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기자들의 예상을 훌쩍 넘어 올겨울에도 여자들의 ‘머스트 해브’로 등극…살까 말까 고민하며 허송세월하는 대신 얼른 사서 한 번 더 신는 게 남는 장사
▣ 심정희 <w korea> 패션 에디터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미니스커트의 인기가 겨울까지 이어질 전망이므로 그와 보조를 맞춰 부츠 역시 인기를 끌 거라는 생각을 패션계 사람들은 하지 못했다. 사실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부츠는 패션계의 관심 밖에 놓여 있었다. “겨울이 되면 으레 나오는 게 부츠 아냐?” 하는 생각에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부츠를 다들 눈여겨보지 않았던 탓도 있었고, 부츠 외에 코쿤 실루엣의 코트나 PVC 힐을 가진 플랫폼 슈즈 같은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른 아이템들이 너무 많았던 것도 원인이었다.
레깅스는 레깅스고, 부츠는 부츠다!
샤넬 쇼에서 모델들이 하나같이 길이가 허벅지 중간까지 올라오는, 우글우글 주름이 지도록 디자인된 부츠들을 신고 등장했을 때도 사람들은 그것이 시즌의 전반적인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라기보다는 카를 라거펠트 개인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었고(샤넬의 디자이너인 카를 라거펠트는 부츠의 열렬한 추종자로, 한때 검은 선글라스, 부채,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활용,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독특하게 만들었다) 부츠 대신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펌프스(굽이 높고 앞이 막혀 있는 여성용 구두)를 신고 맨다리로 캣워크를 걸어나오는 프라다의 모델들을 보면서 잠시 부츠의 존재를 잊었으며, 여러 쇼에 두루 등장한 검은색 스타킹을 보면서 ‘이번 시즌엔 스타킹이 부츠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변명 같지만) 레그웨어 열풍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겨울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인 부츠조차 레그웨어의 앞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겨울이 되고 보니 부츠의 인기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컬렉션을 통해 트렌드를 분석하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여성들의 ‘심리’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레깅스가 아무리 인기여도 여자들 마음속에서 부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음을…. 여자들은 여전히 레깅스의 매력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이렇게 외친다. “레깅스는 레깅스고, 부츠는 부츠지!”
미니스커트를 입느냐, 스키니진을 입느냐에 관계없이 어느 옷에나 무난하게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무런 장식도 없는 무릎 길이의 블랙(혹은 브라운) 가죽 부츠지만, ‘평범한 건 싫어!’를 외치는 트렌드세터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번 시즌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개성 있는 부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분위기 따라 섹시하게 혹은 캐주얼하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스타일은 레이스업 롱 부츠. 발등부터 무릎까지 부츠 전체를 끈으로 여미게 되어 있는 이 스타일은 스타일링 방법에 따라 섹시하게도, 캐주얼하게도 연출할 수 있는데 다리에 탄력 있게 밀착되는 스타킹을 신은 다음 끈을 단단하게 여미면 섹시한 분위기가 강해지고, 바지 혹은 두꺼운 레깅스와 함께 매치한 다음 끈을 느슨하게 풀어헤치면 캐주얼한 분위기가 강해진다. 끈을 묶는 높이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 레이스업 부츠의 특징. 맨 윗부분까지 끝을 동여매면 단정한 느낌을 낼 수 있고, 부츠 길이의 중간이나 3분의 2 정도까지만 끈을 묶은 다음 부츠 안이나 위로 투박한 레그워머나 니 삭스가 드러나게 신으면 그런지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레이스업 롱 부츠만큼은 아니지만 종아리 중간 정도까지 올라오는 워커 스타일의 레이스업 미들 부츠 역시 사랑받을 전망. 이 스타일은 레이스업 롱 부츠에 비해 캐주얼한 느낌이 한결 강하기 때문에 여성스럽거나 귀여운 룩을 즐기는 사람보다는 그런지룩이나 스키니진과 가죽 점퍼, 체인 목걸이 같은 로큰롤 아이템을 즐기는 이에게 잘 어울린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스타일은 굽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발목이나 무릎이 끝나는 부분에 버클 장식이 달려 있는 라이딩 부츠(승마용 부츠와 비슷하게 생겨서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 이번 시즌 랄프 로렌이나 에르메스처럼 승마를 주제로 펼쳐진 패션쇼뿐 아니라 조세핀과 나폴레옹을 주제로 펼쳐졌던 돌체&가바나 컬렉션 등에 두루 등장하면서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른 라이딩 부츠는 굽이 높은 부츠에 비해 날카롭거나 섹시한 느낌은 덜하지만 시에나 밀러나 케이트 모스가 그러는 것처럼 스키니진과 매치하면 하이힐 부츠에 비해 훨씬 스타일리시한 느낌으로 연출할 수 있다. 