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를 아우르는 공연 프로그램, 대구문화방송 … 지역 동호인들이 폐지 1순위 막고, 6년 만에 뜨거운 300회 달성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기사를 써야 하는데 계속 동영상을 보고 있다. 2006년 4월1일 284회 가수 SEVEN(세븐) 출연. 의외로 알 켈리(R. Kelly)의 <i belive i can fly>를 잘 소화한다. 6월9일 289회엔 백지영이 나왔다. 왕년의 히트곡 <dash>다! 저 열정, 저 미소. “힘들 때 많이 들었다”며 유재하의 을 불러줄 줄이야. 6월30일 290회 에스닉 그룹 ‘두 번째 달’.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비상한 월드뮤직팀이라 소문은 들었던 차, 이런, 첫 연주곡부터 ‘대박’이다. 9월1일 299회 밴드 럼블피쉬. 현진건의 뺨치는 경쾌한 반어법풍 노래 을 부르더니 보컬 최진이는 아예 맨발로 나선다.
백지영이 유재하의 노래를 부르는 곳
가수의 퀴즈 실력 대신 노래 실력을 보여주는 대구문화방송 프로그램 (이하 텔레콘서트·매주 금요일 밤 9시55분~10시55분)가 9월8일 YB밴드 방영분으로 300회를 맞았다. 2000년 6월 첫 방송이 나가고 제작비 대비 낮은 시청률 때문에 개편 때마다 폐지 1순위로 거론되다가 급기야 2003년 봄에 벼랑 끝까지 갔지만 용케 살았다. 폐지설이 돌 때 동호인들은 시내 중심가에서 ‘텔레 살리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방송사 사옥 앞에서 피켓 시위를 펼쳤다. 방송국 ‘윗분’들도 ‘이렇게 대구 시민들이 좋아하는데 무리해서라도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연자 섭외부터 난감한 ‘수도권 나라’의 ‘지역 프로그램’은 뚝심으로 생명 연장에 들어갔고 지금은 신보를 준비하는 ‘자우림’이 미리 좋은 날짜를 찜하는 쏠쏠한 프로그램이 됐다. 편성시간대가 겹쳐 방영 안 되는 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불만도 공존한다.
담당 PD인 최동운씨의 말에 따르면 “대구는 원래 음악적으로 특이한 도시”이다. 인구가 더 많은 부산보다 음반 판매량이 큰 시절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록이 강하다고 하죠. 밴드 ‘블랙홀’이 대구에선 소극장을 꽉 채웠다고 해요. 클래지콰이도 전국 공연 중 여기서 유난히 꽉 찼고. 힙합도 요즘 많이들 듣는 것 같고. 그런데 아이돌 쪽에서 오면 의외로 썰렁하다고 하더라고요.” 취미의 분화에 공연의 묘미를 보태준 이가 이다. “처음엔 ‘어디 한번 해봐라’라는 표정을 짓고 팔짱 끼고 보시는 분들도 있었답니다. 카메라가 다가서면 무섭게 피하는 방청객도 거의 없어졌네요.”
첫 방송 때의 고민은 여전히 있다. 지금은 부산·광주·전주·목포 등 10여 지역에 판매도 하지만 그래도 제작비는 적자다. 하지만 대구문화방송의 전체 제작비 예산에선 “기형적이라고 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고작 5개인데 이 중 하나가 음악 프로그램일뿐더러, 편당 투입되는 1천만원가량의 비용은 다른 프로그램 서너 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150여 평의 스튜디오를 늘리고 싶지만 마음뿐.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수용 인원 600명보다 훨씬 많고, 심도가 깊은 화면도 더 넓은 공간에서 가능하다. 쇼 하나에 1억원을 붓는 서울의 방송국이 부럽다. 그러나 한 가지, ‘음향’에는 자신이 있다.
“연주하는 이들이 만족스러워합니다. 소리가 깔끔하게 나오고 합주할 때 동료들 악기가 잘 들리거든요. 케이원이라는 일류 음향회사에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공연장 소리는 물론 텔레비전 방영분까지 좋습니다. 방송용 믹싱 기술이 축적돼 있거든요. 음악전문 채널의 공연 프로그램을 체크해보지만 거기보다 좋은 듯합니다. 인터넷 다시듣기로도 좀 다를 겁니다.” 모 공중파 심야 음악 프로그램에 나온 록밴드 ‘델리스파이스’의 연주 소리가 클럽에서와 달리 너무 평평하고 단선적이라, 화면 앞에서 기다렸던 시청자의 가슴에 바람 한 자락 지나갔던 그날 밤이 떠올랐다.
제작비 적자, 그래도 음향은 자신 있다
케이블과 경쟁하면서 인기가요 순위 프로그램도 4%대 시청률에서 허우적거리는 서울의 공중파에 왜 지난해에 12년산 를 폐지했냐고 묻는다면 천진난만하거나 가혹하게 보일지 모른다. 광고주들은 분명 그 프로그램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래서 로 교체되고 평균 수도권 가구 시청률은 약 0.2% 상승했다.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버린 걸까. 음악에 상품성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은 약 12%, 가 약 8%, 은 15%가량의 시청률을 보인다. 한국인은 음악을 싫어하지 않는다. 무뎌진 방송국의 편성 감각을 탓한다.
방송은 음악이나 미술과 동일한 위계에 있다기보단 이들 문화장르를 모두 품는 블랙홀 같은 존재다. 음반 은 영국의 공영방송 <bbc>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됐고, 고전이 되어가는 시각예술 입문서 (Ways of Seeings)는 <bbc> 4회 연속 방영물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의 고향은 <bbc> 라디오 드라마 채널이다. 올가을, 자금 부족으로 중단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SK커뮤니케이션즈가 소유한 인터넷 사이트 ‘싸이월드’에서 부활된다. 방송국이 콘텐츠 제작의 주도권을 놓겠다면 편성감각이라도 지켜야 한다. 납세자이자 시청자이자 소비자인 우리는 방송국은 물론 기업에도 많은 요구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
‘달려라 밴드’가 만난 세션맨, 제작자, 평론가맨들은 모두 강한 자존감과 학습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을 든든한 배경으로 삼아 김수현의 SH엔터테인먼트를 차리고 옹골찬 새싹 음악인을 발굴해 나 <ebs> 같은 프로그램으로 바람몰이를 시작하면 뭔가 괜찮은 게 나오지 않을까.
</ebs></bbc></bbc></bbc></da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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