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영숙 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 교수
생물학적으로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출산을 할 수 있으면 여자, 할 수 없으면 남자이다. 수유를 할 수 있으면 여자, 할 수 없으면 남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고추가 있으면 남자, 없으면 여자라고 말한다.(고추의 상징성은 옛날 할머니들이 손자의 남성성을 고양시키기 위해 종종 사용했던 “고추 떨어진다”는 위협적인 표현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여자만이 할 수 있거나 갖고 있는 온갖 것을 두고 굳이 여자에게 없는 것을 들어 차이를 말하는 것을 보더라도 우리의 사고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길들여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성경에서조차도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내서 만들어낸 파생형일 뿐이다. 하지만 태아의 성 분화 과정을 살펴보면 자연이 만든 기본형은 여성이고 여기에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 옵션이 추가될 때 남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옵션 추가가 없으면 기본형인 여성이 탄생한다.
수정된 직후의 태아는 남녀 구분 없이 동일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되지 않을 경우 여성으로 발달한다. 우리의 신체 중에는 성 호르몬의 신호를 받으면 미리 정해둔 방식대로 발달하도록 약속된 세포들이 있기 때문에 성 호르몬이 분비되면 신체 구조가 변화하며, 그 대표적인 예가 생식기 구조의 성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성 호르몬은 뇌 구조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성인의 뇌를 보면 영역별 신경세포의 개수라든가 크기, 연결 패턴, 밀도 등에서 다양한 성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면, 성 행동과 관련이 있는 특정 뇌 영역은 평균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크다. 반면에 언어 기능과 관련이 있는 몇몇 뇌 영역은 평균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크다. 또 같은 일을 수행할 때 남자들의 뇌는 제한된 부분에서만 활동이 일어나는 데 비해 여자들의 뇌는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부분에서 활동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여자의 뇌와 남자의 뇌는 구성 방식뿐 아니라 일을 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마치 우리가 문서 작성을 위해 한글을 사용할 수도 있고 MS워드를 사용할 수도 있는 것처럼 그 여자의 뇌와 그 남자의 뇌는 다른 길을 통해서도 종종 같은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런데 성 호르몬에 의해 만들어지는 뇌 구조의 성 차이를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역설이 발견된다. 남자의 뇌를 만드는 데 남성 호르몬이 필요하긴 하지만 실제로 뇌 구조를 남성화하는 것은 남성 호르몬이 아니라 여성 호르몬이다. 그렇다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왜 필요할까? 그 답은 호르몬 물질을 순환시키는 혈관의 벽을 통과해 뇌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물질이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데 있다. 뇌를 남성화하려면 여성 호르몬이 특정 뇌 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여성 호르몬은 혈관 벽을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선택된 옵션이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인 것이다. 뇌 안으로 들어간 테스토스테론은 효소의 작용에 의해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로 전환돼서 남자의 뇌를 만든다.
여성 호르몬에 의해 남성화되는 뇌 구조, 그렇지만 남성 호르몬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다시 말해 여성 호르몬의 형태로는 혈관 벽을 통과해서 뇌 구조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이 흥미로운 역설을 통해 이 땅의 여성성과 남성성이 대립해서는 안 되는 이유 한 가지를 더 보태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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