무릎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반바지나 실루엣이 풍성한 7부 팬츠와도 잘 어울린다. 단, 굽 쪽으로도 시선이 분산되는 하이힐 부츠와 달리 라이딩 부츠는 가죽 자체에만 시선이 쏠리기 때문에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질이 좋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한편, 발목이나 무릎에 달려 있는 버클이 지나치게 크거나 장식이 너무 심하면 금세 싫증이 나거나 자칫 잘못하다간 촌스러워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하루 신고 나면 신문지 넣어 세워두자
80년대풍의 글래머러스 스타일의 인기로 인해 등장한 애니멀 프린트 부츠나 악어가죽 부츠, 파이톤(뱀) 가죽 부츠 등도 이번 시즌에 눈여겨봐야 할 아이템. 우리나라 여성의 대부분이 이런 스타일을 부담스러워하는 덕에 잘만 연출하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뽐낼 수 있고, 다른 어떤 부츠보다 섹시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인상이 너무 강한 나머지 자주 신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 그러나 이번 시즌, 섹시하고 강인한 여성상이 각광받고 있으니만큼 섹시한 스타일로 변신을 꾀하고 싶다면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이 밖에 군데군데에 모피(퍼)가 트리밍되어 있는 스타일이나 전체가 모피로 덮인 스타일 역시 눈에 띈다. 모피 트리밍 부츠의 경우 일반적인 부츠보다 부피감이 크기 때문에 옷의 실루엣은 단순하게 가져가는 것이 좋고, 모피 코트나 재킷과 마찬가지로 관리가 녹록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길이가 허벅지 중간까지 올라오는 샤넬 스타일의 ‘롱롱’ 부츠 역시 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덕에 요즘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성유리 역시 극중에서 이 부츠를 신은 바 있다). 특히 에나멜 소재의 롱롱 부츠는 1960년대 모즈룩 스타일의 심플한 A라인 원피스와 매치해 쿠레주 스타일을 연출하거나 마이크로 미니스커트와 매치해 섹시함을 강조하기에 좋지만 적어도 키가 170cm쯤은 되어야만 무난히 소화할 수 있다는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다. 고로, 슬프지만 키가 작고 다리가 짧은 사람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일반적인 구두에 비해 통기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부츠는 세균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매일매일 똑같은 부츠를 신고 다니기보다는 하루를 신은 다음에는 부츠 속의 온기가 완전히 가시고 땀이 마를 수 있도록 하루는 쉬게 하는 것이 좋다. 다른 옷이나 신발과 마찬가지로 부츠 역시 그냥 볼 때의 느낌과 신었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경우가 많으므로 반드시 신어본 다음 구입해야 하고 특히 신었을 때 발목에 불필요한 주름이 너무 많이 지거나 너무 꽉 끼지 않는지를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부츠의 맵시는 발목 부분의 실루엣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목 부분에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벗어둘 때는 다리 부분에 신문지 등을 말아넣어 똑바로 세워놓아야 한다).
부츠 바라보는 성냥팔이 소녀 같은 마음
부츠는 비싸다. 명품 브랜드는 말할 것도 없고, 백화점 부츠는 백화점 부츠대로, 시장 부츠는 시장 부츠대로 비싸다. 그 긴 부츠를 만들려면 가죽이 일반 신발을 만드는 것의 몇 배는 들 테니 제조업자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 가격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부츠 없는 겨울이란 (너무 흔한 비유이긴 하지만) 앙꼬 없는 찐빵이요, 속 안 든 만두와 같다. 마땅히 신을 만한 부츠가 없는 상태에서 멋진 부츠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다른 여자를 바라볼 때, 여자들이 따스한 식탁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화목한 가족을 창 밖에서 훔쳐보는 성냥팔이 소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잠긴다는 사실을 남자들이 알까. 비 오는 날 혼자 학교 처마 밑에 서서 하나둘 엄마들 손에 이끌려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 같기도 한 그 심정…. 고로, 부츠는 비싸지만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살까 말까를 고민하느라 허송세월하는 대신 얼른 사는 게(혹은 사주는 게) 낫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더 신(기)는 것이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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