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색 크레파스 먹는 기분”이라면서도 카카오 함량 높은 초콜릿에 열광하는 사람들…완전식품·다이어트식품으로 인기 높지만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이므로 섭취량 조절해야
▣ 글·이화정 자유기고가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달콤한 초콜릿’은 옛말이다. 쓴맛이 대세다. 서로 쓴 초콜릿을 못 먹어서 안달이다. 43%부터 시작된 다크 초콜릿의 열기는 이제 56%, 72%를 넘어서 마의 99% 선을 넘고 있다. 특유의 강한 맛 때문에 목이 타들어가는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소비자들이 다크 초콜릿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쓰디쓴 맛으로 사랑을 테스트한다?
얼마 전 밸런타인데이(2월14일)에 직장인 이상운(29)씨는 여자친구로부터 카카오 함량이 99%인 수입 초콜릿을 선물받았다. 제품에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99%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여자친구는 “순도 99%의 내 사랑을 받아줘”라는 애교 섞인 멘트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애정이 충만한 이 달콤한 전달식은 이상운씨가 99% 카카오 초콜릿을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99% 카카오 초콜릿에 익히 예상 가능한 초콜릿의 맛은 없었다. “초콜릿이 아니다. 약이다. 쓴 한약을 먹는 느낌이랄까. 한 입 먹는 순간 도로 뱉고 싶었다”며 운을 뗀 이씨는 “여자친구가 일부러 시내 수입 상가까지 가서 구해오고 포장한 정성은 알겠지만, 이걸 나보고 먹으라고 준 건지 의심스러웠다. 무슨 테스트를 받는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달콤한 사랑의 메신저 초콜릿. 이날 초콜릿은 결국 초콜릿 본연의 성분인 카카오 때문에 씁쓸한 기억만을 남기는 매개체가 돼버렸다.
이 살풍경한 장면은 비단 이상운씨만의 기억이 아니다. 기존 밀크 초콜릿보다 카카오 함량을 몇 배 높인 다크(블랙) 초콜릿은 이번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제조회사의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으로 각광받았다. 56%, 72%, 심지어 99% 카카오 함량의 다크 초콜릿이 남자친구에게 선물할 초콜릿 상자에 구색 맞춰 함께 포장됐으며, 초콜릿 케이크를 만드는 레시피에도 다크 초콜릿이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비록 밸런타인데이를 당황스러운 기억으로 물들일 정도로 맛은 씁쓸하지만, 초콜릿의 구성성분 중 ‘신이 내린 열매’인 카카오 함량을 높임으로써 웰빙 상품, 다이어트 상품이라는 입소문을 제대로 탄 결과다. ‘입에 쓴 약이 건강에는 좋다’는 속담을 적용시키자면, 다크 초콜릿을 중심으로 ‘입에 쓴 초콜릿이 건강에는 좋다’라는 인식이 성립된 것이다.
보통 우리가 즐겨먹는 밀크 초콜릿이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 20%, 분유 20%를 함유하고 있는 반면 다크 초콜릿은 카카오를 43% 이상 함유한 초콜릿을 일컫는다. 국내에는 밀크 초콜릿과 비슷한 맛을 내는 43%, 56%를 비롯해 카카오의 함량과 초콜릿의 단맛이 절반 정도 조화된 72%가 출시됐으며, 다크 초콜릿을 꾸준히 애용해온 유럽을 비롯해 우리보다 다크 초콜릿 열풍이 1년 정도 앞선 일본에서는 단맛이 전혀 없는 코코아매스와 코코아버터로만 이루어진 86%, 99%의 다크 초콜릿도 시판돼 인기를 얻고 있다.
다크 초콜릿의 열풍과 함께 지금 인터넷은 ‘다크 초콜릿 맛보기’ 열풍으로 뜨겁다. 하루가 멀다 하고 누리꾼들은 좀더 높은 강도의 다크 초콜릿을 시음하고 자신의 ‘첫’ 경험을 피력하느라 바쁘다. 물량이 달리는 다크 초콜릿을 구입하느라 멀리 원정까지 불사하지 않으면서도 누리꾼들은 기존 초콜릿보다 카카오 함량을 높인 다크 초콜릿을 종류별로 섭렵하는 것을 일종의 도전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100%를 기다리는 누리꾼의 무한도전!
