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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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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등록 2006-12-22 00:00 수정 2020-05-03 04:24

집의 반을 어떻게 채우나 걱정하는 도시 유목민을 위한 소품의 세계…거실에 러그·플로어램프를, 식탁 옆 벽면에는 액자거울을 달아보자

▣ 김주원 이몽기가 대표

“당신이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불가능할 것 같은가? 가능하다. 유명한 패션디자이너 누구누구가 출장차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식사를 위해 차를 타고 2시간 걸리는 한식당을 찾아가더라는 말을 들으면, 그가 음식에 있어서 참 보수적이다 싶은 동시에, 주변 상황에 대해 비타협적인 고집을 지녔으며 그로 인해 한 가지 일에 대한 몰입과 추진력을 동시에 가졌으리라고 짐작하게 된다.

또 패션이 그렇다. 옷을 입는 취향이란 이미지 메이커를 따로 두는 정치인이거나 엄마의 취향에 기대는 어린아이가 아닌 다음에야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소박한지, 화려한지, 장식적인지, 단순한지, 청교도적인지, 낭만적인지, 회고적인지, 진보적인지 등등. 그 다음에 나올 이야기는? 집이다. 사실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의식주’에 대한 자질구레한 일들은 진실로 우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대범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남자들조차 어딘가에는 이 기본적인 절차상에서 자기의 흔적을 곳곳에 묻혀두고 있다.

이사 가세요? 취향도 가져가세요!

나는 고객을 만날 때, 먼저 그를 일별한다. 입고 있는 옷과 가방, 구두의 스타일을 보고 취향을 짐작하는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을 보면 이 짐작은 더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변하는데,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쓰는 방법은 소품을 하나 고르게 하는 것이다. 가장 선호하는 아이템은 사진을 넣을 수 있는 액자다.

액자의 프레임은 매우 다양해서 그 많은 프레임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집어드는 것을 보면, 비교적 정확하게 그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마다 정말 취향도 제각각이지만, 대개는 내가 ‘일별’한 뒤 갖게 되는 처음의 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소품을 판매하는 상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취향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면 백발백중, 일이 여기까지 되면 그 다음은 물론 일사천리다. 이쯤 되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당신이 어떤 곳에 사는지를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너무 사설이 길었다. 오늘의 주제는 ‘알면 더 재미있는 소품의 세계’이다. 실내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벽, 바닥, 천장, 여기에 창문과 문, 계단 등의 요소가 더해진다. 이렇게 정리하니까 간단하다. 여기에 붙어 있는 것들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내 집이 아닌 경우에는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인테리어란 나랑은 거리가 먼 다른 세계 이야기라고 간단히 포기하고 말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알뜨랑 비누처럼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해보라. 그 나머지 반을 채우는 것이 누구나 갖고 있는 가구와 소품류이다. “이사 가세요? 이제 인테리어도 가지고 가세요” 정도의 카피는 어떨까.

현대는 유목민적인 삶이라 한다. ‘디지털 노마드’니 하는 신조어의 유행을 보면 그렇다. 쉽게 이해하자면, 언제든지 옮겨다닐 준비가 되어 있는, 특정한 시공간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삶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인테리어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이런 현대적 삶의 가치에 대응하기 위해서 공간은 그 스타일에서 포용력과 가변성이 있어야 하겠다. 좋은 공간이란, 무언가를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라도 그 속에 녹여낼 수 있는 용광로 같은 것이어야 한다. 자연이 그렇듯이. 결국 아무것도 디자인하지 않은 것이 가장 완벽한 디자인이라는 역설도 가능하다.

취향에 대한 두 가지 축을 만들자

이런 추세를 반영해, 앞서 이야기한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은 이제 점점 단순해질 전망이다. 형태는 절제되고 질감만 남아 있는 정도의 배경으로 물러나줄 것이다. 그것이 많은 것을 한정하고 나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땅을 좁히는 것이므로. 그러고 나면,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이사 갈 때 갖고 다닐 수 있는 많은 물건들이 공간을 채우는 주연으로 주목받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리빙 가구와 소품에 대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수준과 안목이 10년 전 거리에 흰색, 까만색, 회색, 청회색 정도의 자동차만 돌아다니던 때의 자동차 색깔에 대한 취향 정도라는 점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취향이란 교육에 의해 개발되어 세련되어지는 것이므로.

스타일에 대한 취향을 간단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두 가지 축을 사용하자. 한 가지 축에는 고전적인 쪽인지, 현대적인 쪽인지를 놓고, 또 다른 축에는 우아한 쪽인지, 발랄 혹은 소박한 쪽인지를 놓아보자. 그러면 네 가지 스타일이 생기게 된다.

고전적이고 우아한 취향, 고전적이고 소박한 취향, 현대적이고 우아한 취향, 현대적이고 발랄한 취향. 자기가 어떤 취향에 속하는지 분류가 되었는가. 각각의 분류를 대표하는 스타일로는 네오클래식 스타일, 프로방스 스타일, 미니멀 스타일, 로프트 스타일 정도가 되겠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네오클래식이 샤넬이라면 프로방스는 오이릴리다. 미니멀이 아르마니나 질 샌더라면 로프트는 이세이 미야케나 돌체 앤 가바나다. 자기가 어떤 취향의 그룹에 속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첫째다.

