 부분이 뇌의 속 알맹이 부분이고 그보다도 더 앞서, 가장 먼저 생겨난 부분이 속 알맹이를 받치고 있는 뇌 기둥(뇌간)이다. 뇌간에는 기본적인 생명유지 장치가 모여 있고 뇌의 속 알맹이에는 감정중추가 들어 있다. 그리고 뇌의 속 알맹이를 감싸듯 뒤덮고 있는 뇌 껍데기, 피질에는 언어나 사고 같은 고등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구역들이 자리하고 있다. 피질은 속 알맹이 부분과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해석해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리며 이를 집행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의식이라는 매우 복잡한 정신상태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도 피질 덕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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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사다리에서 위쪽에 있는 고등한 동물일수록 피질의 면적이 넓어서 예컨대 조류는 피질 면적이 정말 작고 포유류는 넓은데 영장류, 그중에서도 사람의 피질이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사진으로 종종 나오는 뇌 피질 표면에 주글주글 주름이 진 것도 기실은 신문지 한 면 넓이의 뇌 껍데기를 두개골 뼈로 한정된 공간 속에 집어넣으려다 보니 구겨 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어서 그리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가끔 머리 나쁜 것을 비하해 표현할 때 사용하는 새 대가리라는 말이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국어사전에서 알맹이의 뜻을 찾아보면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껍데기의 뜻을 찾아보면 알맹이를 뺀 나머지라는 풀이가 나온다. 알맹이나 껍데기의 정의가 그것이 놓인 자리만이 아니라 그것의 역할이나 기능도 고려한 것이라면 신동엽 시인의 외침대로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할 때, 뇌의 알맹이는 그것이 알맹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남아야 할 것이고, 뇌의 껍데기는 비록 껍데기 자리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알맹이라서 남아야 할 것이니, 우리 뇌는 이래저래 버릴 데가 하나도 없다. 살코기는 물론이요 껍데기에 힘줄까지 구워먹는 돼지고기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뇌 껍데기가 돼지 껍데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돼지 껍데기는 살코기와 분리시켜도 하나의 메뉴가 되지만 뇌 껍데기는 그것이 아무리 중요해도 속 알맹이와 분리되어서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하긴 어떤 식당에서는 돼지 껍데기가 단독 메뉴라 해도 그것만 주문하는 것은 허용이 안 되고 반드시 삼겹살 같은 살코기와 함께 주문해야만 이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니 이 또한 뇌 껍데기와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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