그러나 이렇게 구한 다크 초콜릿을 맛본 이들의 시음기는 대부분 긍정적이지 않다. 다크 초콜릿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99% 다크 초콜릿을 맛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분필을 먹는 것 같다”(asdf3987), “타이어를 씹는 기분이었다”(kksc1097), “고동색 크레파스를 먹으면 아마 이런 맛일 거다”(you9lee)는 원색적인 비유부터 “한 입 베어 먹었는데 목이 따끔거려 넘길 수 없었다”(dongh2715),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수준이다. 홍차랑 함께 마시면 괜찮다기에 차를 같이 먹거나, 밀크 초콜릿과 중탕해서 먹어보기도 했지만 효과 전무였다”(ramon)는 생생한 체험기까지 곁들여진다. 간혹 “하루빨리 100%의 다크 초콜릿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마니아의 평도 찾아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음기는 혹평 일색이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이 새로운 맛을 비교적 빨리 체험해봤다, 즉 ‘먹어봤다’는 만족감은 당분간 누리꾼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유혹일 것이다.
어쨌든 이런 다크 초콜릿 붐으로 호황을 누리는 것은 역시 제과회사다. 국내에 출시된 다크 초콜릿만 해도 다양하다. 롯데제과의 ‘드림 카카오’ 56%, 72%를 필두로 해태제과는 카카오 함량 43%인 ‘다크 엔젤’과 73%인 ‘엔젤 카카오’를 내놓았고, 오리온도 카카오매스 비중을 높인 ‘투유’를, 크라운은 카카오 함량을 63%로 높인 ‘블랙로즈 다크’를 출시했다. 수입 제품도 다양하다. 한국네슬레의 스위스산 프리미엄 다크 초콜릿 ‘에끌라 느와르’를 비롯해 한국마스타푸드의 ‘도브다크’, 카카오 53% 함량의 ‘모리나가 비터’, 메이지의 ‘카카오 99%’ 등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 밖에 다크 초콜릿을 사용해 만든 ‘빼빼로’와 쿠키 등 응용 제품들까지 함께 출시돼 그 열풍을 실감나게 해준다. 지난 7월 국내에 가장 먼저 다크 초콜릿을 선보인 롯데제과는 다크 초콜릿 드림 카카오 덕분에 매출이 크게 올랐다. 롯데제과의 안성근 과장은 “월매출 10억원 정도면 효자상품이다. 그런데 드림 카카오는 올 1월에 그 10배가 넘는 110억원을 넘겼고 2월에는 12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다크 초콜릿의 성과를 설명한다. 특히 식품 전체 시장에서 오랫동안 100억원대 매출을 지켜온 제품인 ‘자일리톨’ ‘윌’ ‘신라면’ 등과 달리, 이 수치가 불과 6개월 만에 도달한 기록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안 과장은 “아무리 해외에서 히트한 상품이라고 해도 쓴맛을 내는 카카오 함량을 높인 다크 초콜릿의 맛에 우리 소비자들이 익숙해질까 의구심이 일었다. 그러나 단기간에 수요가 늘어서 지금은 공급이 달릴 정도다. 대형 할인마트에 제품을 공급해도 바로 물건이 떨어진다”고 전했다.
좀더 강한 맛을 찾는 소비자들의 취향은 수입 다크 초콜릿의 수요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져다놓으면 싹쓸이를 해가는 것은 물론, 쇼핑몰별로 다크 초콜릿의 판매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한 개에 몇백원 하는 일반 밀크 초콜릿과 달리 국내 제품의 경우, 평균 1천원대, 그리고 일본의 메이지사의 초콜릿은 1800원의 고가 제품이다. 그러나 비싼 가격에도 다크 초콜릿의 수요 급증으로 초콜릿 시장 전체도 성장했다. 지난해 초콜릿 시장 규모는 3천억원 정도로, 전년과 비교해 10% 성장했고 올해는 15% 이상의 매출 성장을 내다보고 있다.