그 다음에는 집중이다. 그 그룹 내에서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을 권장하지만, 스타일의 통일성을 위해서는 집중하는 편이 좋다. 스타일을 하나로 정해두기에는 너무 많은 스타일이 그때그때 다르게 좋아진다는 사람을 위한 팁도 있다. 그럴 때는 적어도 컬러코드 정도는 정해두는 것이 좋다. 스타일은 다르더라도, 컬러코드가 통일되어 있다면 한결 내 방의 분위기가 좋아질 것이다.

보라, 주황, 파랑, 노랑, 분홍, 빨강, 초록…. 다 예쁜 색깔들이지만 ‘크림베이지의 바탕 위에 짙은 초콜릿색은 허용하고, 여기에 빨강에서 주황, 다홍을 보조색으로 삼고, 아주 조금 초록 포인트를 섞는다’는 식의 색채 계획이 세워져 있다면 여러 가지 소품 중 어느 색을 고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덜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쩨’에서 카르텔·알레시로

마지막으로 소품 고르기 고급 과정을 하나 소개하겠다.

‘안다’라는 것은 ‘디테일’해지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겠다. 하다못해 입사전형 서류 취미란에 ‘독서와 여행’이란 예전의 모범답안은 이제 성의 없어 보이기 딱 좋다. 이제는 60년대 출시된 자동차 모형 모으기라든지 야생화 사진 찍기 같은 좀더 디테일한 취미가 선호되는 시대다. 인테리어 가구와 소품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이른바 ‘쩨’가 통했다. 프랑스제, 이탈리아제, 독일제, 페르시아제 등등의 원산지 표기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좀더 디테일한 ‘아는 체’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보석상 티파니조차 자사 브랜드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빌바오 구겐하임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디자인을 의뢰해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티파니의 주얼리 컬렉션’ 같은 것을 개발하지 않던가.

모르긴 몰라도 이런 경향은 리빙가구와 가전, 소품 분야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이 아닐까 한다. 플라스틱 가구류로 유명한 카르텔사라든가, 디자인 주방소품으로 유명한 알레시사 등은 아주 일찍부터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함께 협업해 디자이너를 내세운 제품 개발과 마케팅을 해왔고 그 디자인 파워가 이들 회사를 세계적 회사로 키워내는 데 큰 몫을 했다. 필리프 스타르크나 카림 라시드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이름이 우리의 일상용품과 함께 들먹여지는 날이 머지않았다. 당장 우리 주변에 눈에 띄는 가구나 소품 중 그들이 디자인한 것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랄 테니까.

이제, 집 안에서 어떤 물건들이 공간을 빛내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전셋집이라고 미뤄둔 인테리어 세계로…

거실에는 거실장과 소파, 테이블 등의 기본 가구가 있겠지만, 여기에 ‘러그’라고 하는 부분카펫을 깔아보자.

테이블 아래에만 살짝 깔아도 좋고, 소파와 테이블까지를 포함해 깔아도 좋다. 문양이 아름다운 페르시안 러그일지, 기하학적 패턴의 짧은 털 러그일지, 짠 직물처럼 느껴지는 동남아시아산 러그일지는 스타일의 문제다. 물론 뜯어갈 수 없는 바닥재와는 달리 이사갈 때 가지고 갈 수 있다. 거실을 빛내는 두 번째 소품 아이템은 바닥에서 길게 올라오는 플로어 램프. 천장에 붙어 있는 중앙등을 잠시 끄고, 보조등과 플로어 스탠드로만 거실을 밝혀보자. 달라진 모습에 놀랄지 모른다. 이것 역시 갓의 지질과 모양, 패턴과 지지대의 소재, 색깔, 모양 등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이 있는데, 선택의 문제다.

식탁에는 천장에서 늘어뜨려져 있는 등이 있다. 이것을 매달려 있다고 해서 펜던트등이라고 부르는데, 공간 속에 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소품으로 생각해도 좋다. 전선 연결 등 약간의 손이 가지만, 생각보다는 간단히 교체된다. 역시 샹들리에 스타일의 화려한 것부터 단정한 것, 볼륨이 큰 것 등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

식탁 옆 벽면을 장식할 수 있는 소품으로는 큰 프레임이 들어간 액자거울을 추천한다. 프레임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이 연출될 뿐 아니라, 아래쪽으로 약간 기울여 달면 식탁에 앉은 모습이 더 온화하고 화려하게 연출될 것이다. 실내 조경도 좋은 소품이다. 화기나 큰 토분의 스타일과 식물을 배치하고 꽂는 스타일 역시 무엇보다 좋은 소품으로 활용 가능하다. 그 밖에 서재나 공부방에는 벽에 거는 수납장이라든지, 파티션, 테이블 스탠드 등의 소품과 함께 국자, 주전자, 와인따개 등 온갖 주방용품이 소품으로 동원될 수 있겠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소품을 고를 때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다양성을 내포하는 일관성이다. 가구나 소품에는 스스로의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관성을 갖고 있게 마련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취향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 아래 이런 선택이 이루어진다면, 소품 고르는 일이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자, 이제 전셋집이라고 내 집 사면 하겠다고 미뤄둔 인테리어의 세계로 떠날 준비가 됐나요?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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