아몬드가 든 다크 초콜릿을 시도해보라
우울증을 완화해준다는 것 말고는 다이어트의 최대 적으로 지탄받던 악마의 유혹, 초콜릿은 이제 완전히 그 위상을 달리하고 있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가 완전식품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카카오 함유량을 높인 다크 초콜릿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카카오에 함유된 폴리페놀은 검은콩이나 녹차 등에서도 추출되는 성분으로 동맥경화나 당뇨병, 암 등을 발생시키는 원인인 독성 물질과 활성산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우수한 항산화 물질이다.
특히 카카오를 생산하는 카카오나무는 평균기온 27도, 연강수량 1300mm 이상인 고온다습한 지역에서만 생육하는 식물이다. 이 조건으로 보자면 적도 남위, 북위 20도 이내, 해발 300mm 이하 저지대에서만 재배되며, 특히 1년에 1만 개의 꽃 중 과실이 되어 자라는 것은 고작 10~15개에 불과한 귀한 식물이다. 마야문명 때는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신의 음식’이라 일컬어졌다. 또 1997년 122살로 천수를 누린 잔느 카르만이라는 프랑스 여성이 일주일에 2파운드(약 900g)의 초콜릿을 섭취했다는 기록이 나온 것도 카카오가 완전식품이라는 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날씬한 프랑스 여성들은 간식도 다크 초콜릿만 먹는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될 정도로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 만점이다.
그러나 다크 초콜릿을 맹신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카카오를 완전식품으로 이해하고 다크 초콜릿을 다량 섭취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강남베스트클리닉의 이승남 원장은 “무턱대고 다크 초콜릿을 건강식품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다크 초콜릿이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은 높은 반면, 불면증과 불안장애를 일으키는 카페인 함량도 높은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실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크 초콜릿 약 28g에는 평균 20mg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시판되는 35g짜리 다크 초콜릿을 하나 먹으면 원두커피 한 잔을 마실 때와 똑같은 카페인을 섭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다이어트 식품으로 알려진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크 초콜릿의 강한 맛이 식욕 저하와 포만감을 안겨주어 다이어트로 연결된다는 것이 다크 초콜릿이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근거다. 그러나 카카오의 성분인 코코아버터는 지방 덩어리로 열량이 1g당 9㎉에 달한다. 이승남 원장은 “99% 다크 초콜릿의 경우 열량은 290㎉로, 무려 밥 한 공기의 열량인 300㎉에 달한다. 줄어든 설탕에 환호하는 동안 되레 지방 덩어리를 섭취하는 셈이다”라며 다크 초콜릿으로 다이어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을 우려했다. 이 원장은 또 “아몬드가 들어 있는 다크 초콜릿을 먹는 것이 오히려 좋은 습관으로, 카카오에 있는 비타민C와 미네랄과 아몬드의 식이섬유 성분이 합쳐져서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며 “다크 초콜릿은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이므로 하루 15∼20g 정도로 섭취량을 제한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72%, 86%, 99%… 나를 말한다
웰빙 식품의 붐을 타고 있지만, 다크 초콜릿의 타깃층에게서 지금의 열풍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로 젊은 층이 다크 초콜릿을 자신을 표현해줄 새로운 아이템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리꾼들은 다크 초콜릿을 찾는 이유를 심리적으로 분석하는가 하면, 다크 초콜릿의 참맛을 아는 방법 등을 서로 교환하고, 서아프리카 쪽의 대량생산 제품보다 남미 계열의 고급 카카오 빈을 사용하는 다크 초콜릿을 추천하는 등 마니아적인 취향을 십분 드러내고 있다. CJ식품사업부의 김영태 대리는 최근 부쩍 늘어난 다크 초콜릿의 수요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크 초콜릿의 소비층이 주로 20~30대 젊은 층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남보다 먼저 색다른 것을 즐기기를 원한다. 먼저 즐기는 순간, 자신이 더 앞서가는 문화를 향유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커피 체인점이 다양화되면서 진한 커피, 양질의 커피를 찾는 것처럼 초콜릿 역시 평범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진리가 또 한 번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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